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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이혜영 지음 / 한국방송출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끝없이 쏟아지는 빗속을 하염없이 걷습니다. 청승맞은 대목이지요. 그러나 어릴적 사춘기라 하기 뭐할 시기에 전 비오는 거리를 비맞고 거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비를 좋아한 연유도 있을 뿐더러, 하염없이 걷는 그 정처없음이 좋았다라고 할까요. 뚜렷한 목적없이 떠돌다 맞닥드리는 우연의 운명을 전 어릴때 부터 좋아했었나봅니다.
이혜영씨가 쓴 '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을 읽었습니다.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아니 바른말로 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주로 산에 가면 산 근처를 맴돕니다. 이런 저를 위한 책일까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여정과, 그 길 속에서 마주치는 과거, 그리고 현실을 저자의 눈을 통해 책 속에 겹겹이 쌓아두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지리산 생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지리산을 책을 통해 쉬 유람했습니다.
지리산 둘레 800리 길을 만들어 산과 함께 거닐고, 그 길 속에 산과 함께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을길, 오솔길, 고갯길, 강변길, 광활한 풍경과 소박한 인심까지 도시인이 늘 그리는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여행기라 해서 쉽게 생각해 오가는 풍경속에 감회만을 담았으리라 추측합니다만, 이 책은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현실의 감회만이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빨치산 토벌이라는 과거의 생생한 현장을 이야기 합니다. 아직까지 그 이념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 현실이 슬프지만 어른 거리는 풍경에 교차됩니다.
우연치곤 묘합니다. 책의 말미에 또하나의 길
제주도 올레길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한발한발 디딘 자취를 담고 있습니다. 두개의 길 속에서 이념의 굴레가 겹칩니다. 무거운 이야기와 가벼운 풍경이 경중을 달리하며 읽는 이를 정신 바짝 차리게 합니다.
이 책을 들고 있는 동안 어릴적 그 정처없는 방랑이 떠올랐습니다. 조용히 혼자하는 길위의 여정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길위에서 맞이하는 고민은 웅크리고 맞이하는 고민과 그 무게가 달라집니다. 같은 문제도 그 무거움이 반감됩니다. 혼자 맞이하는 우울함이 아니라, 도상에서 자연과 함께 이야기하는 가벼운 문제 정도로 여겨집니다. 정처없는 길위에서 풀어헤치던 젊은 날 고민처럼, 삶의 무게를 풀어헤칠 그 여정이 그리운 겁니다.
머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혼자만의 여행은 아닐겁니다만, 걷는 즐거움을 조만간 되새김질 해보려합니다. 생의 반려자와 함께 그 길위에서 삶의 무게를 터놓고 이야기해보려합니다. 단지 무거운, 힘들다는 연유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길 위에 새겨질 서로간의 신뢰와 희망 그리고 하나될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텁텁한 지하철 안에서 함께했던 이틀입니다만 표지에 보이는 맑은 하늘처럼 푸르름이 같이한 시간입니다. 옛 기억과, 아픈 현실, 그리고 맑은 풍경 또한 거기 있었습니다. 가벼운 여행기에 가볍지 않은 저자의 글이 또 다른 여행기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저도 글과 사진이 함께하는 여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문득 치솟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