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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사석원의 황홀한 쿠바
사석원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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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부부가 겁도 없이 정한 신혼여행지는 쿠바였다. 물론 엄청난 비행기 삯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유럽으로 바꿨지만. 하지만 지금도 무척 아쉽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렇듯이, 쿠바는 왠지 굉장히 매력적인 관광지일 것 같다. 우선은 우리와 삶의 룰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겠지.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인간의 삶은 어떠한지, 그래서 행복할 거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진짜 그런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중미라는 점에서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체 게바라! 촌스러운 이유일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는 모퉁이만 돌면 체 게바라의 초상을 만날 수 있다 하니, 체 게바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나로서는 꼭 가 보고 싶은 곳이다.

... 아내가 식탁에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놨다. 쌀밥 반 공기, 김칫국, 계란찜, 명란젓 두 토막, 그리고 몇 가지 나물들을 하얀 도자기 그릇에 담아 차린 정갈한 아침상이다. 마치 가지런한 아내의 모습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꽤나 생각날 것이다. 오늘 이 밥상은....

어라, 부푼 기대를 안고 넘긴 책은 첫장부터 분위기를 깬다. 미술 하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저자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데, 이 사람 왠지 좀 불안하다. 처음부터 나는 인생을 날로 먹는 놈이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남편이 긴 여행을 떠나는 날 아내가 아침상을 챙겨 줄 수도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러나 그걸 받아든 남편의 서술에서 그들 생활이 늘 이런 식이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가지런한 아내의 모습 같기도 하다"는 대목에서 그 혐의가 매우 짙어진다.

유쾌하지 않은 첫 인상은 그 후에도 쭉 이어진다. 우선, 문장이 좋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서경식 씨의 책(<소년의 눈물>)을 읽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람의 문장은 너무 수식이 많다. 열 손가락에 열 개의 반지를 낀 것 같다. 거실 벽에 어울리지 않는 액자를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 같다.

'예쁜 글'을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글은 오히려 더 미워진다. 글의 승부는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가에 달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수식으로서 글을 치장하려고 들면 어쩔 수 없이 문장에 덧칠을 할 수밖에 없다. 안 해도 될 말을 꾸역꾸역하게 된다. 필요없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다 보면 '사끼'가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예쁜 글'을 쓰고자 하는 유혹은 너무 강하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도 그런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

어쨌든, 일본을 거쳐 캐나다를 경유하여 멕시코에서 하바나행 비행기로 갈아 타려는 이 아저씨, 비행기에 탑승하기는 했는데, 예쁜 일본 스튜어디스를 보고 마치 영화 <설국>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이 예쁘게 생겼다느니 하는 망언을 하다가 별 궁굼하지도 않은 일본 문화에 대해 온갖 잘난 척을 한다. 그 재수 없음은 캐나다의 공항을 경유할 때, 캐나다에서 영어 연수를 받고 있는 초등학생 딸내미 생각이 났다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룬다.
슬슬 걱정이 된다. 이 아저씨, 쿠바에 가서 어떤 작태를 보일런지.

...솔직히 말해 줄리엣이 이고르의 말처럼 그렇게 예뻤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밤 늦게까지 같이 놀았을 텐데, 나는 노이에게 음료수를 사먹으라고 2달러를 주었다. 미안했지만 어서 호텔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만 자꾸 들었다. 힘없이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와, 해방이다...

놀랍다. 이 아저씨의 순진무구한 마초 근성은 둘째치더라도 여행지에서 만난 원지인에게 단지 그들이 매우 곤궁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달러에 반환장한다는 이유로 좀 미안한 대목에서는 달러를 쥐어 주는 저 황당한 거만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아저씨의 이런 작태는 계속 이어진다. 마음에 드는 쿠바인, 좀 미안한 일을 한 쿠바인, 불쌍해 보이는 쿠바인에게 모두 2달러에서 5달러에 이르는 돈을 쥐어 준다. 지가 먼데.
이 아저씨의 오만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점포만 부족한 게 아니라 물건도 턱없이 부족하다. 진열돼 있는 상품들이 별로 없다. 신발 가게엔 달랑 신발 몇 켤레뿐이다. 채소 가게엔 빈 채소 박스만 썰렁하게 구석에 쌓여 있을 뿐 정작 채소 좌판은 초라하다. 쿠바는 유기농으로 유명하지만 식량을 100%자급자족하는 것으로도 세계에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100% 자급자족일지라도 풍족하게 보이진 않는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상대적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살고 있는 환경에 따라 인식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 아닌가. 한국의 백화점에선 농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당연하 ㄴ광경이니, 그런 모습에 익숙한 우리로선 당연히 쿠바의 야채 가게는 그야말로 옹색히다...

