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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여행
가쿠다 미츠요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05년 6월
평점 :
다음에 또 유괴하러 와야해 - p.162
이 말은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에게 호감을 나타내는 스톡홀름 증후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유괴당한 사람은 조숙한 열 두 살 소녀 하루 고
유괴한 사람한 다름아닌 그녀의 아버지 이기 때문이다.
<납치여행> 은 사이가 소원해진 부녀간의 여행을 그린 책이다.
언제나 진지한점이라곤 없는 장난꾸러기 아빠
무얼하든 허허실실에 약간 멍한 구석이 있는 순진한 아빠는 배탈이 난 엄마에게도 장난만 치다가
야단만 맞는 조금은 한심한 아빠다.
그런 아빠가 결국엔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은지 두달이다.
하루가 아침에 일어나면 이미 아빠는 출근을 했고 아빠가 퇴근할때 쯤엔 잠이들던 하루라서
평소에도 아빠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여서 딱히 아빠가 그립다거나 보고싶지는 않던 하루였다.
오히려 조금은 그런 아빠가 어색했다랄까..
그런 하루에게 두달만에 나타난 아빠는 느닷없이 유괴여행에 동참할 것을 제의하고
조금은 무책임한 그런 여행에 하루는 그저 동참해준다.
이 여행이 참 재미있다. 나같으면 난데없이 사라졌다 나타난 아빠가
이리 무성의한 여행에 다짜고짜 나를 끌여들였다면 화부터 냈을지도 모르는데
하루는 그래도 어른스럽게 아버지를 따라간다.
물론 그둘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난생처음 서로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가는 과정이라 아름답게 여겨졌다.
그날 밤, 밤바다의 수영처럼.. 아름다운 그 풍경이 내 눈앞에도 펼쳐졌다.
사위는 깜깜하고 머리 위에서는 작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이 세상이 아닌 장소,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 가까운 곳에 누워있는 느낌이었다. - p.78
하루는 아빠를 사랑하긴 했지만 잘 알지는 못했고 오히려 어색하게 느낄만큼 둘 사이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는 여행으로 둘 사이의 벽은 어느정도 허물어지고 가까워졌다.
꾀죄죄한 티셔츠 차림에 햇볕에 타고 눈 꼬리가 처진 그 남자만 유독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 p.164
아빠가 과연 엄마와 협상하려던 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조금은 궁금하지만
그것보단 하루와 아빠가 한 단께 가까워진 그 사랑에, 그둘의 다음 납치여행이 기다려진다.
다음에 또 유괴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몇번의 여행이 되풀이되면 하루도 아빠가 가르쳐주려 하는 것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겠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고르고 나면 선택할 수 없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거든
싫으면 잊어버려도 되고, 좋으면 같이 있어도 되고,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후에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구. - p.146
책임을 회피하자는 게 아니야. 앞으로, 훗날 생각대로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떄마다
다른 사람 탓을 하면 하루, 너가 관계한 모든 일이 마음대로 안 풀려도 어쩔 수 없게 된단 말이야. -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