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1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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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1

  연인 서태후로 처음 중국 문학을 접한 이후 무엇을 볼까 고민하던 내게 홍루몽 12권 완역 소식은 마른 땅위에 내리는 단비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더욱이 중국 고전 문학의 백미,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가 없다 칭송을 하니! 궁금증이 안 일겠는가.
  
  홍루몽은 상,하편 혹은 5권으로 번역되어진 책이 있었고 그간 홍루몽을 볼 것인가 말것인가 고민했었는데 그 책들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루몽은 애초에 석두기로 불리었으며 원본을 베낀 필사본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 많은 양, 방대한 양을 베껴서 돌려볼 만큼 재밌었나 싶은 의구심과 함께 열어본 첫장에는, 서울대교수의 추천글이 있었는데 교수가 적었던 추천글운 몹시 흥미로웠다.
  다른 타 출판사에서 낸 홍루몽이 120회로 작자 조설근이 쓴 80회에 40회를 더해서 120회로 만들었고 제목도 석두기에서 홍루몽으로 바꼈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동안 원작이 세월의 흐름을 타며 조금씩 변했기 때문이란다. 안의운, 김광렬이 옮겨낸 이 책은 변형된 120회본을 버리고 애초 필사본 80회본을 보다 충실하게 필사본 계통의 저본으로 삼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원작에 집착하는 듯한 내모습에, 하긴 다른 책을 봤어야 원작과 비교를 하겠다 싶었지만. 우선 원작이라니 흥미가 더 이는걸 어쩌겠는가.

  1권에서는 신분과 계층이 다른 400명이 넘는 등장인물, 중국이라는 땅덩어리에 맞게 큰 스케일과 전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론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전개될 내용의 요점정리본이라 할 수 있는 1권은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느낌이 강했지만 2권을 보고나니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소 어렵지는 않을까 싶은 우려는 처음 첫장 부터 정확히 맞아떨어졌는데, 중국 문학의 생소함 때문도 있지만 잔가지가 많아 중심 내용이 아닌 다른 이들의 삶 역시 넓게 퍼져있어 조금 집중할라치면 다른 이야기로 빠지니...거기다 1권에서만 대체 몇 명인가. 67페이지에 있는 가계도를 몇 번이나 들춰봐야 했으니 사실 2권보다 1권은 조금 가독성이 떨어지기도 했다.

