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측만증이 조금 있어서

  병원에 가보면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고

  교정클리닉에도 오랜 기간 다니며 돈을 쏟아부었으나

   갔던 날은 뼈가 맞추어졌는지도 모르겠으나  늘상 도로아미타불

  역시 스스로 몸을 바로 잡지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요가를 하기 시작.

요가 배우러 따로 시간내서 다녀 본 적도 있지만  더 이상 불필요했고

 게다가 신체교정요가를 제대로 지도할 수 있는 전문가는 국내에 거의 없는 듯하였다,

 

 난 맞춤 처방이 필요했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 교정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혼자 하기 시작하였으나

 국내에 나와있는 왠만한 요가DVD는 지겨웠고,   새로운 걸 원하던 중....   이 책을 발견!!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300주 프로그램!


           난 드디어 진정한 고급 수행자의 길로 입문하는 것인가...
          그러나  아직 물구나무 서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그래도  목표는 드높게!!    

 

그리고 또다른 장점

여러가지 질병치료 아사나!!   
     : 위산과다, 빈혈, 관절염, 고혈압, 저혈압, 변비, 평발 기타등등 수많은 분류

   난 진정 이런 책을 원했다. 

  내 몸을 다 스스로 고쳐버릴거야!!

  (그러나 요가지도자 정경스님이 말씀하시길 이것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하셨다)

 
 어쨌든
  혼자 하는 것이  온몸의 불균형상태를 스스로 느끼고 집중하기에 좋고 

   상태에 따라 스스로 그 날의 훈련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좋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게을러서 띄엄띄엄 하다보니 몇 달 째 1주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

   하지만 꾸준히 하면 1년후쯤이면 괜찮은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 믿는다

      그럼  아헹가요가 교육하는데 가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것이다

 그리고

 가끔 이 부분은 유능한 지도자의 지도가 필수이다 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것도 일년 후쯤 시작하면 되지않을까 

     ( 아헹가 요가 협회 http://www.iyengar.co.kr )

   그리고 언젠가는 인도에 가서 직접 수행을!!! 하겠다



  그런데 도대체 사진속 아저씨는 왜 그런 몸매인 것일까

  요가는 군살을 없애주고 적당한 근력을 만들어주니 멋진 몸매가 당연하지않은가

  외모에 집착하지 말고 진정 도를 통하는데 마음을 쏟으라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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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잘못 알려진 영문법 70가지
김경숙 지음 / 넥서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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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영어상식 칼럼 100 관사편
이윤재 지음 / 넥서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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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어른들의 영문법
홍미란 지음 / 넥서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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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꼭 틀리는 영어 두 번 다시 안 틀리기 (책 + 테이프 1개)
David Kendall 지음 / 넥서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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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폭풍 - 게르만족의 대이동
페터 아렌스 지음, 이재원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품절


"금발의 무리를 이끈 헤르만이/전투에서 이기지 못했다면/더이상 독일의 자유는 없었으리라./우리는 로마인이 되었으리라" 하이네의 [겨울동화]에 나오는 이 시구가 얼마나 자주 인용되었던가! 이 구절은 유럽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전환점이 된 바루스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입증하는 증거로 자주 이요ㅣㅇ되었다. 그러나 하이네의 서사시는 결코 진지하거나 찬미하는 뜻이 아니었다. 진보적인 프랑스에서 독일로 돌아온 하이네에게는 프로이센 패권정치의 상징들이 눈엣가시였다. 하이네는 나폴레옹의 유럽 국제주의를 환영했고, 따라서 독일인들의 정치적 게르만주의에 휩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을 게르만족과 동일시하는 것도 의심스럽게 보았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와 헤르만 전투에 대한 그의 거리낌 없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116쪽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그리스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면, [니벨룽겐의 노래]가 독일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못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특히 낭만주의자들이 '니벨룽적인 것'을 '독일의 민족적 특성'과 동의어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니벨룽겐의 노래]를 쓴 무명의 작가가 말한 것처럼 '장대한 옛이야기들'을 그냥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그 마력 속으로 끌어들이는 기념비적인 소재로 놓아두기로 하자.-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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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폭풍 - 게르만족의 대이동
페터 아렌스 지음, 이재원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 게르만족이 '원시적이고 문화가 없는 야만인들'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라고 서문에 적혀있다. 그래서 나도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볼까하고 책을 집어들었다.

 아마도 독일인들은 고대사에서 로마문화에 포함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갖고있는 듯하다. 그래서 혹시 독일민족의 정체성을 주장하기 위한 글인가 했더니, [그동안의 시대는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게르만주의라는 짐을 벗어던졌다] 고 한다. 작가는 나치 인종주의와의 결합이나 민족주의적 관념으로 이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게르만족의 이동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그는 하인리히 뵐의 말을 인용한다.

p.39  
  [순수한 문화를 간직한 게르만족이란 것이 있었을까? "그들이 정말로 그러했을까? 그들 가운데 많은 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주해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몇 가지는 '혼합되고', 당연해 매우 많은 것이 변화되지 않았을까?" ]  
   

  현대독일이 순수게르만은 아니라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다 읽어도 어쩐지 그 게르만-야만 고정관념은 여전한 듯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로마문화와 접하기 시작한 시대의 그들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유목민도 아니면서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와서도 농경을 제대로 하지못하고 전투를 제일로 여기는 문화를 버리기 힘들었던 그들 아닌가. 어쩌면 이것은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인 것일까. 어쨌든 작가의 시선은 따스하다.

 p.83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파괴와 정복을 노린 침략군의 모습보다는 땅에 굶주린 사람들의 뿌리 뽑히고 지친 방랑 행렬이다.  
   

