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무리를 이끈 헤르만이/전투에서 이기지 못했다면/더이상 독일의 자유는 없었으리라./우리는 로마인이 되었으리라" 하이네의 [겨울동화]에 나오는 이 시구가 얼마나 자주 인용되었던가! 이 구절은 유럽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전환점이 된 바루스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입증하는 증거로 자주 이요ㅣㅇ되었다. 그러나 하이네의 서사시는 결코 진지하거나 찬미하는 뜻이 아니었다. 진보적인 프랑스에서 독일로 돌아온 하이네에게는 프로이센 패권정치의 상징들이 눈엣가시였다. 하이네는 나폴레옹의 유럽 국제주의를 환영했고, 따라서 독일인들의 정치적 게르만주의에 휩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인들을 게르만족과 동일시하는 것도 의심스럽게 보았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와 헤르만 전투에 대한 그의 거리낌 없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116쪽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그리스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면, [니벨룽겐의 노래]가 독일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못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특히 낭만주의자들이 '니벨룽적인 것'을 '독일의 민족적 특성'과 동의어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니벨룽겐의 노래]를 쓴 무명의 작가가 말한 것처럼 '장대한 옛이야기들'을 그냥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그 마력 속으로 끌어들이는 기념비적인 소재로 놓아두기로 하자.-2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