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바 특별전

 

일시 :  2011.6.21(화) ~ 7.3(일)

장소 : 서울 아트 시네마 (http://cinematheque.seoul.kr)   

  

흔히 마리오 바바를 일러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고 부릅니다. 히치콕이 현대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확립한 것처럼 마리오 바바는 현대 공포 영화의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살인을 다룬 1960년대 이후의 이탈리아 영화를 통칭하는 장르명이 된 ‘지알로 Giallo'는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가 출발점입니다. ‘노랑'을 뜻하는 지알로는 192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노란색을 표지로 한 저가의 장르 소설을 발표하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싸구려 가판 소설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소설을 좋아했던 바바는 이를 영화로 만들길 즐겼고 지알로는 이후 람베르토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등에 의해 계승되며 이탈리아 영화의 빛나는 업적이 되었습니다. 이는 세계 영화사의 유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틈만 나면 그 자신의 영화적 뿌리를 일러 지알로라고 말합니다. 가판 소설을 의미하는 <펄프 픽션 Pulp Fiction>(1994)은 미국의 지알로인 셈이고 이 영화를 통해 타란티노는 전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었다 할 수 있었으니까요. <블러드 베이>의 경우는 미국으로 넘어가 슬래셔의 원전이 되었습니다. <13일의 금요일>(1980) <나이트메어>(1984) 같은 종류의 난도질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것도 바로 마리오 바바의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한 핏줄 영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마틴 스콜세지, 존 카펜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 등 거장으로 칭송되는 감독들이 그들 각자의 방식을 통해 마리오 바바에 오마주를 바친 것도 유명합니다.

다소 과장해 말하자면, 마리오 바바의 출현 이후 전 세계의 영화는 마리오 바바에 영향 받은 영화와 영향 받지 않은 영화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마리오 바바에 열광했던 감독 중 한 명이었던 페데리코 펠리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었다. 내 작업이라고 밝히지 않고 지인들에게 보여줬더니 하나 같이 마리오 바바가 쓴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세계 최고의 감독들이 그 자신들보다 더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감독, 공포 영화 팬들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감독이지만 마리오 바바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소수의 팬을 제외하면 여전히 미지의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마리오 바바 단독의 이름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시네토크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 마리오 바바가 창조한 지알로와 슬래셔는 지금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영화 팬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마리오 바바는 공포 뿐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해온 장르의 달인이기도 하다. 특별행사로 오승욱 감독이 그의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해,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공포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 6월 26일(일) 13:30 <로이 콜트와 윈체스터 잭> 상영 후
   ‘스파게티 웨스턴과 마리오 바바’ | 오승욱(영화감독) 

 2) 6월 30일(목) 19:00 <사탄의 가면> 상영 후
   ‘마리오 바바의 공포의 세계’ |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마리오 바바
Mario Bava (1914~1980)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아버지 유제니오 바바를 따라,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성장기를 보낸 마리오 바바는 자연스럽게 촬영 감독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60년까지 촬영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우연히 내부 갈등으로 감독이 떠난 영화 <뱀피리>(1956)를 대신 완성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
마리오 바바는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장르를 바닥부터 쌓아올렸으며,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현대 슬래셔 무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는 이탈리아 호러 영화 장르 밖에서는 그렇게 인정받지 못했다.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영화광들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미국 관객들에게 바바의 영화를 소개하기 시작한 뒤로, 마리오 바바는 단순한 호러 장르의 제작자가 아닌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스타일리스트로서 다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상영작 - 

 