  홍루몽의 주인공인 보옥이 또다른 주인공 대옥을 만나고, 경환선녀를 만나 홍루몽곡으로 전체적인 내용과 홍루몽 속안에 살아있는 인물들의 운명에 대해 암시하는 장면은 대돈방의 그림처럼 몽환적인 느낌이 강했다. 어쨌거나 잔 가지마냥 틔어 난 이야기들은 언젠가 그 정점에서 열매를 맺지 않을까란 기대감으로 1권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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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좌절, 이유 있다 - 하버드 박사 이창열의 슈퍼영어
이창열 지음 / 앱투스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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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오랜기간을 접하고 듣고 보았어도 그놈의 영어, 읊어내기는 커녕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니 이거야 원. 공부한답시고 영어 서적을 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꼬부랑거리는 활자를 보니 조금 '안다'라는 느낌에 자만심을 느낄 때 어김없이 이 영어란 녀석은 배신자가 되어 홀랑 날아가버렸다. 그 이후로 정말 책 제목처럼 영어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때. 이 책의 제목에 눈이 확 뜨여진 것이다. 
  영어 좌절을 극복한다는 실전적 영어 공부법이란 문구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데. 실제로 그러한가 그 속알맹이가 궁금해 촤륵 펼쳐보았다. 책의 구성은 영어의 목표가 무엇인지, 또 영어를 갈고 닦는 법, 기본기, 풍부한 표현력등으로 크게 나누어져있으며 또 세분화 되어 20장, 또 그것을 나누어 작은 소제목으로 영어 좌절에 대한 이유를 다루고 있었다.
  저자가 적은 프롤로그처럼 이 책 속의 내용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용한 정보는 맞는 듯 하다.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누가 먼저 그 정보를 알아채느냐가 관건인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은가. 영어를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와는 상관이 없겠지만, 누가 먼저 좀더 쉽게 풍부하게 그 영어를 알아가느냐에 대한 정보는 유익한 것이 사실이다. 외국어를 배울때 흔히들 하는 말이. 그 나라를 알아야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무작정 배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야 함이라 이구동성 이 책의 저자까지 외쳐대니 이제 이 말은 상투적인 대표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덮어내며 가장 갖춰져야할 기본기라고 또다시 느끼게 되었다.
  실제 회화를 하기에 필요한 단어는 그리 많은 단어를 필요로 하지 않다고 한다. 고등학생,수능생,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 모두 가장 처음 접하는 것이 단어이지 않은가. 1800개, 2000개가 우습게 달달 외워대도 실제 회화에는 상관없이 외국인을 만나면 입부터 얼어버리는 이유가 여태까지 우리는 너무 이성적인 머리로 습관적인 반복, 그저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언어를 대해왔던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감성적으로 자신이 가장 필요한 말을 하기 위해 처음부터 교육 받아온 외국인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그러한 것을 꼬집어 말해주고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어느 정도 참고하며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세련된 회화를 구사해, 아 이사람 영어 좀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느냐에 대한 부분이 세세하게 당장 입밖에 내뱉어볼 회화의 양식이 아니라 이러저러 하니 세련된 표현을 위해서는 이러저러 해야한다는 것이다. 
  몇 페이지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저자는 처음 외국에 가 어떤 할머니께서 주신 책을 보게 된다. 영국식 발음을 훌륭하게 생각한다든지 외국인이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편견을 모아놓은 책이라 했다. 그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말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이해해야 한다는 상투적인 말이 가장 실질적으로 와닿는 부분이었다.
  여러 중요한 정보가 있었고, 곁에 두고 생각날때마다 메모해두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영어를 할때 접미사를 이용해 단어를 외우면 좋다는 것과 사전 역시 동의어를 많이 알수록 회화의 표현이 좀더 풍부해진다는 것 정도? 이 책은 문제집도 아니며 참고서도 아니다. 더욱이 사전도 아닐 것이며 삶의 지침서도 아니다. 그저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본 선배의 따뜻한 격려 섞인 따끔한 충고정도라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적용해 공부를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느낌보다는 길잡이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 느낌이었다. 그러니 여러 불만어린 목소리가 나올 수는 있어도 본인은 유용한 정보를 얻었고, 가야할 길을 깨끗하게 다듬어낸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준비에 연연해하지 말고 부딪쳐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제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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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서태후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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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죽어가는 순간조차 그녀는 평범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태후는 한 남자의 아내였던 적이 없었으므로 한 아들의 어머니 또한 될 수 없었던 것이다.」-530p

 

  서태후, 꽃과 칼날의 여인이라 칭해지는 그녀를 잘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자는 서태후 그녀의 일생, 그녀의 정치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 뿐만 아니라 작가 펄벅의 시선에 담겨진 서태후를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보고 난 뒤에 느낀 것은 역사 속에 살아 숨쉬던 그들의 혼을 완벽하게 재조명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떤 역사서를 보아도 그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듯 하다.
 
