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이 책 저 책 훑어보다가 우연히 책을 집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두꺼운 재생지를 활용한 듯한 표지와 어린이들의 입체북처럼 표지가 구멍이 뚫려있어서 호기심으로 책을 잡고 아무 곳이나 펴서 읽었다. 잠시 후 나는 그 대형서점에서 혼자 미소짓다가 나도 모르게 킥킥대고 소리내어 끊임없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키숀의 문체와 표현력, 그 오도가도 못하는 우스운 상황들 때문에 이야기에 푹 빠져 다른 사람들을 의식할 새도 없이 웃었다. 도착한 친구의 전화를 받고 책의 앞표지를 다시 보고 제목을 기억한 후 서점을 나선 후, 알라딘에서 여러 책들과 구입했다.

요즘들어 TV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그렇게 밖으로 새어나오도록 웃어본 적은 적었던 것 같았는데, 이 책은 정말로 유쾌하고 재미있다. 그의 표현대로 '잘나신 아내'와 '못말리는' 자식들과의 일상에서 가끔 터지는 소소한 일상에서 갈등에 빠질 때마다 그는 사회에서 그를 바라보는 잣대에 합당하게 행동하기 위해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로 (그러나 얼렁뚱땅) 해결책을 찾거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객관적인 어조로 사태를 관망한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그 말을 하는 하는 사람은 웃지 않으면 흥미가 배가되는 것처럼 키숀의 문체는 풍자와 재치를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

푸림축제날 받은 초콜릿 선물 포장을 뜯었을 때 곰팡이가 생겨있던 이유와 그 초콜릿의 역사를 더듬어가면서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선물'의 형식성에 대해 조롱하기도 하며, 치과에 방문하려고 하나 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어 헤메일 때 주차공간을 주는 대신 보험에 가입하라던가, 정비후 차를 바로 찾아가지 않으면 차를 폐기시켜버리겠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독한 이기주의와 교통문제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쉽게 가로등을 박아버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크게 라디오를 틀어대거나 서로를 쫓아내기 위해 개처럼 짖는 이웃사람들의 이야기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상 때문에 고양이에게 줄 젓병을 사러왔다고 말하기가 쑥쓰러워 결국은 남의 눈 때문에 비싼 젓병을 사고 돌아오고 자신이 한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집에 남겨와 먹고자 한 스테이크를 개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가 졸지에 살아있는 멀쩡한 개를 죽였다고 말하는 모습은 체면과 관습 때문에, 그리고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실을 숨길 수 밖에 없는 씁쓸한 일상에 대해 말해준다.

또한 아이의 영양에 도움이 되는 카카오를 마시도록 하기위해 속아주는 연기를 몇 달에 걸쳐 하면서 그게 마침내 아예 연극으로 정착하게 되고 생활이 되기까지의 상황들이나 딸과 연극을 보러 가거나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면서 겪는 다정하고 친절한 아버지가 자기 방식대로 키우기 어려운 자식들과 겪는 즐거운 전쟁을 보는 것도 즐겁다.

중간 중간의 삽화는 color이며, 한 챕터마다 텍스트가 들어간 페이지에 줄무늬나 펜으로 낙서한 듯한 비규칙적인 무늬을 새겨넣어 그런 걸 살펴보는 것도 장난스러워보여 재미있었다. 유대인인 키숀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됐다가 탈출했다고 하는데 그 악몽같은 기억들 때문일까, 그의 글들은 '어때, 이래봐도 사는 건 참 즐겁고 감사한 일이야'하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행복이 읽는 이에게도 전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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