사탄의 가면

<사탄의 가면>은 ‘마녀의 관'을 뜻하는 고골의 <비이 VIY>를 원작으로 취한다. 마리오 바바는 여기에 <드라큘라> 모티브를 끌어들여 원작 소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으로 완성했다. <사탄의 가면>은 데스마스크에 씌워져 잔인하게 살해당한 마녀가 200년 뒤에 되살아나 자신을 처형한 일족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데스마스크 아래로 철철 흘러넘치는 피,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타 들어가는 얼굴 등 강렬한 이야기에 비견할 만한 과감한 묘사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독일의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흑백 화면으로 촬영됐음에도 불구, 붉게 물든 화면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 때문에 미국의 영화사는 컬러 리메이크를 제안했지만 마리오 바바는 거절했다. 대신 팀 버튼이 기본 설정과 인물을 그대로 가져와 <슬리피 할로우>(1999)를 완성한 것은 유명하다. <사탄의 가면>은 마리오 바바의 장편 데뷔작이면서 극중 1인 2역으로 출연한 전설적인 호러 여신 바바라 스틸의 명성이 시작된 작품으로 전해진다.

  마리오 바바   1960 | 이탈리아 | 87min | B&W

블랙 사바스

<블랙 사바스>는 모파상과 톨스토이와 체홉의 소설을 마리오 바바 버전으로 개비한 옴니버스영화다. 오리지널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보리스 카를로프가 등장해 "유령은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아마도 당신 바로 옆에 앉아있을지도 모릅니다"며 서두를 열면 '전화', '부르둘락', '물방울' 등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소재 삼은 세 개의 단편이 이어진다. 웨스 크레이븐이 <스크림>(1996)의 도입부에서 인용한 '전화'는 이탈리아 영화 중 최초로 컬러 촬영된 스릴러이고, 살아난 시체가 자신의 가족마저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부르둘락'은 후에 나올 <킬, 베이비... 킬!>의 예고편 같은 작품이며, 노파의 저주를 다룬 '물방울'은 마리오 바바의 아버지 유제니오 바바가 직접 만든 유령 크리처가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단편으로 이뤄진 작품답게 한정된 공간에서 전화 벨소리, 바람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신경을 긁는 사운드로 공포를 자아내는 실험적인 연출력이 일품이다. 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의 오즈 오스본이 공연 중인 클럽 맞은편에서 상영 중인 이 영화를 보고 밴드 이름을 지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마리오 바바   1963 | 이탈리아/프랑스/미국 | 92min | Color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는 <로마의 휴일>(1953)의 호러 버전이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노닥거리던 스페인 광장은 살인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로맨틱한 휴가를 꿈꾸며 로마로 여행 온 노라(마리오 바바의 스릴러 퀸 레티샤 로만이 연기했다)는 도착하자마자 살인 현장을 목격하면서 곤란한 지경에 놓인다. 급기야 보이지 않는 살인마에게 차기 살해자로 지목되면서 휴가는 악몽으로 치닫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는 <나는 비밀을 안다 The Man who knew too much>(1956)를 만든 히치콕의 영향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의 '오인 받은 남자' 콘셉트를 여자로 비튼 이 영화에서 노라는 살인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피하고 또 피한다. 다만 잔혹한 살해 장면, 괴기스러운 노파의 등장, 좁은 공간을 생물처럼 운용하는 연출과 편집 등은 여러 모에서 마리오 바바의 영화로 귀착된다. 이런 이유로 <너무 많이 아는 여자>는 지알로의 시초로 평가 받고 있으며 이듬해 나온 <피와 검은 레이스>에서 바바는 지알로 장르의 컨벤션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리오 바바   1963 | 이탈리아 | 86min | B&W

킬, 베이비... 킬!

<킬, 베이비... 킬!>은 바니타스를 주제로 한 정물화처럼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한 여인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뾰족한 창살을 향해 몸을 던지는 도입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의문의 사건이 터지면서 에스위 박사가 마을로 파견되고 수사를 위해 시체를 부검하려 든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부검을 반대하고 그 와중에 또 다른 희생자가 생겨난다. 여러 경로를 통해 수사망을 좁혀나가던 박사는 이 모든 사건이 그랍스 가문에서 시작됐음을 알게 된다. <킬, 베이비... 킬!>은 고딕풍의 '귀신들린 집'을 콘셉트로 내세우지만 미스터리한 금발 소녀(실제로는 '소년'이 가발을 쓰고 연기했다.)의 존재는 좀 더 기괴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창조한다. 이에 경탄한 스탠리 큐브릭과 마틴 스콜세지는 각각 <샤이닝>(1980)과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에서 그들 나름의 창조적인 방식으로 금발 소녀를 등장시켜 <킬, 베이비... 킬!>에 오마주를 바쳤다.

