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짓기 -상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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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히 세련된 대상에 대한 미려한 취향을 음식 맛에 대한 기본적인 취향과 연결하지 않는다면 문화적 실천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위의 문장은 『구별짓기』의 저작 의도이자 내용이고 결론이다. 취향을 이해해야 문화적 실천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취향이란 통설처럼 타고나는 게 아니라 “양육과 교육의 산물”이다. 부르디외는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설문조사 작업을 시행했다. 이 책은 설문조사의 결과물을 토대로 취향이 곧 계급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특히 예술은 특수한 약호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것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예술작품은 소리나 빛깔 혹은 단어를 “감지할 수 있는 속성을 넘어서 해당 작품의 독특한 양식적 속성을 구별해 줄 수 있는 개념을 소유”한 사람에게만 즐김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불평등이 발생한다.

“안목은 역사의 산물로, 교육에 의해 재생산된다.”

자연발생적인 “‘순수한’ 응시” 역시 “자율적인 예술생산의 장의 등장과 관련된 역사적 발명품”이다. 예술은 점점 역사적인 것이 되어 간다. 즉 예술작품은 외적인 지시대상인 ‘현실’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예술작품으로 구성된 우주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중적 취향은 예술 작품을 삶을 환원시키지만 통상 지식인들은 재현되는 사물보다는 재현 그 자체를 더 믿는다. 이러한 태도는 도덕적 불가지론 또는 유미주의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이러한 예술적 취향의 차이는 그대로 다른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삶의 양식화, 즉 기능보다는 형식을, 소재보다는 매너를 우선시하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 미학을 윤리에 복속시키는 대중적 성향을 완전히 전복시켜 ‘순수’ 미학의 원리를, 예를 들어 요리나 의복, 또는 실내장식처럼 일상생활에서 가장 일상적인 선택에 적용할 수 있는 자질만큼 변별적이고 탁월한 기능을 하는 것도 없다.”

취향은 구분하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한다. 분류법은 다양하다. 주체는 구별을 통해 스스로의 탁월함을 드러내며 이 과정에서 각 주체는 객관적 분류 과정에서 특정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취향과 문화 소비를 연구하게 되면 미학적 소비와 일상적 소비가 겹치게 되고 이것은 곧 칸트의 미학이론을 부정한다.

저급하고 조잡하고 천박하며 타산적이고 비굴한, 한마디로 자연스런 기쁨을 부인하는 것, 바로 이것이 문화의 성역을 구성한다. 예컨대 배가 고플 때 배만 채우는 것으로는 문화적 식사라 할 수 없다. 문화적 식사는 매너, 분위기가 우선시된다. 이것은 은연중에 세속의 천한 사람들은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승화된 즐거움, 세련되며, 무사무욕하며,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우아하고 단순한 쾌락을 누릴 수 이쓴 사람들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재삼재사 확인해준다. 예술과 문화 소비가 애초부터 사람들의 의식이나 욕구와 상관없이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와는 별도로 문화적 취향에 따라서 판가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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