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UE - 동판케이스 한정판 (4disc)
박찬욱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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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가 개봉된 이후로 '두 남자의 복수극'이라는 코멘트는 꽤나 여기저기에서 많이 보았던 것 같다. 그런 코멘트만 접하다가 스크린이 점점 줄어들 무렵에 처음 본 올드보이는 생각과는 훨씬 다른 영화였다.

오대수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듯이 처음에는 오대수의 시각에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15년간의 감금. 산산히 부서진 가족. 오대수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만이 가득했다. 복수하겠다고 15년간 자신을 단련한 그였다. 그런데 오대수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오대수는 감금 당한 사람이고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이다. 이 영화가 오대수의 이야기가 되려면 차라리 복수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우진의 한 마디가 이러한 진행을 막아버리고 있었다. 내가 왜 가뒀는지 맞추면 죽어주겠다. 오대수가 하고싶어하는 복수는 이제 영화의 줄거리에서 약간 비껴나가게 되었다. 보다 중요해진 건 오대수를 가둔 이유이다. 관객이 알고 싶은 것도, 감독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도 오대수의 복수 스토리가 아니라 이우진이 오대수를 가둔 이유가 되었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이우진의 영화라고 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복수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15년간 그를 가두고 그 아내를 죽이고 그 딸과 성관계를 맺게 한 걸까? 영화를 보고 내가 생각한 바로는 전혀 아니다. 이우진은 굳이 오대수에게 무슨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이우진은 그냥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누나가 자살한 그 순간부터 이우진의 삶의 목표는 '그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이우진은 직접 그 질문을 오대수에게 던진다. 너희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누나가 자살하였을 때 이우진이 소문을 퍼뜨린 원인이 된 오대수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영화의 진행상태로 볼 때 나는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복수심을 품었다기 보다는 어떤 한숨나오는 질책을, 아니면 질문을 하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기에게 우유 먹일 돈이 없어서 일주일간 고민하다가 슈퍼에서 우유 하나를 훔친 엄마가 자신을 죽어도 싼 도둑년이라고 보도한 신문기자에게 '너라면 어떻게 했겠어'라고 묻는 것처럼. 이우진은 누군가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난 정말로 누나를 사랑했는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단지 누나였을 뿐인데. 그런데 그게 둘 중 누군가가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건지.

질문의 대상이 오대수가 된 것은 오대수가 소문을 나게 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복수심의 발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문을 나게 한 사람한테 '내가 그렇게 잘못한거야?'라고 물어보는 게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질문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나가 죽어버린 상태의 우진은 그냥 쓸데없는 문답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진짜 답변을 듣고 싶었다. 진짜 답변을 듣기 위해선 '만약 너가 이랬다면'따위의 질문은 할 수 없다. 난 내 여자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녀석이 진심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머리에 총을 겨누고 니가 죽을래 아님 니 여자친구를 죽일까 라고 묻는 방법 밖에는 없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들고 나오면 진짜 답변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짜 답변은 그 상황에서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우진은 오대수를 그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오대수 역시 자신의 핏줄에게 사랑을 느껴야 했고 그제서야 이우진은 진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랑하는 감정을 자기 마음대로 생기게 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사랑의 상대는 자신의 핏줄이다. 인간의 이성이 존재하는 이상 자신의 핏줄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그것을 곧바로 사랑이라고 믿어버리기는 쉽지 않다. 이성은 어떻게든 그러한 감정을 막을 것이었다. 그것은 곧 이미 안면이 있는 핏줄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얘기이다. 오대수가 그의 누나나 여동생(만약 있더라도)에게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애초에 시도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얼굴을 알 수 없는 핏줄은 이제 딸밖에 남지 않는다.

