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는데 친구가 무라카미류가 무라카미하루키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물어왔다. 하루키는 몇 권 읽어봤지만 류는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가르쳐줄 수 없었고, 그래서 예전에 주워들은 기억을 바탕으로 아주 간단하고 무식하게 귓속말로(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무서워^^;) '무라카미류 소설은 좀 야한 걸로 알고 있어'라고 답변해 주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뭔가 석연하지 않고 무라카미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책으로 76년에 일본내에서 상을 탔다고 하는데 이 책에 나와있는 몇 개의 키워드들은 어쩐지 그 시간의 간격을 느끼게 해주지 않고 현재 우리나라와 이어져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명품 향수나 도어즈, 레드 제플린,믹재거, 롤링스톤스 핑크플로이드,빌리할리데이 등의 음악에 빠져 있으며 박하가 들어있는 셀럼이라는 담배를 피우고, LSD,니브롤,헤로인 같은 환각제 복용과 공공장소에서의 일탈행위, 성행위, 신비의 나라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던가 하는 것들은 어쩐지 9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나 문학에서 종종 다뤄졌던 주제들이기도 하고 유행처럼 번졌던 것들이기도 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일까'하고 여러 사람이 모인 환각파티 도중 류는 생각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인식하고자 하는 듯 하지만 현재의 자신을 위안해줄 수 있는 것이 환각제이고 섹스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들을 위로해야 하나? 단지 같은 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라는 이유로 동정하고 싶지는 않다. 대안없이 현재를 즐기고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가고 유아적인 발상으로 자신이 잘못해놓고도 공연히 죄없는 사람들을 희롱하고 때리고 하는 그들의 치기어린 행동들은 어떤 이미지로는 탐미적으로 보이거나 구속받지 않기에 자유롭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조감을 주진 못했다.

60년 대의 일본, 경제적으로는 강국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미국에 종속되고 미국문화에 중독되어 동경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그 시기의 일본의 젊은이들은 고유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혼돈에 빠지고 결국에는 파멸하게 되었다. 하지만 류는 견고한 자신의 도시를 파괴하고자 하는 '검은새'가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스스로 유리컵의 파편으로 자해를 하고 거리로 뛰쳐나온다.

쓰러진 풀숲에서 젖은 풀잎을 씹어 먹었을 때 무심코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살아있는 벌레, 그 벌레가 꿈틀대며 자신의 입안에서 몸부림치고 입안에서 꺼냈을 때 침에 젖어 기어나와 결국은 살아나간 모습은 류 자신의 모습과도 같다. 침처럼 끈쩍끈적하고 유쾌하지 않은 기억과 경험속에 젖어있었지만 검은새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듯이 일찌기 만났던 '메일'이라는 친구처럼 그도 더이상 환각제가 필요치않은 삶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유리조각에 묻어있던 피는 분명 붉었고 순수를 상징하는 색인 'blue'는 아니지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앞서 폭력으로 난무한 피들과는 다른, 긍정적인 상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키나와가 류의 플룻 부는 소리를 들었을 때 뭔가 뭉클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넘쳐났다는 말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감동과 짜릿함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마약이나 섹스와 같은 소비적인 것이 아니어도 좋다는 희망을 내비치고 있는 건 아닐까.

릴리와 류가 변전소 주위의 토마토 밭에서 토마토를 외국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고 하다가 전구같다고 하다가 폭탄 같다면서 포복자세를 취하며 환각상태처럼 현실과 상상속을 넘나드는 장면은 환상적이었다. 좋아하는 인디밴드 코코어의 노래 중에 '검은 새'라는 곡이 있다. 흔한 게 '검은 새'일 수 있겠지만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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