  펄 S.벅의 필체는 연인 서태후를 재탄생 시켰듯 대담하면서도 부드럽다. 꽃처럼 부드러우나 칼날처럼 날카로웠던 여인, 서태후. 나는 그녀를 지금도 또 훗날에도 저 문구로 기억할 듯 싶다. 열 여섯의 나이에 사촌동생인 사코타와 함께 함풍제의 수녀로 들어가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여인, 한 남자를 평생 사랑했으나 그를 얻지 못하였고 또 다른 한 남자, 바로 자신을 황후의 자리로 올려준 아들을 위해 여인으로의 삶 역시 포기하였으나 서태후는 그 아들의 사랑 또한 그녀는 가질 수가 없었다. 아들이 죽어가는 순간, 영록이 죽어가는 그 순간조차도 서태후는 황실의 절대적인 실권자이며 통치자였지 평범한 여인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느껴진다. 자신의 여동생과 순친왕의 아들을 황제로 삼았을 때에도, 그녀는 조카에게 역시 사랑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엄격하고 암사자 같이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명령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조카가 사코타를 따르는 모습을 보며 서태후는 조카를 위한 자신을 정당화시켰지만 그녀가 인정했듯이 그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또, 동태후를 향한 질투심이었을 것이다. 물론 서태후는 강력한 황제를 원하였고 서구 열강이 일방적인 개화를 요구하며 수시로 침략의 이유를정당화 시키려 했던 만큼 자신만큼 강하고 올곧은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길 원했기에 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건륭제와 같이 훌륭한 황제가 되어 안전하게 자신의 권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그녀를 강인하게 했지만, 그녀만큼 강하지 못했던 그의 아들 동치제는 짧은 인생을 마감하며 서태후를 다시 가장 큰 권력의 중심에 올려놓는다. 그것은 서태후가 바랬던 것이 아닐지라도 황제의 아내로서 해서는 안되었던, 불륜으로 아들을 가졌고. 또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해서는 안되었던 아들의 부인을 시기한 이유로 그녀는 아들을 잃고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 된다. 그녀는 서구 장난감을 아들에게 사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죽어버린 아들의 손을 볼에 부비며 눈물을 흘리지만, 황제의 운명으로 타고났던 서태후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삶보다는 강력한 군주의 삶이 더 깃들어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면 여걸들에 관한 책은 딱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그동안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달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펄S.벅의 손으로 재탄생된 연인 서태후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치밀하고 영악하나 자신이 이루려는 바를 위해 거침없이 결단을 내리는 모습은 본받고 싶은 모습 중 하나였다. 꼭 그녀의 아름다운 겉외양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내재적인 아름다운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쾌락을 쫓아 정기를 모두 빼앗겨 이제는 나약한 겉가죽만을 뒤집어쓴 함풍제의 사랑과 총애를 받아낸 것은 그런 그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좋은 기회도 잡아채지 못하면 무엇도 아닌 듯이 서태후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도 놓치지 않았으며 어떤 기회가 자신에게 다가오더라도 언제든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세우며 외로움조차도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인 서태후는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펄S. 벅이 써내려간 서태후의 모습은 그러했다. 강하고 칼날같이 날카로우며 때론 꽃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녀의 양면을 자유롭게 그려냈으나 서태후가 수녀로 들어와 황후가 되고 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며 자금성 안에 갇혀 지낸 것 마냥 난 날지 못한 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서태후가 품었던 야심은 아직 때를 잘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원행이란 역사 소설을 보았을때도 이러한 기분이 들곤 했다. 여성을 소재로한 드라마는 많이 접했어도 책으로는 처음 접하는 것 같다. 꽤 두꺼운 책이었으나 읽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내게는 좀더 많은 분량으로 여인 서태후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을때 책장을 덮어야 함이 더없이 안타까웠고 그로인해 조금 더 아쉬움이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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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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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키>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멈춰져있다. 야쿠자 집안에서 그들을 동경했으나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한 데쓰야의 영혼이 그러했고, 미무라가에 드나들던 수많은 남자들이 그러했으며, 쇠락한 미무라가에 남은 여자와 아이들의 시간이 그러했다. 쇼고, 치즈루, 나오...리카, šœ과 유타,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 또 아버지...뫼비우스띠처럼 시간은 멈춰진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떠나고 잊혀지고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시간, 그 본연의 모습은 아닐텐데 언제나 지나간 시간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요시다 슈이치, 이 소설이 그 이름에 걸맞는 옷이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으나 담담하고 쓸쓸한 느낌 속에 파편같은 시간들을 정제시켜 놓는 그는 여전히 내겐 마법사 같다. 누구도 보지 못한 길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뱅뱅 꼬인 길 위에서 나는 요시다 슈이치와 만났다. 아니, 어쩌면 내가 스쳐지나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왠지 인생에서 진 것 같은 패배감이 드는데, 실제로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이지."
  본문 179페이지에 나오는 점장의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이 나가사키 안에 머물고 있는 šœ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또 미무라가에 머물렀던 그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회고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몰락한 야쿠자집안, 미무라가. 쇼고의 강함을 동경했지만 데쓰야의 나약함과 마주하는 šœ의 시선으로 책은 전개된다.
  그에게 미무라가는 무거운 짐이었을까, 아니면 뭉근한 체온, 그 같은 따뜻함이었을까.
  매일 밤 술잔치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손가락질 하며 어린 šœ과 유타 앞에서 미무라가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숙덕거렸다. 외삼촌 분지가 감옥에 들어가면서 점차적으로 쇠락하면서부터 여자와 아이들만이 남은 집은 고요하며 정적이 흐른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을 해온 주인공 šœ은 아직 어렸을 적에 사이다가 밴 손으로 고베 야쿠자에게 자신을 데리고 떠나가주길 바라고, 리카와의 재회로 보푸게 나가사키를 떠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한다. 왜 그가 남아 데쓰야 같은 모습으로 어디에도 표류하지 못한 사람처럼 불안한 모습을 했는지, 또 요시다 슈이치는 šœ이 왜 나가사키를 떠나지 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주지는 않지만. 점장의 말로 그 메시지를 따로이 전하려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간 안에 머무르는 것, 그 정적을 감싸 안는 것도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떠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조용히 남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던 점장의 말처럼.

