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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나라 -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5월
평점 :
갑을관계의 불평들을 추적한다
강준만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을 그동안 여러 차례 비판해왔는데 이번 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중소기업의 사장은 대기업 부장을 접대하고, 대기업 부장은 관련 부처의 사무관을 접대한다. 이뿐인가. 전관예우는 어떤가. 관직을 버리고 민간으로 돌아가도 이전 관직 때문에 대접을 받는 경우는 비단 법조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정부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이 퇴직 후 관련 업체의 '고문'으로 취업해서 엄청난 돈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런 관존민비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관존민비는 정치권과 관료에게 줄을 대는 것을 일상화시켰고, 여기에서 이른바 '갑질'은 아래로 아래로 전파된다. 작은 집단은 그보다 큰 집단에게 민이 관에 줄을 대듯이 줄을 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줄대기가 일종의 능력으로까지 취급되고 그 와중에 권력과의 인맥과 친분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부당하게 챙기는 '브로커'가 나타난다.
강준만은 역대 모든 정권에서 대형 브로커 사건이 터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 이유와 대안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브로커는 대개 돈줄과 연줄을 이용한다. 이미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필요로 하는 돈을 대고, 높은 지위를 갖고 싶는 자에게는 권력과의 연줄을 대준다. 윤상림이나 김재록 같은 대형 브로커가 써먹었던 방법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들 브로커는 이런 줄대기의 과정 중간에서 큰 이익을 남겨 먹는다.
이런 줄대기는 사실 전문적인 브로커가 아니더라도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해서 이뤄진다. 저자는 특히 지방이 수도권보다 훨씬 더 브로커의 농간에 지배된다고 역설하면서 '공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개인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혹은 대기업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통로는 매우 좁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일을 거드는 브로커들이 설치는 것인데, 공정하고 투명한 공모는 브로커들이 설칠 판을 걷어치울 수 있다. 그러나 이 공모가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인가 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로 남아 있지 않나 싶다.
강준만의 논의의 마지막 부분에 한국의 시위 문화를 예로 들어 갑에 대한 을의 권리 주장이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이 '시위 공화국'이 된 것은 적법한 방식으로 을이 권리 주장을 하는 통로가 매우 좁고, 그 통로를 통해 권리 주장을 해도 거들떠 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위는 대형 규모로 기획되고, 강한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게 된다. 공권력은 이런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해서 과잉진압하기 일쑤고, 서로 이런 폭력사태의 책임을 떠넘긴다. 저자는 이 악순환을 이제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오의 종언과 폭넓은 사회 연대
악순환이 무한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편 가르기'의 한가운데에 바로 갑을관계가 있다. 갑을관계의 불평등이 갑들의 '갑질'에 의해서만 이뤄질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갑을관계의 약자인 을도, 더 약자와의 관계에서는 갑이 된다. 갑을관계의 불평등은 을이 자발적으로 갑에게 복종하고, 자기보다 더 약한 사회적 존재, 말하자면 병에게 자기가 행했던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에 심화된다. 따라서 을을 경험한 이들의 연대가 아니고서는 갑을관계의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남양유업 사태가 일어났을 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온 국민이 슈퍼갑의 지위를 이용해 을을 인간 이하로 대접한 것에 분노했다. 강준만은 이런 사안을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 어리석다고 비판한다. 필자도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보수신문마저 대기업의 횡포에 강도 높은 비난을 하고 있을 무렵 민주당은 갑자기 '을을 위한 정당'을 선언한다. 그런데 정당이 어떻게 을을 위한 정당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문제를 이렇게 관념적으로 키워놓으면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갑자기 '을을 위한 정당'이라고 선언하자 새누리당과 보수신문은 슬그머니 '경제민주화'로 가닥을 잡아서 미묘한 온도차를 보인다. 생활의 차원에서 접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관념적인 수준의 문제가 되어 논의가 헛발질을 하게 되고, 상대에 대한 경쟁의식과 증오 때문에 문제해결은 멀리 멀리 달아난다.
저자의 말마따나 보수든 진보든 이제 거대담론에 매달리지 말고 미시적으로 한국 사회의 일상적 활동에서 문제되는 것들을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편 가르기와 상대방의 대한 증오를 멈추어야 한다. 편 가르기와 증오는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오의 정치가 판을 치면 개인은 사회적 연대를 포기하고 각개약진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돌파해야 한다.
증오를 멈추고 더 넓은 연대를 기획하라.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틀렸다. 억울하면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