  마리오 바바   1966 | 이탈리아 | 80min | Color

블레이드 스톰

마리오 바바는 지알로로 통칭되는 공포 영화와 스릴러만 만든 감독이 아니다. 액션물(<디아볼릭>)도, 서부극(<로이 콜트와 윈체스터 잭>)도, 심지어 코미디(<포 타임스 댓 나이트>)도 연출했다. 지금 소개하는 <블레이드 스톰>은 고대사극물이라 할만하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전사 루릭은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카린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우연한 기회로 함께 지내면서 루릭이 과거에 해했던 적장의 아내였음을 알게 된다. 이에 카린 모녀를 지켜주기로 결심한 루릭은 또 다른 위험에 처한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바바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블레이드 스톰>은 굉장히 낯설다. 그럴만한 것이 사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마리오 바바가 참여한 것은 아니라 연출을 맡았던 이가 해고당하면서 급하게 투입된 경우다. 바바는 이미 촬영된 필름을 재편집하고 나머지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6일 만에 <블레이드 스톰>을 완성했다. 액션이 주를 이루지만 선술집이나 동굴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의 유려한 연출은 마리오 바바의 영화임을 드러낸다.

  마리오 바바   1966 | 이탈리아 | 85min | Color

8월의 달을 위한 다섯 인형들

<8월의 달을 위한 다섯 개의 인형>은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여자>와 함께 마리오 바바를 대표하는 스릴러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걸작 추리 소설 <열 개의 인디언 인형>(국내 제목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 원작으로, 등장인물의 수는 줄었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배가 아니면 접근이 힘든 해변의 저택에 모인 6인의 남녀가 보이지 않는 살인마에 의해 하나둘 살해당하고 최종적으로 한 명만이 살아남는 것.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여자>에서 지알로 장르를 창조한 마리오 바바는 이 영화에서도 예의 그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붉은 색을 주조로 한 원색의 저택 인테리어, 여성의 육체를 노골적으로 탐하는 카메라 운용, 핏빛 스타일이라고 해도 좋을 잔인무도한 살해 장면까지, 특히 시체들이 고깃덩이와 함께 냉동고에 대롱대롱 매달린 장면은 희생자의 고통을 즐기려는 듯한 마리오 바바의 악취미적 연출이 절로 묻어난다. <미친 개들>의 악당 리더를 연기한 모리스 폴리가 살해당하는 남자 중 한 명으로 출연한다.

  마리오 바바   1970 | 이탈리아 | 81min | Color

로이 콜트와 윈체스터 잭

장르의 달인 마리오 바바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을 비틀어 코믹 서부극을 하나 만들었으니, <로이 콜트와 윈체스터 잭>이다. 로이와 윈체스터는 서로 싸움이 붙으면 승부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싸움꾼들이지만 이를 통해 우정을 확인하는 사나이들이기도 하다. 정정당당함이 그들의 신념인 만큼 로이는 윈체스터에 앞서 정직한 일을 찾겠다며 조직을 떠난다. 새롭게 당도한 마을에서 로이는 금궤가 묻혀 있는 지도를 잃어버렸다는 신고를 받고 사건 해결에 나선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이란, 윈체스터가 지도를 훔쳐간 적들과 손을 잡으면서 로이와 서로 총을 겨누게 되는 것이다. 장르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에 속하지만 두 남자의 색다른 우정을 통해 남성 신화를 그린다. 하여 <로이 콜트와 윈체스터 잭>은 정서상으로 조지 로이 힐의 <내일을 향해 쏴라>(1969)에 더 가깝다. 다만 마리오 바바는 남성 신화를 완성하기보다는 코믹한 형태지만 여성에 의해 조롱당하는 쪽을 택한다. 바바의 영화에서 여성은 관음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는데 드물게 이 영화에서는 (얄팍한 형태일지언정) 남성을 농락하는 주체로 그려지는 것이다.