딸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누나나 여동생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힘든 일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둔 것이다. 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15년 동안. 15년 후 딸은 20대의 아가씨가 되어 있을 것이고(사실 아름다울지 아닐지는 모른다) 오대수는 15년 전의 꼬맹이가 그 아가씨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왜 가뒀는지가 아니라 왜 이제서야 풀어준건지가 더 중요한 거라고 말한다. 바로 이 이유다.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15년인 이유는 그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우진은 굳이 얘기하지 않지만, 이 이유 때문에 이우진은 오대수가 딸을 하나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 오대수의 부인이 살아있으면 딸이 사라진 아버지의 존재를 알 수도 있고, 그 사진을 볼 수도 있고 하여간 -_- 살아 있으면 일이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그래서 부인도 죽어줘야 했다. (이우진은 누나가 죽은 그 날부터 오대수에게 질문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건 인물이다)

드디어 오대수와 미도는 사랑에 빠진다. 이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굳이 미도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 그냥 미도가 네 딸이라고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오대수는, 만약이라는 가정 따위의 질문이 아니라 진짜 그 상황에 처해버린 오대수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대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대수는 자신의 혀를 잘랐다. 끝까지 이우진의 의도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이우진에게 대답을 해 준 것이다. 이 대답을 들은 이우진은 오대수를 내버려두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살한다. 만약 복수를 하고 싶은 거였다면 오대수를 살려둘 이유도, 미도에게 앨범을 보여주지 않을 이유도, 자신이 죽을 이유도 없다. 이우진이 자살한 이유는 삶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누나가 자살한 그 순간 이미 죽은 영혼이었다. 그 영혼이 15년 넘게 자신의 삶을 지탱한 이유는 오직 그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성취된 이상 죽은 영혼은 더 이상 생명을 지탱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오대수가 자신이 딸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이우진은 미도에게도 앨범을 보여줬을 것이다. 사랑은 둘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대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우진은 자살했다. 하지만 남들은 모두 안된다고 하는, 친누나를 사랑했던 이우진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친누나를 사랑한 자신이 아니라 친누나를 사랑하는 자신을 욕하는 세상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복수할 의지는 없었다. 우린 정말 사랑했었어.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체념과도 같이 내뱉은 말이다. 진짜 사랑한 거였는데, 단지 친누나라는 이유 때문에...라면서.

