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에세이
육공일비상 지음 / 육공일비상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눈이 나쁘고 제대로 못 들어서 나는 종종 사물자체를 다른 것으로 오인하여 그와 유사한 다른 것과 착각한다. 거기다 어리버리 겁이 많아 종종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주변의 사물들을 다른 것으로 착각해서 놀라기도 한다. 밤길에 걸어오는 아스팔트 길 위에 떨어져있는 도마뱀은 허리를 굽혀 바라보면 공사장에서 떨어져 나온 쓰레기가 되고, 벽에서 펄럭거리는 악마가 그려진 포스터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다가서서 보면 의류할인 포스터가 된다.

누구나 할일없이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 책에서처럼 사물의 표정을 잡았던 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추상적인 지하철 문에 있는 무늬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거나 예리하게 잘 깎은 검은 연필심을 보면서 종종 누군가의 눈매를 보는 것처럼.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Blue day book'에서 동물을 의인화하여 감동을 주고 미소를 머금게 했다면 이 책에서는 병따개, 콘센트에 꽂힌 코드, 가로수, 벽돌무늬 등 무기체에서 표정을 찾고 짧고 쉬운 문장들로 가볍게 웃게 만든다. 특히 병따개가 입을 벌리고 '여기,여기예요!'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듯한 표정은 정말 진지해서 귀엽다 못해 '아무도 구해주지 않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공연히 서글프고 애절하기까지 하다.
책 속지의 재질이나 색상도 고급스러워서 누군가에게 선물해주고 싶게 만든다.

아쉬웠던 점은 사물의 표정만을 캐취하여 찍었기 때문에 정작 그게 어떤 사물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진이 몇 컷 있었다는 것과 의인화시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다보니 몇 개의 이야기는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주제로 책을 하나 만들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멈추어져 있는 주변 사물들을 향해 슬그머니 웃어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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