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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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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페미니스트들은 아버지를 이해하려 할까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나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질문받기 전까지는 그런 경향성이 있는지 모르다가 질문을 받고서야 왜 그럴까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페미니스트가 되는 데 아버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클 것이다. 아버지가 긍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리란 것도 어렵잖게 추측할 수 있다. 그 질문은 그러니까 왜 뺨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이해해야 하냐는 질문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저자의 아버지는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어머니와 이혼하고 헝가리에 돌아간 뒤 저자와 연락이 단절된 채 살았다. 어느 날 저자는 아버지가 70대의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하여 생물학적 여성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헝가리에 가 아버지와 재회한다. 그 후 10년에 걸쳐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그의 삶을 조사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는지 선명히 드러난다. 특히 부모의 이혼 때는 저자도 어머니도 아버지의 폭력, 스토킹, 살해 협박 등에 노출되어 고초를 겪었다. 연구 대상에 애정이 생겨야 책이 쉽게 읽히는 법인데 읽을수록 저자의 부친에 대한 반감만 커진다. 저자의 아버지가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은 또 왜 이런지 저자가 꼭 다 알 필요가 있을까? 그거야말로 세상의 역학이 작용하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고, 약자가 강자를 이해하는 방식 그대로가 아닐까? 


아버지는 인터뷰에 매우 비협조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를 탐구하고, 헝가리 역사를 탐구하고,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헝가리계 유대인을 탐구하고, 아버지의 친척, 친구,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전 인류를 이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서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대한 분석이 나오는데 매우 흥미롭다. 이는 유대인(나아가 소수자 전반)에게 적대적인 헝가리에서 그 자신과 부모를 지키기 위해 정체성을 연기하곤 했던 아버지의 특성과 느슨하게 연결된다. 이런 식의 탐구를 통해, 비록 아버지의 생각과 선택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건 어쩌면 이 책의 미덕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생각은 그 자신도 다 이해할 수 없다.(이 책의 아버지처럼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하물며 타인이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저자의 말처럼, 불가해함을 존중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완전한 이해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저자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는 분명 가해자였다. 그러나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함으로써 저자 또한 아버지를 상처입혔다. 저자는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저자가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건 아버지가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다름 아닌 저자 자신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도 독립한 뒤에야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전과 달라졌다. 함께 있을 땐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벗어난 뒤에야 아버지의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려 시도하면 아버지도 내 쪽으로 마음을 기울여 준다. 저자가 느꼈을 감각을 내가 이해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한다. 역시 부모를 대하는 것은 운명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이해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스톤은 그들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무언가 잡종적인 것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두 개의 성에 고정되어 있는 이 세계의 근본적인 가정을 위협하는, 비결정적이거나 다층적인 젠더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괴물의 약속’을 수용해야 한다. - P231

나치 유럽을 살아가는 젊은 유대인 남성으로서, 그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하건 간에, 그리고 그가 얼마나 확신에 차서 화살십자당 완장을 차고 "하일 살러시!" 경례를 하건 간에, 아버지는 그의 적이 늘 트럼프 카드를 쥐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들이 그에게 저 뒷방으로 들어가 바지를 벗으라고 말하는 순간, 게임은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여자라고 선언한 지금에는 설사 젠더 경찰이 그녀를 뒷방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이 여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 - P570