이쯤되면 올드보이는 오대수의 복수극이라기보단 친누나를 사랑했던 이우진의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혹시나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진 않을까라면서 15년 넘게 죽음을 미뤄왔던 한 남자의 이야기. 틀렸다는 진짜 답변을 듣는 그 순간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했던 남자의 이야기 말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도 이우진은 혼잣말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누나 말이 맞았나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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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만들며 배우는 자바 프로그래밍 - 모든걸 알켜주마!
임동혁 지음 / 제우미디어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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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책이다. 보통 처음에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되면 문법을 익히는 데에만 질리기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게임을 만든다는 흥미로운 과정을 통해서 그 문법을 좀 더 편안하게 익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자바의 개념 설명에도 노력을 한 것이 보인다. 다만, 이 책은 입문서이므로 프로그램 디자인과 같은 고급 개념은 거의 없다. 이 책에 있는 모든 코드를 한 번 정도 타이핑 해보는 것 만으로도 꽤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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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S.E - 스펙트럼 인기외화 할인20선
윌리암 프레드킨 외 감독, 사무엘 잭슨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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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낸 바 있다. 무장 민간 시위대의 공격에 맞서 대사 가족을 구출하고, 급기야 시위대에 발포를 해 83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칠더스 대령의 명령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 좀 더 정확히는 그가 무죄라고 입증하려 하는 -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교전 수칙이다. 대충 말하자면 민간인을 상대할 때의 교전 수칙 정도 될까나. 사격받기 전에 사격하지 말 것. 사격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상대의 응사를 종식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만을 사용할 것. 뭐 대충 이런 내용들 되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교전 수칙이 아니라 제목에 적어놓은 바 있는 Deadly Force이다. 이건 말 그대로 사람을 사살할 수 있는 힘이다. (정당방위나 자위권 발동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며, 실제 미군은 어떠한 경우에 사람을 사살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교육받는다) Deadly Force란 상대를 죽이지 않고서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또는 군사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그 상대를 사살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Deadly Force야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싶겠지만 실제로 군인이 민간인을 사살할 수 있는 힘을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똑같은 상황을 놓고 Deadly Force를 행사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미군을 눈 앞에 만났느냐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영화는 예맨 대사 구출작전 과정에서의 Deadly Force가 발동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전에 베트남전의 얘기도 대충 낑겨 넣고,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내용들을 계속 나열하면서 칠더스 대령의 무죄를 입증하려 한다. 베트남전에서 군사작전을 위해 포로를 사살한 것 - 포로 사살 및 포로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심문하는 것은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 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시에 미군 일부가 월맹 비정규군으로부터 전멸당하는 장면을 같이 끼워넣었으며, 이어서 대사관 주변 안전 확보 및 대사 구출이라는 임무가 부여되었을 때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Deadly Force가 발동된 것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예멘은 엄연한 독립국이다. 따라서 대사관저는 치외법권지역이나 대사관저를 둘러싼 나머지 땅은 모두 예멘의 영토이다. 따라서 시위대의 행동을 막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엄연히 예멘 정부에 있다. 경찰이 하든, 경찰이 못 하겠으면 군대가 하든간에 시위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예멘 정부에 있지, 예멘 정부가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대충 미군 해병대가 가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다가 대사가 잡혀서 죽어버리면? 그럼 그 때가서 외교 분쟁이 발생한다. 예멘 정부가 치안을 보장 못 하니 미군을 주둔시키겠다든지 아니면 기분 나쁘다고 예멘하고 전쟁을 일으켜버리든지는 그 다음의 일이지, 그 다음 일이 걱정되니까 마음대로 해병대를 보내버리고, 급기야 민간인을 사살하는 그러한 권한은 미국에 주어진 바 없다. Deadly Force도 어디까지나 그 상황이 정당한 상황일 때에나 가능한 권한이다. 미군 해병대가 파견된 것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 영화는 완전히 미국의 논리에 싸여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며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자국민에게 피해가 있을 것이 우려되면 그 나라와의 협의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미군을 파견할 수 있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논리이다. 그러나 요즘 세계를 둘러보면 미국에 의한 평화라기 보단, 미국에 의한 불안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남을 무시하고 힘으로서 제압하려 드는 미국의 대외 정책. Deadly Force는 그 대외 정책을 집약시킨 것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아직도 군사교육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 미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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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세트 - 전10권 - 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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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읽으면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소설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문학작품이라고 보기에 그것은 너무 적나라하고 직접적이고 에피소드의 나열식이다. 문학작품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강을 읽는 동안 다른 것은 손도 대지 못했다. 밥먹는 시간 말고는 새벽 6시까지 책을 놓지 않았고 3일만에 10권을 모두 읽었다.

대체 3일만에 10권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이나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책이 아니다. 읽으면서 그 의미를 따지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가 무얼 배울건지를 따지는 그런 책이 아니다. 이것은 가려져 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나라가 불과 몇십 년 전에 이랬구나.

한강은 연필로 쓴 글이 아니다. 칼로 남기는 상처다. 꼬이고 왜곡되었던 우리 나라의 역사 한 켠을 헤집어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한 자 한 자를 '경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자신의 모든 것을 국가에 바쳐야 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봐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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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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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는 1939년 9월 1일 도이칠란트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발발 원인은 1933년에 집권한 히틀러의 침략욕 - 특히 레벤스라움으로 대표되는 게르만 인종을 위한 영토 확보 - 에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통상적인 견해를 뛰어넘어 세계를 지배하는 이론이다. 이 책의 저자인 테일러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히틀러에게의 책임 전가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득이 되는 선택이었다는 주장이다. 전쟁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인종청소까지 자행했던 도이칠란트나, 소련의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굳이 서독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던 미국이나, 1930년대의 대독일 유화정책을 폈던 영국이나, 전쟁 직전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소련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히틀러에게 떠넘긴 것이다. 게다가 히틀러는 이미 죽었으니 변명 한 마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테일러 교수는 2차 대전의 뿌리를 1차 대전에서 본다. 물론 수많은 책도 1차 대전에서의 잘못된 종결이 2차 대전을 불러왔다고 하지만, 그것에는 히틀러라는 특수 조건이 반드시 포함된다. 히틀러가 없었더라면 과연 2차 대전은 발발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히틀러는 애초에 전쟁을 일으킬 목적이었을까?

