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고정희
제 삶의 무게 지고 산을 오르다
더는 오를 수 없는 봉우리에 주저앉아
철철 샘솟는 땀을 씻으면, 거기
내 삶의 무게 받아
능선에 푸르게 걸어주네, 산
이승의 서러움 지고 산을 오르다
열두 봉이 솟아 있는 서러움에 기대어
제 키만한 서러움 벗으면, 거기
내 서러운 짐 받아
열두 계곡 맑은 물로 흩어주네, 산산
쓸쓸한 나날들 지고 산을 오르다
산꽃 들꽃 어지러운 능선과 마주쳐
제 생애만한 쓸쓸함 묻으면, 거기
내 쓸쓸한 짐 받아
부드럽고 융융한 품 만들어주네, 산산산
저 역사의 물레에 혁명의 길을 잣듯
사람은 손잡아 서로 사랑의 길을 잣는 것일까
다시 넘어가야 할 산길에 서서
뼈 속까지 사무치는 그대 생각에 울면, 거기
내 사랑의 눈물 받아
눈부신 철쭉꽃밭 열어주네, 산, 산, 산
-요즘 등산교실에 입학하여 산을 공부하려 한다.
항상 멀리있던 산... 바라보이던 산... 과
함께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산길에 오르면 많은 상념에 젖게 된다. 시인 고정희의 마지막이 산길이었듯이
시인의 시에는 산에 관한 시어와 관념이 많다.
그녀가 바라보는 산은 어떠했을까...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에게도 산은...
가까이 갈 수 없었던,...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담담한 고독과 실존만이 담겨 있는 산속의 시간과 공간...을
향해
더이상 늦지 않기 위해
이이상 견딜수없는 마음으로
다가서고자 한다.
-봄만 되면 병이 길다. 무엇이 날 이렇게 가슴뛰게 하는 것일까
이것이 아픔일까 고통일까 아님 그런 것들을 가장한 무엇... 충만, 사랑, 생명, 진실, 절실함, 순간들...
방에 갇혀 있어도 이 모든 공간이 봄기운으로 가득차 있다, 나는 피할 수 없다.
2004년4월9일 등산학교2주째준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