스테피, 당신을 낳기 전 갓 태어난 두 아이를 잃고 비탄에 빠졌던, 그러나 끝내 얻은 독자를 유모에게 맡겨 놓고 밤마다 시내로 놀러 나갔던 당신의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는요? 전쟁 중 부다페스트에서 당신 스스로 당신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길에 버려 둔 사람, 바르 미츠바에 오지 않았고, "내 아들, 이슈트반 팔루디에게는 1리라를"이라고 유언장에 썼던 그 아버지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의 딸은요? 당신이 바라는 손주도 낳지 않고, 이토록 특별한 재발명 혹은 재주장의 행위에 당신이 초대하기 전까지는 당신 삶에서 스스로 추방돼 버렸던 딸은요? - P603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도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삶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 P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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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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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성폭력 사건에 대해 처음 듣는 순간부터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했던 심리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여성’으로서의 자아 이전에 ‘직장인’으로서의 자아가 튀어나온 결과였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도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문장이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의 일상 속에 사람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일어나는 폭력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 수직 관계의 약자들이 느끼고 있는 일상적 위력은 눈에 보이는 폭행과 협박뿐만이 아니다. 침묵과 눈빛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 직장에서 술을 강요당하고, 달갑지 않은 농담을 참고 들어야 하는 것, 회식 자리에서 술 수발을 들어야 하는 것 모두가 일반적인 노동자 다수가 겪는 위력의 문제다.’ 관계 안에 이미 폭력이 있고, 다만 그것이 성폭력이었던 게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사건 당시에는 보다 자극적인 쪽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안희정 측 주장을 더 많이 들었다. 나중에 <미투의 정치학>을 읽으면서 김지은이 쓴 글은 따로 책으로 나올 예정이라고 알게 되었고 김지은 측 주장도 그때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읽기 전에 내가 예상했던, 예컨대 이토 시오리의 <블랙박스>처럼, 폭행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다든지, 안희정 측 주장은 이런 점에서 오류라든지, 그런 내용을 타임라인에 맞추어 설명하고 반박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자신이 겪은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고, 안희정 측 주장도 일일이 이런 루머가 있는데 이건 잘못이라고 논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저자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직업을 거쳐 안희정 밑에서 일하게 됐고, 업무의 성격이 어땠고, 상사의 인격이 어땠고, 일터 분위기는 어땠는지 띄엄띄엄 이야기한다. 그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아 일이 그렇게 됐겠네, 그건 사실이 아니었겠네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형식이기 때문에 이 책은 과거를 해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미래로 가기 위한 책이라고 느꼈다. 비슷한 문제로 고통받는 이가 있다면 그들에게 힘을 싣기 위한,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이 문제를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만든 책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출간 결정하기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특히 중간에 색지로 삽입된 저자의 일기 발췌는 읽기 미안할 만큼 슬프다. 이런 고통 속에서 책을 낼 결심을 한 저자에게 새삼 존경심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책은 다 읽었어도 에필로그는 아직 읽지 못한 느낌이다. 저자가 다시 직업전선에 복귀하고, 어떤 분야에서든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그제서야 이 책을 다 읽었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


중간중간 <뉴스룸> 인터뷰 전문, 수행비서로 일하던 때의 업무 매뉴얼, 사람들이 법정에 제출한 탄원서나 소명 내용 등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수행비서 업무 매뉴얼이 인상적이다. 업무량이 많고 의사결정이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 공직자에게 업무상 비서가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이해되는데, 일상생활 24시간까지 전부 돌보는 비서가 정말로 필요한가? 양복 핏이 안 산다고 주머니에 담배도 안 넣는 상사 보좌하느라 핸드백에 담배를 넣어 다니고, 자다가도 일어나 사모 대리운전하러 가고, 상사 개인전화를 착신전환해 24시간 전화를 받고, 심지어 상사가 전화할 일이 있을 땐 비서가 발신 버튼을 눌러 전화가 연결되면 상사 귀에 대 주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책에는 동종업계 종사자가 제출한 탄원서도 실려 있는데, 비서 업무는 상사의 ‘심기’를 편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가능한 일인가? 업무 목표가 타인의 기분을 편하게 하는 것이고, 업무 시간이 24시간인 상태에서, 그걸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 본인 멘탈까지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한지 모르겠다. 번아웃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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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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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사하맨션’은 가상의 국가에 위치한 가상의 맨션이다. 한 기업이 일정 구역을 구입해 독립 국가를 세웠는데 시민들은 그곳을 ‘타운’이라 부른다. 타운 거주자는 영주권을 가진 L과 영주권을 갖지 못한 L2로 나뉜다. 고용 안정성을 비롯한 여러 차별이 이 두 계급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변두리에 L2조차 취득하지 못한 불법 체류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하라 불리고 이들이 모여 사는 맨션이 바로 사하맨션. 사하맨션 주민들의 삶을 단편으로 묘사하고 그 이야기를 모아 엮은 연작소설 형식이다.