  나는 무엇을 결정하면 막막하기만한 내 미래가 두려웠고, 또 그 결정을 하지 않았을때 올 후회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었다. 그래서 이왕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자, 적어도 내 인생을 후회로 물들이진 말자라고 되뇌이며 어떤 결정 앞에서도 초연했었으나 사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šœ처럼, 나는 언제나 떠나야겠다 마음을 먹었으나 사실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이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점장의 말이 가시처럼 박혀왔다.

  소걀 린포체는 죽음이란 궁극적인 종말 같은 것이 아니라 낡아서 해어졌을때 갈아입는 옷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데쓰야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별채가 활활 타오르며 수많은 사내들의 소리가 검은 연기가 뿌옇게 밤하늘로 솟아올랐을때. 시간 안에 머무르고자 하던 šœ의 모습이 마치, 해진 옷을 겆어내고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만 같았다. 표면적인 죽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을 옭아매던 기억을 갈아입는다 생각한건 내 착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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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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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한다고, 그러나 낮 동안만, 그리고 아마도 한 생각이 지속되는 동안만 사랑한다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겠니? 그건 진실이 될 수 없어. 왜나하면 -이건 너도 알아야 해- 사람은 자는 동안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 잠을 잘 떄는 죽어 있는 상태가 되는 거야. 그래서 잠과 죽음을 형제라고 일컫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어. 말하자면 잠자는 시간은 낭비이고, 따라서 죄악이야. 한 인간이 잠으로 낭비한 시간은 그가 죽은 뒤에 연옥에서 보낼 시간에 그만큼 더 해지게 돼. 그래서 나는 남아 있는 삶을 깬 상태로 다시 살기로 결심한 거야.

- 305p

  엘리아스가 페터에게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장면이라할 수 있다. 나는 종종 반 고흐의 서적을 뒤적거리고는 하는데. 고흐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는 이제 외울만큼 수백번이고 본 듯 하다. 그때마다 울컥, 심장에서 토해져나오는 것이 꿈을 향한 열정인지 아니면 천재성을 타고난 그를 향한 동경인지 모호할때가 많지만, 나직한 끝맺음은 가끔 너무도 처연하고 서글퍼지곤 한다.

