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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ㅣ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그사람, 악인인거죠?
그 악인을, 전 멋대로 사랑해버렸던 거에요.
그렇죠? 그런거죠?"
책장의 마지막 장을 넘겨도 한동안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어찌보면 범인으로 잡힌 그에 대한 평결은 잠시 유보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결말이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더욱 이 결말이 맘에 든다.
그래도 슬픈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평소에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폭력, 더욱이 살인은 동조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책을 읽고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해를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의 말대로 그가 조금만 더 일찍 미쓰요를 만났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까?
피해자인 요시노가 피해자임에도 처음엔 미웠다.
그녀는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무시했던 점 때문에 살해당했다
타인을 무시한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수십년 남았을 그녀의 인생 자체를 박탈당하는 침해를 받을 이유는 아니었다.
특히나 그녀를 소중히 생각하는 남겨질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나는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 때문에 비로소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웠고, 그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무언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 p.448
이 책은 사건 자체보다도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과 그 주변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아주 자세히 하고 있다.
그리고 악에 대한 판결은 내리지 않은채, 독자의 판단으로 남겨두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사건관계자들 모두를 아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것이다.
나는 전에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랜드마크> 라는 작품에서 지독한 상실과 허무감을 맛봤었는데
이 책은 또 그와는 매우 다르다.
여운이 남는 결말, 그리고 주인공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통해 인간과 인간이 주는 상처와 희망을 보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또 그 상처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치유한다는 진리를...
모두가 피해자가 되길 바라니까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대한다는 유이치
자신을 버렸던 엄마에게도,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에게도 유이치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그런 유이치가 꿈꿨던 소박한 세상을 생각하면 참 슬프다.
유이치가 아 참, 어젯밤에 꿈 꿨어." 라고 쑥쓰러운 듯 말했다.
"꿈? 무슨 꿈?" 미쓰요가 유이치의 손에서 페트병을 빼앗았다.
"미쓰요랑 같이 사는 꿈. 어젯밤에 자기 전에 어떤 집에서 살면 좋을까 얘기했잖아. 그런 데서 사는 꿈." - p.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