가상의 국가이긴 하지만 주인공들은 한국 이름을 쓰고 살아가는 방식도 매우 한국적이고 이 나라가 세워진 과정도 더할 나위 없이 한국적이다. 사하에게 벌어지는 일들도 매우 한국적이다. 한 사람이 나고 자라나고 죽기까지, 현대 한국에서 약자인 이들에게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차별과 불평등과 폭력이 사하맨션 거주자들에게 빠짐없이 자행된다.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연대하며 버티지만 그 연대조차 너무... 약한 이들의 연대, 뭔지 알죠 빗자루로 조금 쑤석거리면 당장 끊어지는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그런 연대에 불과하다. 그런 이야기다.


근데 이렇게 정리하고 끝내면 이 소설의 폭력성이 지나치게 요약되지 않을까? 마치 사회면 기사의 헤드라인처럼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끝나 버리지 않을까? 예컨대 이야기의 한 꼭지로 L2 시민권을 지닌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보육사가 되는 것이 꿈이고 재능도 충분히 있는데 L2 시민권으로는 보육사가 될 수 없어. 그 시민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보육원 조리사. 그래도 그나마 그녀는 L2인 덕분에 그녀의 꿈을 도울 수 있는 L 즉 보육원 원장과 아는 사이이고 원장의 도움으로 보육사로 발탁된다. 자신의 꿈이기도 했거니와 L2가 보육사가 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였기 때문에 그녀는 더 열심히 일하는데 타운에 전염병이 돌아 보육원 원아가 감염된다. 감염된 아이들은 보육원에 격리되는데 아이들이기 때문에 보육사가 필요해. 그래서 그녀를 비롯해 단둘뿐인 L2 보육사들이 남아 아픈 아이들을 돌보다 끝내 사망한다. 이 이야기가 유독 인상적이었던 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벌어지는 현상들과 겹쳐서이기도 하겠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오싹한 일들. 그런 비극이 있었노라고, 단 한 줄로도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책 한 권으로도 다 말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이 소설은 그린다. 읽다 보면 자꾸만 ‘왜 이렇게까지? 꼭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로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고 작가는 설탕 한 숟갈 넣지 않고 그것 그대로 그리고 있을 뿐이지. 그러고 보면 <82년생 김지영>의 작가다. 김지영도 단 한 줄 때로는 단 한 단어로 묘사되는 사람, 하지만 사실은 책 한 권으로도 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 사하맨션과 김지영은 소설의 형식면에서 많이 다른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소설을 쓴 사람이라 이런 소설도 썼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점이 있었다. 소설 결말부에서 진경이 밝혀내는 이 세계의 비밀도 흥미롭다. 사실 뒤로 갈수록 숨 막히고 답답해지기 때문에 나는 진경의 마지막 대사가 아니었으면 진짜 많이 괴로웠을 것 같아.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이것이 아마도 김지영과 사하맨션을 나누는 대사인 것 같아. 김지영이라는 한 인물(물론 통계에 기반해 만들어진 인물이라도)을 다룬 <82년생 김지영>과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사하맨션>의 차이일 수도 있고, 그동안 작가의 생각이 변화한 것일 수도 있고, 사실은 작가의 생각이 안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독자로서 그리고 지금을 사는 사람으로의 나를 구한 건 역시 이 대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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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 평전
낸시 B. 라이히 지음, 강자연.하인혜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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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해서는 일자무식하지만 슈만-클라라-브람스의 삼각관계는 들어 본 적 있다. 그중에서도 삼각관계의 여주인공인 클라라 슈만에 대해서는 소위 팜므파탈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이번에 평전을 읽어 보니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공적으로 클라라 슈만은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당대에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피아니스트였다. 작곡도 했고, 슈만 사후엔 슈만 저서의 편집을 도맡았다. 인기 있는 피아노 교사였으며 나중에는 대학 교수로도 일했다고 한다. 반면 사적인 삶은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억압, 신동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평생 이어진 생계 책임, 부친과의 소송까지 감행한 결혼, 잇단 출산, 남편의 정신병원행과 이른 사별, 자녀들의 잇단 죽음... 등으로 점철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녀의 공적인 삶이 이토록 바빴던 건 생계 책임 때문이기도 하고, 예술적 욕구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특히 그녀가 삶의 비극적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여사제라 불릴 만큼 엄격하고 성실한 특유의 태도로 일에 몰두함으로써 고통을 잊은 덕분이라고 한다. 유산한 다음날도,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에도 무대에 올라 연주했다고 하니, 그 자제심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클라라 슈만은 성실하게 연주하고 많이 작곡하고, 요약하자면 어떻게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이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지켰다. 수년간 클라라 슈만은 루드비히에 대한 염려에 시달렸지만, 로잘리 레서에게 1871916일에 쓴 것처럼 단호하게 그 환영들을 몰아냈다.”(296)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음악을 통해서만큼은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커리어를 지속해 나가기를 고집했던 것 같고, 여러 가지 여건상 그것이 허락되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도 생각된다.

