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당신 한국작가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있어요?" 라고 묻는 다면, 나는 이승우란 작가가 지금부터 써내는 책이라면 읽어 볼 생각은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 작가는 유명하지 않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 나도 몰랐는데, 몇년전에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 이란 프로에서(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이승우란 작가를 호명했다. 너무 생소한 이름이었고, 그 사람이 내 뱉는 수줍은 듯한 작은 목소리에서 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고, 당장 교보로 달려가서 확인했다. '식물의 사생활'이라니..제목을 지어도 참나 이렇게 유치하게.. 식물들이 무슨 사생활을 한다고? 내가 전에 교보에 갔을 때, 이 책이 진열된 곳을 지나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던 기억이 났다. 아, 근데 이 작가였단 말이지, 그러고는 바로 책장을 넘겨드는데 제목이 내게 던졌던 이미지와 달리, 왜 그 사람이 조금은 수줍은 듯한, 혹은 다른이들이 보지 말기를 바라는 듯한 목소리로-난 이렇게 해석했다- 그날 라디오에서 이 작가를 호칭한 것인지 알만했다. 한마디로 그의 글에 빨려 들어 가는 듯 했다. 혹자는 마루야마 겐지와 비슷한 문체라고도 하지만, 난 이 분이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나도, 누군가의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벌써 내 생각을 다 적어놨네, 이런 생각을 가질 때가 종종 있으니. 분명 이승우도 그럴것이다. 난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는「식물들의 사생활」보다는 잘 읽히지 않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 책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 남자 주인공의 성관념을 보면 이 책의 진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어쨌든 섹스를 한다는 거, 혹은 섹스를 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는 거, 그거 유치하고 원시적인 고정관념이야. 난 그런 거 싫어.」(부재증명. 204p)
이런말은 일상적인 장소에서는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보는데(그게 빈말이던 아니던) 근데 여자가 몸을 다 벗고 남자를 유혹하는 대목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남자가 과연 존재할까.. 그리고 이여자는 더더군다나 이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다. 난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너무 쇼킹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 스스로가 이런 남자의 존재를 은근히 바랬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어느정도 나 나름의 생각을 완성시킨 뒤에는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랬기에 그랬었기에, 이 남자가 뱉은 말은 나에게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여기까지 쓰다가 내가 무슨말을 하려고 이 글을 썼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난 솔직히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절대 튀지 않기' 이런 게 나의 모토인데 말이다. 내가 여기다 글을 올리는 것도 그 분을 만나지 않았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서재가 썰렁하지 않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