...식료품 가게에서 물 한 통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서 기다린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지만 달리 도리가 없다. 그래도 물은 먹어야 되니까. 젠장. 제기랄, 투덜거리면서 사 가지고 오던 물을 반이나 마셔 버렸다. 여러 통을 샀어야 했는데 무거울까봐 안 샀더니...

나는 대략 이런 류의 사람은 가급적 여행을 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위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 아닌가. 쿠바는 쿠바인 나름의 생활이 있다. 필자의 말대로 쿠바는 농산물 100% 자급자족에 대부분(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전량) 유기농 생산을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 이후 마련된 식량 자급자족 정책 때문이다. 훌륭하지 않은가? 나는 어떤 면에서는, 쿠바의 이런 모습을 보며, 백화점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그래서 음식에 대한 경외심을 일찌감치 버린,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적어도 그럴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쿠바인들의 모습이 훨씬 올바르다. 그런데, 이 아저씨, 삶의 인식 운운하면서 그 앞에서 투덜거리기만 한다. 이런 사람은 돈 있어서 쿠바에 가고, 덴장할!

아저씨의 가소로운 잘난 척은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장식한다.
...전시장을 지키던 한 쿠바 여인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지금까지 전시장에서 동양인을 본 적이 없어서일까, 경비원이 ㄴ그녀는 우리들을 관심 있게 지켜본 모양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질문들이 문제였다. "이렇게 큰 미술관이 당신네 나라에도 있나요? 마티스, 피카소, 반다이크 같은 거장의 작품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할 말이 없었다. 경제적 빈국이라는 쿠바의 미술관엔 놀랍게도 마티스, 피카소는 물론이고 렘브란트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무겁다. 대답을 유에게 떠맡기고 나서 슬며시 돌아서고 말있다. 우리네 문화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 알고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그것이 두렵다...

우리가 왜 마티스며 피카소, 렘브란트의 작품을 소유해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것은 단지 문화의 다양성 때문이다. 쿠바는 스페인 등 남부유럽의 지배를 받았으며 현재의 인종도 그에 상당히 영향을 받은 분포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서양 예술이 한편으로는 자신의 예술일 수 있으며(물론 이것도 일부이다. 그들에게는 유구한 인디오의 유산도 있다.) 무엇보다 예술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전통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우리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는 센스나 시스템 등이 매우 부실한 것은 사실이나 이런 식으로 서술해서는 안 된다.

그밖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오직, 쿠바에 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나서도 개운치 않지만, 쿠바에 가면 어디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공연을 볼 수 있는지, 어디를 꼭 가 보고 싶은지 정도의 정보를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꼭 쿠바에 가 보고 싶다. 그리고, 가기 전에 인식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쓴 쿠바 여행기를 꼭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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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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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서점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서경식의 책이 새로 나온 것이다. 나는 이미 <나의 서양미술순례>(창작과비평사, 박이엽 옮김)에서 서경식의 간명하고 소박한 질그릇 같은 글에 굉장히 매료되었었다. <나의 서양미술순례>는 한참 미술 관련 인문서를 읽어 내던 작년 여름, 어느 서점에서 내 손에 걸렸던 것인데, 그림에 대한 지식과 별도로, 나는 작가의 미문에 훨씬 더 마음이 갔다. 미문이라지만, 결코 화려하거나 유려하지 않다. 정갈하고 깔끔한 문장. 그런 문장에 거짓이란 끼어들 수 없는 것이었다.

주문을 마친 며칠 뒤, 택배가 배달되었다. 여러 가지 책과 함께 배달되었으나 내 관심은 오직 서경식의 새 책 <소년의 눈물>(돌베개, 이목 옮김)에만 가 있었다. 그러나 포장을 뜯고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책은 하드커버 장정에 굉장히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내지는 고급스런 코트지였고, 쪽번호는 모두 안쪽으로 달아 두어 읽기가 몹시 불편했다. 이 책에는 일본의 저자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장마다 뒤쪽에 따로 주를 달아놓았다. 따라서 본문을 읽으면서 번번히 주석을 찾아보아야 했는데, 안에 달린 쪽번호 때문에 중간중간 맥을 놓치기 일쑤였다. 작가를 직접 찾아 가서 찍었다는 책들도 너무 작게 배치해 놓아 책 안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책을 살피는 데 좀 보수적인 편이기도 하지만, 하여튼 이 책의 꼴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박하고 나직한 저자의 목소리와는 너무 딴판인 디자인과 장정이 혼자서 잘난척하는 양 보였다.

어쨌든.. 마음에 안 드는 책꼴을 만지작거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가 어릴 적부터 책벌레였다는 사실, 그리고 70년대 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오랜 수형 생활을 한 서승, 서준식(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 대표이다.)의 동생이라는 저자의 가정사를 이미 전작을 통해 알고 있던 터라 더욱 흥미가 돋았다.