 

음악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클라라 슈만에게 위안처가 되었다. 음악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일생 동안 꾸준히 함께한 질병, 죽음, 그리고 비극을 견딜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클라라 슈만은 고통을 경감시키는 전문 연주자로서의 활동에 감사하며, 율리의 죽음 이후 지휘자이자 함부르크의 오랜 친구인 아베 랄르망에게 편지를 써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중압감에 눌린 내 영혼이 안도하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제대로 울었던 것처럼.”(271)

 

특히 이 대목에 공감했던 건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나서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새 집에 들어갈 일정이 늦어지자 한 달 정도 단칸방을 빌려 온가족이 거기서 잔 적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독방을 쓰다 갑자기 가족들과 함께 자야 하는 상황이 솔직히 엄청 힘들었지만, 가족 모두 힘들 게 분명하니 내가 힘들다는 걸 털어놓을 수 없었고, 표현하지 못해 더 힘들었는데... 그때만큼은 직장이 있어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만약 직장이 없었더라면 온종일 단칸방에 혼자 있어야 했을 테니까. 그 외에도, 집안일이나 또 다른 곳에서 생겨난 고민거리를 열심히 일하느라 어느 정도 망각하는 일이 꽤 많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어떤 고민거리들은 자연히 소멸하거나 처음에 비해 아주 작아지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직장인들이 누구나 크고 작게 겪어 보았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클라라 슈만의 직업활동이 공감이 되었다.


