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진단 1 - 만화로보는
이원복 지음 / 조선일보사 / 1993년 12월
평점 :
절판


출판사에 다닐 때 나도 어린이 대상의 학습만화의 원고를 써 본 적이 있었다. 딱딱한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 쉽게 풀어서 만화적 상상력과 기지를 동원하여 표현해내야 하는 일은 재미있으면서도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중학교 때 보고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보는 이원복 교수의 이 책은 어쩌면 그때는 100%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들을 현재의 시각으로 다시 읽으니 이해도 잘 될 뿐더러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이 고독에 부딪힘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우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현상들을 사례로 들기도 하고, 무제한의 정보의 범람 속에서 이제는 오히려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경제적으로 취합하는 것이 능력이 되어야 하는 정보사회에서 봉착하게 되는 문제점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과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행태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삶이냐', 루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등 지명도는 높지만 선뜻 읽어보게 되지 않았던 고전들을 만화로 명쾌하게 풀어낸 것도 좋았고, 한 컷 한 컷에 담긴 그림의 의미도 다시 읽을 수록 재미있다.

'소유로부터 해방되어라, 그리고 존재하라! 삶을 살아라!'던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을 지켜라'던가 고전에서 아마도 수백 페이지에 걸쳐 설명되어 아마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만화의 힘으로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어 오히려 원 고전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뉴스와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이원복 교수의 현대 문명에 대한 시선은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의 마지막 독백처럼 어쩐지 회의적으로 들린다. '세계는 인간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없이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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