  어쨌든 적어도 로마문화와 게르만 부족을 근대유럽의 공동창시자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정도는 이 책을 읽은 성과이다. 그리고 결국은 야만족이라는 구분도 상대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타키투스가 게르만족을 묘사한 부분이 인용된 것이 있다.

 p.60  
 

군주들은 승리를 위해 싸우고 신하들은 군주를 위해 싸운다. 고귀한 신분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이 오랜 평화 기간으로 나태해지는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전쟁을 치르는 민족들을 찾아나선다. 그런 인간 유형에게는 안정이  불편한데, 위험한 상황이 되어야 유명해지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또한 폭력과 전쟁을 통해서만 대규모의 신하들을 결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게르만야만족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까지도 이어져오는 인간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게다가 야만족이 아니라고 하는 로마도 평화롭고 높은 문명을 자랑했지만 안으로부터 무너져내리지 않았던가. 야만족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문명을 유지하는데 전혀 쓸데없는 것이었나.

 야만족인 게르만족은 로마를 학습하고, 로마에는 없던 그 무언가를 가진 게르만족은  로마의 무너짐에 기여하면서, 그리고 또 그 로마를 학습하면서 서로서로 녹아내리며 근대유럽의 모체를 만들기시작했다는 것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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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넘어서 - 도마의 비밀 복음서
일레인 페이절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루비박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1. 

    P.10 "기독교 전통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P.34 "친한 친구가 열여섯 살에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신자들은 그의 죽음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그가 유대인이고 '새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영원한 벌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의 해석에 찬성할 수 없었다. ~~ 더 이상 내가 머물 곳이 아님을 깨닫고 그 교회에서 나왔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아마도 작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기독교를 좋아하지만 뭔가 답답하다는 것.                                                                   

   이미 영지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니 이 책을 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영지주의와 정통가르침이 서로 대립하던 초기 기독교회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책의 목적을 이렇게 밝힌다. p.43 "신약성경의 사중복음을 옹호하는 기독교도들은 도마복음 같은 가르침을 공격하고 신자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이단으로 배격하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 전통의 역사에서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는 것."

2. 영지주의와 정통적 가르침이 혼합되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는게 아닐까

  절에 가기를 더 좋아하면서 집안 식구들이 모두 성당을 다니기 때문에 주말마다 반강제적으로 성당에 가고 있다. 그래서 늘상 두 가르침을 비교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 가톨릭 성인들의 행적이나 가르침들을 보면 불교가르침과 그 영적구도의 자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결국은 모든 종교가 하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그냥 방식이 다른 것 뿐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P.75 에 이런 서술이 있다.  '

 선수련을 하는 미국인 노사가 "도마복음을 알았더라면 불교 신자가 될 필요가 없었을 것" 이라고 하자 다른 베네딕투스회 데이비드 수사는  도마복음을 비롯한 몇몇 비정통적 복음은 신비주의적 면이 있기는 해도 본질적으로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아빌라의 성테레사나 십자가의 성 요한네스 같은 위대한 신비주의자들의 저술에 나옵니다."        그러나 일레인은 성테레사나 성요한네스 등은 정통적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적어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간결한 진술에 지금까지의 고민이 뚜렷이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의무적이고 강제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이 정통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즉, 데이비드 수사의 말처럼 본질적으로 같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성요한네스등도 굳이 새롭게 영지주의를 주장하며 교회의 분열을 조장할 필요가 없고, 가르침을 널리 실천하는데 굳이 그런 방식을 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초기기독교회에서는 영지주의를 분리시켰지만 끊임없이 영지주의는 교회내로 스물스물 끼어들어왔던 것이다. 다만, 일레인은 이제 더 강력하게 영지주의를 교회내로 편입시키려는 노력 중 인 것이다.

  현재의 가톨릭교회 또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며 끊임없이 혁신했기 때문에 그 거대한 몸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영지주의자들과 같은 구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분명히 현재의 교회는  중세와 다르다.   유대교회의 주류 조차도 기독교와의 공존과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미사시간에도 요한복음에 관한 영지주의적 해석을 들은 적이 여러번 있다. 난 당연히 가톨릭은 신비주의적 해석을 경계하니까 요한복음도 합리적으로 해석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의 성당의 가르침이나 태도를 보면 영지주의적 해석을 넘나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주류 해석이 뭔지 도대체 궁금하다. 내가 들은 것들은 신부님의 독단적인 해석이었을까... 한 신부님에게 들은 얘기가 아닌데...

  3. 이 책을 읽었더니 고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깊이 신학적 탐구의 길을 열어준 것 같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가톨릭과 기타교회가 영지주의적 해석을 널리 받아들이길 간절히 바랄 필요가 없이, 불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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