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증명
고바야시 히데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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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가지가 의심스러우면 모든게 의심스럽다 했다. 글을 읽으면 100% 동의 하고 싶다. 그러나 백년 넘게 고흐의 작품임이 입증된 과거는 어쩔 것인가. 그러나 잘못 되었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저자는 고흐의 잘못된 전설을 깨야 한다고 한다. 고흐는 생각같이 미친 천재가 아니다. 요한나(동생 테오의 처)가 고흐의 권총자살에 원인임이 분명하다.
고흐는 생의 의지가 과잉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과잉이다. 그런 약해 빠진 절망적인 모습은 고흐가 아니다. 저자의 집념이 놀랍다. 그는 실제로 팔레트를 만들고 모든 조형의 가능성을 다 스케치했다. 화가이니 가능할 것이다. 이러니 평론가는 말만 많디 별반 쓸데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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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망가져도 고!
김지룡 지음 / 글로리아출판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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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독립만세'라는 책을 만권도 못 팔아먹고 원인을 분석했더니 (잘하는 짓이다. 실패를 분석해야 경험 자산이 된다고 하는 일본 실패학)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책은 아주 재미있을 때까지 썼다. 크게 세 부분이다. 인생 쪽팔려도 고, 인생 치사해도 고, 인생 망가져도 고. 고는 고스톱의 고다. 놀기 좋아하는 한량답다. 메시지는 아주 개인적이다. 원인없는 불행을 해결하는 방법이 망가져도 고다. 자신만 바뀌면 된다는 거다. 전문용어로 자기계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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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가는 길
정찬주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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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도 한장 없는 기행문이다. 서안(1928년 장안에서 명칭변경)에서 돈황, 투르판, 우르무치까지가 여행경로이다. 서문에서 보건데 김영사가 취재비쪼로 돈을 좀 대주어 책 쓰려고 한번 더 갔다온 것 갔다. 이런 식의 기획은 책이 출판산업의 잉태물임을 짐작케한다. 베스트 셀러 만들기의 일환인지 아님 정말 발견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돈황 237굴의 조우관을 쓴 삼국인을 화랑으로 간주한 저자의 오피니언은 여러 신문에서 기사화 되기도 했다. 돈황에서 몇 군데 굴을 몇 만원만 주고 봐도 알수 있는데 사학자들은 뭐를 하는 건지. 돈황학이 한국에는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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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김지룡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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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성체험을 통해 (일단 일본은 한국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십년은 앞서있다. 원조교제조차 그렇다) 한국을 보고 한국의 잘못된 성행태 (특히 한국인 특유의 이중성)를 고발해 보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된다. 그러나 일본은 성의 선진국이 아니다. 원조교제, 기괴한 페티시즘, SM등 어긋난 성은 일본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저자의 변태 정의 (성적지향)에 따르더라도 좋지 않은 변태도 있는 것이다. 어떤 미친 놈의 성적 지향은 강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넘이 하는 강간은 범죄이지, 단순 변태질이 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아내와 잔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데 책의 반은 자신의 섹스 이야기다. 그러나 거부감이 일지 않는건 그의 이유있는 솔직함과 호기심에 매료 되어서일 뿐 아니라 사태를 제대로 짚어낼 줄 알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할 줄 아는 배포가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런 책을 쓴다는 건 아무리 남자라도 쑥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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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안도현 / 열림원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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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는 동화라고 하지만 동화같지는 않다. 베스트 극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동화는 아이를 위함이나 '어른을 위한' 이라는 수식을 함으로서 모순적인 직관 (파라독스) 을 보여준다. 이는 어린왕자가 그 시초일 거다. 열일곱 열여덟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고 그 이후는 지루한 보충설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때 같이 폭주했던 아이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쓰는 것. 이 두가지를 철칙으로 삼고 살고 있다고 진술한다. 이름은 사소하다는 것. 그리고 누가 뭐래도 세상은 세상이고 짜장면은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이다. 현재의 항거란 게 겨우 발음하고 싶은 대로 발음하는 것 밖에 없는 무기력한 어른의 비애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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