거짓말의 명수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하나를 양보하면 다른 하나를 요구했다고 알려져 있는 히틀러. 그가 집권 후 7년 간 단 한 번도 서부 국경선에서의 영토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와 주데텐이 히틀러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그 자신들의 넘겨짚기에 의해서 독일에 편입되었다는 테일러 교수의 주장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독일에 편입된 지역의 주민들이 대부분 그것을 환영했다는 사실도 무조건 거짓이라 매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심지어 2차 대전의 직접 원인이 되었던 단치히마저도 인구 구성이 100% 독일인이었으며, 의회는 나치 당원이 장악한 국제적 자유시였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대체 히틀러가 정말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 된다.

저자는 히틀러에게는 애초에 전쟁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도이칠란트에게 장기전 수행능력이 없다는 것은 히틀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는 점이다. 히틀러는 이 고민을 이른바 '뻥카'로 해결했다.

북한이 남침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것을 계획남침설의 증거로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전쟁계획설은 서부유럽을 단 2개월만에 장악한 사실이 증거가 되곤 한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던 그 순간까지 히틀러의 독일군은 실제로는 프랑스군보다도 더 허약한 군대였다. 독일의 믿을 수 없는 승리는 독일군의 강대함 때문이 아니라, 독일군 지휘부의 전략적 뛰어남과 프랑스군의 전략적 실책에 의한 것이었다. 2차 대전을 통틀어 독일군이 강대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는 그리 많지 않다. 서부 유럽은 만프레드 장군의 전격전이 채택됨으로써 순식간에 점령한 것이고, 소련 전역은 이미 한 번 써먹은 전격전이 다시 한 번 효과를 발휘한 무대였을 뿐이다. 북아프리카에서이 승리는 사실상 롬멜 개인의 승리라고 해도 좋다. 독일군은 어떤 전선에서도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적은 없었다. 히틀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테일러 교수는 전쟁의 원인을 베르사유 조약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는다. 1차 대전에서 독일과 러시아는 둘 다 패배했으며 그 결과로 수많은 동유럽의 독립국이 탄생했다. 독일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서부영토는 납득 가능했지만, 잃어버린 동부영토는 패배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독일에게 동부영토 회복은 자존심의 회복이었으며, 이러한 독일의 국가정책에는 영국과 프랑스조차 논리적으로 동조했다.

왜 독일은 전쟁을 일으켰을까 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라. 왜 2차 대전이 발발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전쟁에선 선과 악이 없다. 독일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 시대를 돌이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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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귯 2005-12-15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프레드 가 아닌, 만슈타인 입니다.... 그리고 독일군이 프랑스군보다 허약했다는 부분은 지나치게 넘겨 짚고 있군요...수량이 군사력을 대변하는 유일한 지표가 아닙니다.전쟁 직전,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기갑사단을 갖춘 최강의 육군국이었습니다.그리고 전략적 선진성은 군사적 선진성없이는 불가능합니다.전격전이란,기동력의 우월성 없이는 불가능한 이론입니다.. 그리고 테일러 교수의 지적은 파격적이고,또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히틀러에게 애초에 전쟁에 대한 구상이 없었다는 확증은 내리지 못하였죠.과연 1차대전을 설욕하고 싶은 야망이 히틀러에게 없었을까요?온갖 수단을 동원해 프랑스를 모욕했던 항복협상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단순히 즉흥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