  마리오 바바   1970 | 이탈리아 | 81min | Color

블러드 베이

한적한 호수 별장지의 대학살을 다룬 <블러드 베이>는 슬래셔 영화의 원전이면서 가장 많이 오마주된 영화다. <할로윈>(1978)은 살인자의 시점을 인용했고, <13일의 금요일>(1980)은 리메이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설정과 배경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13일의 금요일2>(1981)는 쇠꼬챙이 살해 장면을 숏 바이 숏으로 베끼며 경배를 바쳤다. 후배 감독들이 <블러드 베이>의 특정 장면을 경쟁적으로 넣으려 했던 이유는 살인 묘사의 리얼함과 과감함에서 비롯된다. 각종 도구가 활용되는 살해 장면은 (바바가 영입을 고집한) 특수 효과의 달인 카를로 람발디(Carlo Rambaldi, <듄><코난2><이티><퍼제션><에일리언> 등)의 공이 컸다. '해머필름의 스타' 크리스토퍼 리는 그 잔인함을 견디지 못하고 보던 도중 극장을 뛰쳐나온 반면 '지알로의 계승자' 다리오 아르젠토는 <블러드 베이>를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상영 중이던 극장에서 프린트를 훔쳐 달아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리오 바바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블러드 베이>라고 답했다.

  마리오 바바   1971 | 이탈리아 | 84min | Color

바론 블러드

피터는 선조가 유산으로 남긴 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서 오스트리아로 온다. 그곳 관계자로부터 ‘바론의 저주'를 듣게 되는데, 고문을 즐겼던 성의 주인 바론이 마녀에 의해 저주를 받아 근방에 묻혀 있다는 것. 흥미가 동한 피터는 밤에 몰래 성으로 잠입해 바론을 살려낼 수 있다는 주문을 외치게 된다. 마침 무덤이 갈라지면서 바론이 살아 돌아오고 마을에는 끔찍한 살인이 벌어진다. <바론 블러드>는 컬러로 다시 만든 <사탄의 가면> 혹은 <킬, 베이비... 킬!>인듯 마리오 바바 영화의 익숙한 설정과 요소들로 가득하다. 고성에 스며든 저주의 손길, 비밀을 품고 있는 미스터리한 소녀의 존재, 얼굴에 점점이 상처를 만드는 뾰족한 창살 고문 기구 등등. 다만 불에 타 일그러진 바론의 끔찍한 얼굴 분장은 마리오 바바의 필모그래프가 쌓일수록 반복되는 설정 속에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부여한다. 바바의 인터뷰에 따르면, 극중 알프레드 베커를 연기한 조셉 코튼이 출연을 결정한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고 한다. 그럴 정도로 마리오 바바의 명성은 최고조를 향하던 시기였다.

  마리오 바바   1972 | 서독/이탈리아 | 98min | Color

포 타임스 댓 나이트

마리오 바바의 작품은 후배 영화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그 자신 역시 선배 영화와 동시대 문화에서 많은 걸 취했다.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는 별칭 자체가 그러하거니와, 독일의 표현주의와 영국 해머필름의 유산을 자기 식대로 소화해 지알로를 창조했고 고골, 에드거 앨런 포우,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소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수작을 양산한 그였다. <포 타임스 댓 나이트>는 그런 경향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연출한 <라쇼몽>(1950)의 다중 시점을 가져와 이를 팝아트 배경으로 범벅해 섹스코미디물로 구성한 것이다. 티나와 지아니는 공원에서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후 이튿날 새벽까지 클럽에서 진탕 놀아난다. 그 뒤가 문제다. 티나의 드레스가 찢어진 이유에 대해 티나와 지아니는 물론 지아니의 아파트 경비원까지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진실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할까? <포 타임스 댓 나이트>는 1969년에 완성했지만 당시의 바바 영화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이유로 1972년이 돼서야 개봉했다.