특유의 엄격한 성격도 부러웠는데, 이건 천성적인 면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교육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하면 오묘한 기분이 된다. 사실 이 평전에서 묘사되는 클라라 슈만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는 좀 끔찍한 인물이다. 특히 아버지가 어린 클라라의 일기장을 같이 쓰고, 심지어 그녀의 일기장에 자기가 글을 쓰면서 마치 클라라가 직접 쓴 것처럼 라고 지칭하는 건 좀... 많이... 기괴하게 느껴진다.(후에 클라라가 남편과 결혼 일기를 썼다는 걸로 봐서는 19세기에는 흔치는 않아도 더러 있었던 일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클라라가 아버지와 만난 날의 일기를 아버지 쪽에서 직접 작성하면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를 호텔에 모시고 갔다뭐 이런 식으로 썼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비크는 이런 식으로 딸의 의식, 무의식을 통제했던 것 같다. 클라라의 연주회와 관련해 직접 작성한 온갖 사무 문안(연주자에게 책정된 비용이 너무 적다 등등)들도 딸에게 베껴 쓰게 했다고 하는데, 매우 직설적이고 조야해 베껴 쓰는 것만으로도 무척 고통스러웠으리라 추측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는 후일 클라라가 스스로 연주회를 기획하고 컨트롤할 때 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추측하며, 또한 아버지의 교육하에 형성된 극도로 자제심 높은 생활태도가 그녀의 삶의 난관들을 이겨내는 게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걸 생각하면, 순간순간의 행불행을 단지 그 순간의 느낌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 그리고 슈만과의 관계에서 결혼 초기 클라라의 연주수입이 슈만의 작곡수입보다 많았고, 당대 사람들 사이의 인지도도 클라라 쪽이 훨씬 높았다는 언급도 새로웠다. 슈만이 재능 있는 아내를 지지하는 한편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양가적 반응을 보이는 대목이 재미있다. 그와의 관계에서 아쉬운 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클라라가 슈만을 의식해 작곡을 거의 하지 않았고, 슈만 사후에는 아예 작곡을 그만뒀다는 점이 그렇다. 너무 존경하는 작곡가와 결혼하는 바람에 정작 자신의 작곡 능력을 발전시키는 건 스스로 포기해 버린 느낌이랄까. 뛰어난 연주자였다지만 현재는 녹음본도 남아 않으니, 작곡과 연주 중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을지언정 연주에 비해 작곡 쪽이 수명이 긴 것은 분명하다. ... 근데 클라라 슈만이 작곡한 곡을 들어볼 기회는 있었는데, 좀 우울하고 듣기 편한 느낌은 아니긴 했다.^^;


, 브람스와의 관계에도 한 챕터가 할애되어 있다. 클라라가 브람스보다 14살 연상이고, 슈만보다 9살 연하니까 브람스에게는 슈만이 대선배이자 스승 정도 위치인 것 같다. 브람스는 슈만 생전에 부부를 알게 되어 매우 친밀하게 지냈는데 슈만 사후에는 아예 슈만 가에 1년 정도 머물며 클라라를 도왔다고 한다. 슈만이 생전에 작성하던 가계부를 대신 쓸 정도로 생활 전반을 살뜰히 챙겼고 잠깐이지만 슈만 자녀들 피아노 레슨까지 해 주었다고. 저자는 클라라와 브람스 사이에 결혼 이야기도 오간 것으로 추측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우정 관계를 유지했는데, 예술 면에서뿐 아니라 생활 면에서도 두 사람이 정말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예술 면에서는 클라라가 브람스가 작곡한 곡을 1순위로 보는 사람이었다고 하며, 생활 면에서는 브람스가 돈 관리를 잘 못해 작곡으로 번 돈을 초반에는 클라라에게 모두 맡겼다는 이야기도 있고, 클라라가 브람스에게 신문 쿠폰 보관 및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편지도 인용된다. 브람스 쪽에서도 클라라를 살뜰히 돌보았지만 클라라가 자녀 교육에 대해 의견을 묻는 것에만큼은 아무 조언이 없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열심히 들어주고 돈만 보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뭔가 웃음이 터졌다. 브람스는 자식이 없으니까요.ㅋㅋㅋ 이거 엄청 이상적인 친구의 태도 아닌지. 아무튼 하도 의견을 많이 주고받다 보니 클라라가 브람스가 작곡한 곡을 무의식중에 차용하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부분도 감미로웠다.

