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어떻게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한다고, 그러나 낮 동안만, 그리고 아마도 한 생각이 지속되는 동안만 사랑한다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겠니? 그건 진실이 될 수 없어. 왜나하면 -이건 너도 알아야 해- 사람은 자는 동안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 잠을 잘 떄는 죽어 있는 상태가 되는 거야. 그래서 잠과 죽음을 형제라고 일컫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어. 말하자면 잠자는 시간은 낭비이고, 따라서 죄악이야. 한 인간이 잠으로 낭비한 시간은 그가 죽은 뒤에 연옥에서 보낼 시간에 그만큼 더 해지게 돼. 그래서 나는 남아 있는 삶을 깬 상태로 다시 살기로 결심한 거야.

- 305p

  엘리아스가 페터에게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장면이라할 수 있다. 나는 종종 반 고흐의 서적을 뒤적거리고는 하는데. 고흐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는 이제 외울만큼 수백번이고 본 듯 하다. 그때마다 울컥, 심장에서 토해져나오는 것이 꿈을 향한 열정인지 아니면 천재성을 타고난 그를 향한 동경인지 모호할때가 많지만, 나직한 끝맺음은 가끔 너무도 처연하고 서글퍼지곤 한다.

  나는 수많은 천재들을 동경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온갖 냄새를 맡는 그루누이를 동경했고, 평생 그림을 그려야겠다던 반 고흐를 동경했고...이제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이 남자를 동경해야만 할 것 같다. 또 이 남자의 너무도 짧았던 생애와 불꽃같이 꺼져간 사랑에 대해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향수의 그루누이와 오르가니스트의 엘리아스는 다르다. 남다른 외모와 특별한 능력이란 모티브는 같을 지라도, 그루누이에게 없는 것이 엘리아스에게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엘스베트를 향한 그의 끝없는 사랑이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그루누이에게 필요했던 것이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었다 느끼기에 이 두 사람은 같으면서도 아닌 성질을 지닌 것 같다. 

  1825년, 다시 엘스베트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깨달으며 잠자는 시간은 죽은 시간이라 말하는 엘리아스의 모습은 기면쩍이고도 괴기스럽다. 끔찍한 참상을 당한 것처럼 피고름이 낭자하고 읽는 나 자신이 괴로워지는 그 가혹한 행위는 그가 택한 사랑이었다. 또 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루누이가 냄새가 나지 않는 기이한 체질을 타고나 사람들의 공포를 불러냈고 2차적으로 표면적인 그 외관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를 거부했으며, 또 비뚤어진 사랑의 표현과 소유욕이 그루누이를 고립되게 만들었다면 엘리아스는 기적같이-기적이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본문에 의하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초록빛 눈을 잃고 오줌색 눈을 가지게 된. 그 이후로부터 부모에게 외면당하고 사람들의 입과 시선에 오르내리며 집안에 갇혀 지내는 유년기를 보낸다. 불행하고도 고립된 그에게 은밀하고도 악마같은 페터란 친구가 생기면서, 또 같은 속도로 울리는 심장, 엘스베트로 인해 그의 삶은 어두운 음지에서 양지로 들어선 듯 했지만 그 행복은 너무도 짧기만 했다. 아마도 다시 초록눈을 되찾은 엘리아스를 향해 우수의 눈빛을 보내던 엘스베트처럼. 그 순간은 짧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이 훗날 사랑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을만큼.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듯 엘리아스는 엘스베트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 예민하고도 놀라운 청력으로 그녀의 심장소리를 들었고, 자신의 심장과 같이 박동하는 그 소리에 운명을 예감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한순간도 그는 운명에 거슬러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오르간을 홀로 연주했고 아무도 모르게 엘스베트를 사랑했다. 그래서 서글퍼진다. 이 천재 음악가에게 사랑도, 또 음악도. 그 모두가 비껴나간 것만 같아서.
  책 중간 부분이던가. 그가 엘스베트에게 어떤 바위에 대해 설명을 하던 부분일 것이다. 그때 나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는데, 그 이유는 엘스베트도 엘리아스도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엘리아스가 말하길 자신의 사랑은 뜨뜻미지근 했으며, 거짓말과 어중간한 마음을 쌓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는데. 그때 만약 엘리아스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청혼하였다면 그의 인생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수많은 선택과 운명,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전혀다른 길을 접어듬으로 이렇듯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저 서글펐다.
  반 고흐가 그토록 정신적으로 불안함을 느끼고 우울해하지 않았다면 그가 그토록 그림에 매진할 수는 없지 않았나 싶어지는 것이. 또 그가 죽고나서야 그의 그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하나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 것이 세상이 알려주는 이치이고 섭리같아 가끔 문득 나조차도 그것이 당연하다 느껴진다. 이 천재 음악가, 오르가니스트의 삶은 단발마의 비명과 같아서. 읽고 난 후 어디선가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아졌다. 울분, 혹은 간절한 바람같은 것들이...

  개인적으로 황후花란 영화에서도 9월 9일이 나오고, 이 오르가니스트에도 9월 9일이 나오는데. 엘리아스가 죽은 날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내가 태어난 9월 9일이라, 잠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랑의 자유를 되찾은 이 남자를 매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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