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오토바이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4개월을 넘어 5개월에 다다른 아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 눈에 안경이란 말처럼 제 아이라 그런지 와이프나 저나 행동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바라보게 됩니다. 제 손의 자식이라 자라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가까이 두고 애정의 커뮤니케이션을 꾸준히 즐기고 싶습니다.

조두진씨의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읽었습니다.

아버지, 아빠란 단어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녀석이 자라 아빠란 호칭을 불러줄 때가 되어서야 조금은 실감이 날까요? 아버지란 자리가 어떤 자린지 감히 상상할 수도 실감하기도 어렵습니다.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속 아버지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과연 내가 이 아이를 위해 그런 맘을 가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힙니다. 괜한 자괴감일 수 있습니다만, 나와 그들을 비교해 스스로를 질책하게됩니다.

아버지와 두아들이 이야기의 큰 축입니다. 장애인 형과 실직한 주인공을 위해 아버지가 쳐 놓은 그물망은 한치 흐트러짐없이 그들을 든든히 받치고 있습니다.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맹목적인 희생이 큰 줄기입니다. 꽤 오래된 이야기 입니다만, 가시고기란 글을 읽고 같은 생각에 빠져 허덕인적이 있습니다. 그 때와 지금의 나는 발반 달라진것이 없습니다. 임신 초기에 읽은 책과 일년이 지나 아들의 재롱을 보며 읽는 책은 그 의미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자그마한 용기 그것이 전부입니다.

쉽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솔직히 드라마틱한 희생정신이 저란 인간속에 잠재되어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런 희생을 담보할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들녀석이 세상을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여유는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맘껏 부딪혀 깨지고, 더러 실패하더라도 다시 세상과 맞닥들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금전적이든 아니든 여유를 그 녀석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세상 모든 한파를 두 팔로 헤치고 자식을 위해 따뜻한 보금자리를 쉼없이 만들고 있는 이땅의 아비들의 모습이 글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그 신성한 곳에 스스로를 위한 자리는 크지 않습니다. 이게 정답인가란 물음에는 답하기 힘듭니다만, 자식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아빠의 건강한 모습에서 아이의 미래가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도 없고 해줘도 안됩니다. 자식도 자식이고 아비도 아비로서의 인생이 있기에 희생이랑 명목으로 아비의 인생을 옥죄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근본이 흔들리지 않게 든든히 보금자리를 지켜주는 아비의 모습은 새길만 합니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정신과 사랑 그리고 든든한 지지기반입니다. 맹목적인 희생이 아닙니다. 삶을 조율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거기엔 희생이란 단어보다는 사랑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내 사랑이 그 녀석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맘으로 글을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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