  나는 수많은 천재들을 동경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온갖 냄새를 맡는 그루누이를 동경했고, 평생 그림을 그려야겠다던 반 고흐를 동경했고...이제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이 남자를 동경해야만 할 것 같다. 또 이 남자의 너무도 짧았던 생애와 불꽃같이 꺼져간 사랑에 대해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향수의 그루누이와 오르가니스트의 엘리아스는 다르다. 남다른 외모와 특별한 능력이란 모티브는 같을 지라도, 그루누이에게 없는 것이 엘리아스에게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엘스베트를 향한 그의 끝없는 사랑이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그루누이에게 필요했던 것이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었다 느끼기에 이 두 사람은 같으면서도 아닌 성질을 지닌 것 같다. 

  1825년, 다시 엘스베트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깨달으며 잠자는 시간은 죽은 시간이라 말하는 엘리아스의 모습은 기면쩍이고도 괴기스럽다. 끔찍한 참상을 당한 것처럼 피고름이 낭자하고 읽는 나 자신이 괴로워지는 그 가혹한 행위는 그가 택한 사랑이었다. 또 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루누이가 냄새가 나지 않는 기이한 체질을 타고나 사람들의 공포를 불러냈고 2차적으로 표면적인 그 외관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를 거부했으며, 또 비뚤어진 사랑의 표현과 소유욕이 그루누이를 고립되게 만들었다면 엘리아스는 기적같이-기적이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본문에 의하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초록빛 눈을 잃고 오줌색 눈을 가지게 된. 그 이후로부터 부모에게 외면당하고 사람들의 입과 시선에 오르내리며 집안에 갇혀 지내는 유년기를 보낸다. 불행하고도 고립된 그에게 은밀하고도 악마같은 페터란 친구가 생기면서, 또 같은 속도로 울리는 심장, 엘스베트로 인해 그의 삶은 어두운 음지에서 양지로 들어선 듯 했지만 그 행복은 너무도 짧기만 했다. 아마도 다시 초록눈을 되찾은 엘리아스를 향해 우수의 눈빛을 보내던 엘스베트처럼. 그 순간은 짧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이 훗날 사랑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을만큼.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듯 엘리아스는 엘스베트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 예민하고도 놀라운 청력으로 그녀의 심장소리를 들었고, 자신의 심장과 같이 박동하는 그 소리에 운명을 예감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한순간도 그는 운명에 거슬러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오르간을 홀로 연주했고 아무도 모르게 엘스베트를 사랑했다. 그래서 서글퍼진다. 이 천재 음악가에게 사랑도, 또 음악도. 그 모두가 비껴나간 것만 같아서.
  책 중간 부분이던가. 그가 엘스베트에게 어떤 바위에 대해 설명을 하던 부분일 것이다. 그때 나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는데, 그 이유는 엘스베트도 엘리아스도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엘리아스가 말하길 자신의 사랑은 뜨뜻미지근 했으며, 거짓말과 어중간한 마음을 쌓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는데. 그때 만약 엘리아스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청혼하였다면 그의 인생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수많은 선택과 운명,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전혀다른 길을 접어듬으로 이렇듯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저 서글펐다.
  반 고흐가 그토록 정신적으로 불안함을 느끼고 우울해하지 않았다면 그가 그토록 그림에 매진할 수는 없지 않았나 싶어지는 것이. 또 그가 죽고나서야 그의 그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하나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 것이 세상이 알려주는 이치이고 섭리같아 가끔 문득 나조차도 그것이 당연하다 느껴진다. 이 천재 음악가, 오르가니스트의 삶은 단발마의 비명과 같아서. 읽고 난 후 어디선가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아졌다. 울분, 혹은 간절한 바람같은 것들이...

  개인적으로 황후花란 영화에서도 9월 9일이 나오고, 이 오르가니스트에도 9월 9일이 나오는데. 엘리아스가 죽은 날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내가 태어난 9월 9일이라, 잠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랑의 자유를 되찾은 이 남자를 매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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