이 책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아름답고 반듯한 문장들이다. 무엇보다 서경식 글의 장점은 예술 작품을 이야기하되 결코 자신의 삶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건, 문학 작품을 이야기하건.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도 작가는 언뜻 아무 상관이 없어보이는 서양의 중세 미술 작품에 동양인인데다가 한국 국적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도 처연히 몰입시켰다. 나는 내심 이 책에서 문학 작품에는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병치시킬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유년시절을 거쳐 사춘기를 넘어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거쳤던 책들을 장을 나누어 서술한다. 한 장에는 책 한권의 이야기가 담기는데, 사실 책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체에서 얼마되지 않는 양이다. 대부분은 그의 이야기이다. 그의 가족, 그의 형제, 그리고 그의 생활. 그러나 그것이 책과 전혀 관련없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주는 메시지를 작가 스스로 소화하고 그것을 잘 개어 독자들에게 친절히 전해 준다.

어렸을 때 읽은 책들을 나열할 때 나 역시 약간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목록에는 내가 읽었던 책들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리틀 선생님의 이야기>(내가 읽은 책은 <돌리틀 선생님 이야기>이다.) <안데르센 동화집> <그림동화선>(내 기억으론 <그림 형제 이야기>) <십오 소년 표류기> <하늘을 나는 교실>!
그 외에도 열을 지어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엘리스의 이상한 여행> <닐스의 이상한 모험> <소공자> <소공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작은 아씨들>...
이것은 모두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세계명작이라는 전집에 들어있던 작품들이었다. 당시 엄마는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주기보다 집집마다 다니며 전집류를 팔았던 외판원을 통해 책을 구입하곤 했다. 계몽사의 소년소녀세계명작 외에도 역시 계몽사의 <성경이야기 시리즈>(5권), 삼성당의 세계위인전집(50권)도 그렇게 구매하게 되었다.
이 전집들은 초등학교 생활의 가장 큰 낙이었다. 기억으론, 각 전집을 세 번 이상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다.

...독서에 열중할 때면, 나는 식사 중에도 무릎 위에 책을 펼쳐놓고는 '밥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이때 어머니는 "밥을 먹든지 책을 읽든지 한 가지만 하려무나' 하고 가볍게 꾸지람하시면서도, 내가 종알종알 책의 내용을 재잘거리기라도 하면 재미있다는 듯 말벗이 되어 주셨다...(42쪽)

이 대목을 읽다가 나도 옛날 생각이 나서 웃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엄마들은 다 비슷한가 보다. 늘 그렇게 꾸지람하면서도 책 읽는 모습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요즘은 어린이문학 전집에 대한 말이 많지만, 나는 사실 전집을 그리 나쁘게 보는 편은 아니다. 내가 이미 전집을 통해 책을 만났고, 그때 읽었던 책들이, 어떤 측면에서는, 그만한 나이에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줬다고 생각한다. 목록이 서양편향이며, 영웅중심이며 하는 비판들이 사실은 양날의 칼이다. 훌륭한 문학은 늘 인생에 눈물도 희망도 함께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전집의 희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집으로 풍부한 '독서인생'을 살았던 나는 그 이후 중학생이 된 이후로 스스로 책을 살 수가 없었다. 전집으로 구매할 수 있는 책 중에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없었고, 더군다나 중학생은 '독서'가 아닌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번째 이유는 핑계에 불과하다. 문제는, 전집으로 책을 읽던 나는 서점이라는 공간과 책을 선택적으로 구매한다는 구매 행위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책을 사야 할지,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몰랐다. (물론 서점에서 책을 판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말은 아니다. --;;)
무경험은 무지를 낳았고 무지는 다시 무경험을 낳았다. 나는 '순수하게'(참고서나 문제집을 사기 위해서가 아닌) 책을 사기 위해 몇 번이나 어렵사리 서점에 들어갔지만 결국 빈손으로 나오곤 했다.

그리고 나는 고3 수능을 마치고 나서야 다시 '순수한 책 구매자'가 될 수 있었다. 내 손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1>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내 인생의 각도를 약 30도 정도 돌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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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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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그림책을 보면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이가 학교를 가는 길에 악어를 만나고, 사자를 만나고 그래서 결국 지각하게 되고. 결국은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반성문을 쓰고. 악어를 만난 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걸 보면 재미있어 할까, 에이 거짓말이에요,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믿지 않은 교사가 자신의 환상과 같은 상황에서 궁지에 몰린 것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유쾌해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저 자기들의 마음을 몰라 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아들의 마음을 정곡으로 치고 나간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이 책을 쓴 작가의 목적이었다면, 이 책은 성공적인 작품인 것 같다.

더불어 나도 점점 궁금해진다. 아이들의 환상세계, 아이들이 상상하는 환타지를 나도 느껴 볼 순 없을까. 그러기엔 너무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지각대장 존>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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