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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서태후
펄 벅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아들이 죽어가는 순간조차 그녀는 평범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태후는 한 남자의 아내였던 적이 없었으므로 한 아들의 어머니 또한 될 수 없었던 것이다.」-530p
서태후, 꽃과 칼날의 여인이라 칭해지는 그녀를 잘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자는 서태후 그녀의 일생, 그녀의 정치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 뿐만 아니라 작가 펄벅의 시선에 담겨진 서태후를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보고 난 뒤에 느낀 것은 역사 속에 살아 숨쉬던 그들의 혼을 완벽하게 재조명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떤 역사서를 보아도 그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듯 하다.
펄 S.벅의 필체는 연인 서태후를 재탄생 시켰듯 대담하면서도 부드럽다. 꽃처럼 부드러우나 칼날처럼 날카로웠던 여인, 서태후. 나는 그녀를 지금도 또 훗날에도 저 문구로 기억할 듯 싶다. 열 여섯의 나이에 사촌동생인 사코타와 함께 함풍제의 수녀로 들어가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여인, 한 남자를 평생 사랑했으나 그를 얻지 못하였고 또 다른 한 남자, 바로 자신을 황후의 자리로 올려준 아들을 위해 여인으로의 삶 역시 포기하였으나 서태후는 그 아들의 사랑 또한 그녀는 가질 수가 없었다. 아들이 죽어가는 순간, 영록이 죽어가는 그 순간조차도 서태후는 황실의 절대적인 실권자이며 통치자였지 평범한 여인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느껴진다. 자신의 여동생과 순친왕의 아들을 황제로 삼았을 때에도, 그녀는 조카에게 역시 사랑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엄격하고 암사자 같이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명령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조카가 사코타를 따르는 모습을 보며 서태후는 조카를 위한 자신을 정당화시켰지만 그녀가 인정했듯이 그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또, 동태후를 향한 질투심이었을 것이다. 물론 서태후는 강력한 황제를 원하였고 서구 열강이 일방적인 개화를 요구하며 수시로 침략의 이유를정당화 시키려 했던 만큼 자신만큼 강하고 올곧은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길 원했기에 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건륭제와 같이 훌륭한 황제가 되어 안전하게 자신의 권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그녀를 강인하게 했지만, 그녀만큼 강하지 못했던 그의 아들 동치제는 짧은 인생을 마감하며 서태후를 다시 가장 큰 권력의 중심에 올려놓는다. 그것은 서태후가 바랬던 것이 아닐지라도 황제의 아내로서 해서는 안되었던, 불륜으로 아들을 가졌고. 또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해서는 안되었던 아들의 부인을 시기한 이유로 그녀는 아들을 잃고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 된다. 그녀는 서구 장난감을 아들에게 사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죽어버린 아들의 손을 볼에 부비며 눈물을 흘리지만, 황제의 운명으로 타고났던 서태후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삶보다는 강력한 군주의 삶이 더 깃들어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면 여걸들에 관한 책은 딱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그동안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달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펄S.벅의 손으로 재탄생된 연인 서태후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치밀하고 영악하나 자신이 이루려는 바를 위해 거침없이 결단을 내리는 모습은 본받고 싶은 모습 중 하나였다. 꼭 그녀의 아름다운 겉외양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내재적인 아름다운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쾌락을 쫓아 정기를 모두 빼앗겨 이제는 나약한 겉가죽만을 뒤집어쓴 함풍제의 사랑과 총애를 받아낸 것은 그런 그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좋은 기회도 잡아채지 못하면 무엇도 아닌 듯이 서태후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도 놓치지 않았으며 어떤 기회가 자신에게 다가오더라도 언제든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세우며 외로움조차도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인 서태후는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펄S. 벅이 써내려간 서태후의 모습은 그러했다. 강하고 칼날같이 날카로우며 때론 꽃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녀의 양면을 자유롭게 그려냈으나 서태후가 수녀로 들어와 황후가 되고 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며 자금성 안에 갇혀 지낸 것 마냥 난 날지 못한 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서태후가 품었던 야심은 아직 때를 잘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원행이란 역사 소설을 보았을때도 이러한 기분이 들곤 했다. 여성을 소재로한 드라마는 많이 접했어도 책으로는 처음 접하는 것 같다. 꽤 두꺼운 책이었으나 읽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내게는 좀더 많은 분량으로 여인 서태후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을때 책장을 덮어야 함이 더없이 안타까웠고 그로인해 조금 더 아쉬움이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