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가장>


21살 이전에 나의 삶은 피폐했다.

어린나이에 사업해보겠다고 까불던 나 때문에 집안 형편은 기울어졌고,

집이 기울고 더 악화됬을쯤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가장이였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다시 원상복귀 시켜야되는 부담이 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때 이혼하셨고 미성년자인 나와 여동생을 보살필 사람은 어머니뿐이였다.

당시 어머니는 보험회사에 다니셨고 허리디스크를 숨기며 보험방문판매를 하셨는데, 

많이 아프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한번의 내색없이 매일 출근하시다 종국엔 움직이지도 못할정도가 되셨다.

만일 어머니가 아프지만 안았다면 내가 저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심도 지금 해본다.

 

빚을 갚기 위해 사는날 하루하루가 바빴고 3개의 일을 동시에 짊어져야만 하는 젊은 가장이였다.

당시 어린 나이지만 옷가게 나는 사장이였다.

(마지막 재산 300만원을 가지고 옷장사를 시작했다) 

말이 사장이지 다른 직원들과는 별다를것이 없는 볼품없는 일개 노동자였다. 

알바를 세워 놓고 오후엔 도시락배달을 했고 저녁엔 호스트바, 택시알바도 하였다. 

집에 빚은 2천만원정도였는데 당시 일수를 빌려 돌려 막기를 하면서 이자를 갚아나갔고

돈을 벌어봤자 당시 일수매꾸기에 바뻤던 나날들이였다.

그렇게 3년정도를 지내다 보니 나의 개인적인 시간과 삶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뎌져 버렸다. 

지금 다시말하자면 그런 생각해볼 시간도 없었다.

돈버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친구들을 보면 항상 부러웠다.

나도 놀고싶고 연애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그런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덧 집의 빚은 이제 천만원 정도 남았다. 

‘이것만 갚으면 이젠 끝이구나!’

근데 나에게 예상치도 못한 한편의 우편이 날라왔다.

‘2005년 9월 1일 ㅇㅇ훈련소’ 입영통지서다

핸드폰을 열어 오늘날짜를 확인했다.


2005년 6월의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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