  마리오 바바   1972 | 이탈리아/서독 | 83min | Color

리사와 악마

마리오 바바는 <바론 블러드>의 상업적 성공 이후 제작자 알프레도 레오네에게 백지수표를 위임 받는다. 원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돈에 구애 받지 말고 진행하라는 것.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작품이 바로 <리사와 악마>다. 리사는 고대 도시로 여행을 온다. 그곳의 매력에 푹 빠져 무작정 거닐던 중 길을 잃고 만다. 몸을 피할 곳을 찾던 리사는 오래된 저택을 발견하고 정체가 의심쩍은 가정부를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리사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으면서 위험에 빠진다. 빨리 찍기로 정평 난 마리오 바바는 자유로운 제작 환경 하에서 두 달 동안 <리사와 악마>에 공을 들였다. 귀신 들린 저택, 저주에 휩싸인 도시 등 이 영화 역시 마리오 바바의 익숙한 요소가 넘쳐난다. 하지만 당시 <엑소시스트>(1973)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전 세계적인 유행을 타면서 배급업자들은 더 이상 마리오 바바의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우스 오브 엑소시즘>으로 제목을 바꾼 재편집본이 그해 개봉했지만 <리사와 악마>의 오리지널 본은 마리오 바바의 사망 2년 후에야 겨우 미국의 텔레비전을 통해 공개될 수 있었다.

  마리오 바바   1974 | 이탈리아/서독/스페인 | 96min | Color

하우스 오브 엑소시즘

<리사와 악마>의 개봉이 힘들게 될 줄은 마리오 바바도, 알프레도 레오네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해 칸 영화제의 시사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리사와 악마>에 많은 돈을 퍼부은 알프레도 레오네 입장에서 배급업자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은 치명적이었다.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개봉을 시켜야 했고 마리오 바바의 동의하에 재촬영과 편집에 돌입했다. 유행에 민감한 제작자의 입장에서 <엑소시스트>의 엄청난 성공은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다. 독창적인 공포 세계를 구축한 마리오 바바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노릇이었는데 결국 알프레도 레오네와 의견 차이가 생기면서 도중하차하고 만다. 그래서 <하우스 오브 엑소시즘>은 제작자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알프레도 레오네는 직접 몇몇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리사가 길을 잃어 악령의 집에 다다른다는 <리사와 악마>의 기본 설정은 가져가지만 새로운 신부가 등장하고 그러면서 영화는 악령이 깃든 리사와 이를 저지하려는 신부의 대결로 변모하였다.

  마리오 바바   1974 | 이탈리아/서독/스페인 | 95min | Color

  * 공지

<블레이드 스톰>과 <하우스 오브 엑소시즘> 두 작품이 수입배급사의 사정으로 상영이 취소되었습니다. 

대신 위 두 작품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던 시간에 <사탄의 가면><킬, 베이비...킬!><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블러드 베이> 4편을 각각 1회씩 더 상영합니다. 하여 '마리오 바바 특별전'의 총 상영작 편수는 총 10편입니다. 

<블레이드 스톰>과 <하우스 오브 엑소시즘>의 상영을 기다리셨던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다음 기회에 상영 스케줄이 잡히면 공지를 통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시간표는 홈페이지 참조. (http://cinematheque.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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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1-06-1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정상 7월 2일, <킬, 베이비, 킬>과 <베이 블러드>만 가능할 것 같아요. 더 보고 싶은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