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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ㅣ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6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희동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10대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세실에게 매력을 느낀 나머지 경쾌하고 시니컬한 매력적인 여자애 흉내를 내며 자라지 않았을까. 내가 10대에 읽었던 책들이 너무 진지하고 착실했다면 사강의 이 소설은 새침하고 톡톡튀는 속모를 여자아이의 뒷모습처럼 경쾌하고 풋풋하다.
사춘기를 지나는 어느 순간 내가 나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던 순간이 기억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 수 없는 나이, 익숙해져있는 자신의 세계에 침입하여 자신만의 것이라고 믿고 있는 아빠에게 나타난 부인할 수 없게도 너무 매력적으로 나이든 안느, 그녀에게 아버지를 빼앗기게 될 듯 하자 불안한 나머지 작은 음모를 꾸미는 그녀의 내면은 너무 복잡하고 매우 섬세하게 변화를 일으켜 읽는 이를 계속 조마조마하게 만들면서도 그 나이를 지나오면서 느꼈던 오만가지의 혼란을 짐작케 만든다.
한없이 동경하면서도 그토록 곤궁에 빠뜨리기 원했던 안느를 결국 잃고 났을 때의 그녀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당황과 충격으로 그녀는 일찌기 인정하지 못했던 감정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순순히 슬픔에게 인사를 걸고 말을 걸며 슬픔이라는 순수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인정하며 그녀는 깊어진다.
그러나 더이상 안느를 밀쳐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열중할 필요가 없게 되자 시릴르가 주었던 열정적인 쾌락과 사랑이라고 믿었던 환상에서도 흥미를 잃게 되고 그녀는 아버지와 자신만의 익숙한 세계로 돌아온다. 결국 새로운 아무것도 허용치 않으며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살며 다만 안느를 감상적인 추억의 단편 정도로 생각하는 대목은 문득 무섭고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펑펑 울다가 이내 까르르 웃고마는 사춘기 여자애처럼.
어쨌거나 책을 읽는동안 나도 파리의 어느 조용한 해변에서 투명한 바닷물과 눈부신 태양아래서 발가락 사이의 모래알을 느끼며 나도 잠시 유유자적 한가로움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