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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 시즌 3 ㅣ 엘링(Elling) 3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엘링을 만났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고 토론의 대상이 되어왔던 엘링을 드디어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실 엘링이 사회부적응자, 아웃사이더라는 말에 어떤 캐릭터일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내가 만나고 알게 된 엘링은 내가 이제껏 만나온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멋지고 이해심도 많은 친구였다.
물론 다른 사람과 약간 독특한 생각을 하기도 하는건 사실이지만
그는 때론 그 누구보다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믿을수 없을만큼 훌륭하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법을 잘 알고 있고
예술과 사회문화, 정치에까지 아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문제점을 잘 알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용기를 낼 줄 아는 아주 멋진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는데
나 또한 엘링이 자랑스러웠고 그를 알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우주를 하나씩 품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어떻게 맞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사람을 조심조심 자신의 뜰로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 p.138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법을 이해하는 엘링)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위대한 행동'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겁을 집어먹은 남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자가 자신을 이겨내고 집 밖으로 나가
거리의 무자비한 불빛과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을 받아내는 것과
얼링 카게의 영웅적인 남극 행진 중 어느 것이 더 위대한가?
... (중략) ... 어쨌든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행동을 떠올려보니
어느새 몸속으로 용기가 흘러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느긋한 자세로 레스토랑 홀을 가로지르며 다락방에 틀어박혀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아가는 삶을
택하지 않은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 p.74~75
책속에서 엘링과 키엘은 둘만의 고립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산책을 하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매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또 우연히 만난 레이둔이란 여인과 키엘은 사랑에 빠지고 엘링은 키엘 말고 알폰스라는 노시인과
시에 대한 토론을 나누며 우정을 나눈다.
나는 고양이를 구입하고 키우는 일화와 키엘과 엘링이 피를 나눈 형제사이가 된 일들이 매우 유쾌했다.
내게는 아니 고작 그런 이유였단 말이야! 하는 것들에 엘링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어쨌든 키엘과의 우정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한다.
책 속 여기저기엔 1,2권에서의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온다.
이런 점들은 나에게 1,2권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곳에도 멋진 또 다른 엘링이 있겠구나 하고 두근두근한다..
내가 엘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용기있고 노력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점 말고도 다른 공통점이 있어서이다.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게 믿기지 않은 적도 여러번 있었다.
점점 나 자신이 사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 몸뚱어리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
그럴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못살게 괴롭히고 자학해야만 했다. 이것은 진정한 아웃사이더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스스로 느끼기 위해 나뭇가지로 자신의 몸을 때리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빰을 때리는 걸 엄마조차 단 한 번도 이해해 준 적이 없었다.
사실 나로서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흐느끼며 뚝뚝 끊어져 알아듣기 힘든 몇 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 p.60
아! 이런 완벽한 고독감과 단절이라니.. 아니 이건 어떤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감정이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약간이나마 비슷하게 엘링과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밖으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내 옷차림이 어찌나 초라해보이는지 모두가 날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하며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무리 속에 속해있어도 완벽히 혼자인 느낌을 받을때도 있었다.
오래 만난 사이의 사람과 대화를 나눌때에도 이 사람이 날 한심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결국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걸 자체를 꺼리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나도 사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어째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내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괴로워했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만 같았고 이런 나를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엘링처럼...
나에게도 내 안에 엘링이 살고 있다. 아직 엘링처럼 용기를 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나에게도 엘링 곁에 있는 키엘처럼 친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느낀 이 책의 주제에 대한 내용을 책에 나오는 문장으로 적어볼까 한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 뒤 사람들이 제각기 다르기에 세상이 얼마나 멋진지 설명했다. - p.312
다양성!
그래서 엘링이 있는 세상은 참 아름답다.
예정된 자살을 한 달 뒤로 옮기고 조금 불만스러우면서도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한밤중에 카페에 앉아 와인 한잔을 마시고 담배 한개비를 피울만큼 말이다! (p.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