 

1891, 클라라가 자신이 쓴 카덴차들을 모아 출판을 준비할 때, 그녀는 모차르트의 D단조 피아노 협주곡에 붙인 카덴차가 상당 부분 브람스의 멜로디를 차용하거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죄책감을 느끼며, 그녀는 자신의 카덴차에 브람스의 이름을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의 의사를 물었다. 브람스는 그런 식이라면 자신이 쓴 모든 아름다운 멜로디에 그녀의 이름을 넣어야 할 것이라며, “당신이 나의 선율을 몇 구절 쓴 것보다 몇 갑절로 나는 당신에게 많은 음악적 빚을 지고 살았습니다.”라고 답했다.(356-357)

 

여러모로 정말 재미있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이지만 매 장마다 그간의 선입견이 깨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라 순식간에 읽어치웠다. 평전을 평소 잘 읽지 않는데 얼마 전에 브론테 자매 평전을 읽고 이번에 클라라 슈만 평전을 읽어 보니 평전 읽는 즐거움은 역시 멀리서 볼 때는 화려하기만 한 누군가의 삶이 가까이서 보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점철돼 있고 그들이 고통 속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싶다. 특히 옛 시대의 생활사(하루에 몇 시간씩 편지 쓰기 등)를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평전 읽기인 것 같다. 아무래도 구체적인 등장인물을 통해서 기술되니까. 클라라 슈만의 기쁨과 슬픔, 꿈과 현실을 알 수 있어서 기뻤다.

 

그렇지만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름다운 재능이에요. 인간의 감정을 소리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요. 슬플 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건 근사하고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것, 음악을 순수하게 추구하는 일은 실로 고양되는 일이지요.”(클라라가 슈만에게 보낸 편지,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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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rosa 2021-04-1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거의 다 읽은 상태에서 소장하고싶어서 구매하려고 왔다가 리뷰를 읽었습니다. 저도 많이 공감이 되네요 좋은 라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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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스 기획 총서로 권김현영님 글을 몇 편 접했는데 단독 저서는 이번에 처음 내셨다고 한다. 칼럼을 비롯해 그간 발표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뒤에 목록을 보니 미발표 원고는 1건 있다. 사실 이런 짧은 글들을 엮은 책은 평소 잘 읽지 않았는데 이슈를 폭넓게 다루긴 하지만 논의가 깊이 전개되지는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고 그 시간에 깊은 내용을 다룬 책을 읽는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되었으므로...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대응하는 차원에서 쓴 글이 많다. 내가 기억하는 일도 있고 아예 모르는 일도 있는데, 내가 아는 일에 대해서는 저자 특유의 통찰력을 느꼈고, 몰랐던 사건에 대해서는 새롭게 아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쪽이든 관점이나 접근 방식이 섬세하면서도 묵직하다고 느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며 록산 게이 생각을 많이 했다. 음... 특유의 날카로운 문제제기가 비슷하다고 느낀 것도 있고, 소재상으로 영화 리뷰가 많아 <나쁜 페미니스트>를 연상한 것 같기도 하다. 아, 중간에 '대리 외상'이란 개념이 나오는데(타인이 겪은 고통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증상이라고 한다) 내가 읽은 페미니즘 책 중 가장 괴로운 경험담이 나오는 책이 <헝거>라서 무의식적으로 비슷하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책 보자마자 제목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문에서 저자는 '어떤 이야기는 흑역사이고 어떤 건 특정한 상황에서만 의미 있는 기록이다. 이런 흔적들을 남겨둔 것은 진화하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개인적으로는 이 취지에 깊이 공감했다. 조금 다른 얘기일지 모르지만 내게도 뭐랄까... 완벽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심리가 있어서, 내가 생각하기에 완벽하지 않은 지점은 자꾸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감추려 한다.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특히 그렇다. 책잡히지 않으려고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가며 말한다(혹은 쓴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어찌됐든 깨끗하지 못하고 뭔가 덕지덕지한 구간이라도, 그 구간을 걸어가야만 다음 목적지로 갈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숨기는 게 좋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이 문장을 보고서 들었다. 저자가 그 과정을 묻어버리려 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과정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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