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테리 핀카드 지음, 전대호.태경섭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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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영원한철학의거장'이되기까지의 여정.헤겔사유에 대한 많이두꺼운 개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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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2-2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두꺼운 개"?! 뒤에 뭔가 잘려나간 듯하지만, 그 자체로 너무 재미있는 말이에요.^^

열매 2009-02-24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많이 두꺼운 개론서"라고 썼는데 잘려나갔나봅니다^^;;
EJB에서 구간 덤핑세일을 해 생각날때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던 이 책을 드디어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번역은 좋은데--특히 역자후기를 대신한 '정신현상학 서문'번역은 그 유려함이 낯설면서도 이제 이런 번역이 나오는가 싶었습니다--하드커버에 너무 두꺼운 외관이 제 취향은 아니었음에도 곧 절판되리라는 두려움에 구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은 헤겔을 공부하(려)는 이들 모두에게 상세한 개론서이자 효과적 지도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짧은 평을 남겨보았습니다.
 
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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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세대의 부채감을 인 세대의 평론가가 발빠른 작가들을 어르며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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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도서관에서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제는 개론서보다는 전공과 관련있는 철학자들의 저서를 펼쳐야 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어떤 책인가 한번 훑어보고 관심이 가는  지젝, 데리다만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이번에는 한국에서 나오는 이런 개론서에 대한 불만 하나만 토로하기로 한다. 한국의 인문학 필자들 중에는 개론서를 잘 쓰는 이들이 정말 드문데, 그 이유는 저서라는 개념을 대충 써놓은 논문을 때되면 묶어내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개론서 쓰라면 누가 읽는지에 대해 고려도 한번 안해보고 쓰는지 대충 자기가 아는 기본적인 것을 쭈욱 나열하면 끝인지 안다. 굳이 이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림지식총서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면 되겠다. 필자들이 자기가 아는 것 며칠 밤새 안일하게 써놓은 책들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큰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참고문헌, 더 읽으면 좋은 책들 하나 제시하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오늘 이 책에서 유심히 본 것은 각 사상가들의 소개가 끝나고 '더 읽으면 좋은 책들'에 대한 부분이다. 영어권의 개론서들이 좋은 것은,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본문이 끝나면 어김없이 짤막하게라도 논평을 가미한 소개서들을 요령있게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앨피에서 나오는 Ruteledge thinkers시리즈를 떠올려보면 뭔말인지 알 수 있을거다. 이것은 개론서라면 꼭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일 것이다. 전공서적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참고저서 목록만 보고서도 무슨 책이 좋은 책인지 다 알테니까. 중요한 책이 어떤 책인지 헷갈리면 색인index을 보면 된다.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는 저서나 필자가 그 주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소재일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출판되는 저서의 경우 해외원서의 참고목록이나 색인을 재구성하는 것--국내번역된 저서를 표기해주는 것 등--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약간의 발품이지만 그것은 학술서적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 항목이다. 인덱스없는 인문학서적이라...도저히 감당 안된다. 최근 번역된 책을 한번 들추어보라. 인덱스가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 그 인문학 출판사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도 '더 읽으면 좋은 책들'이란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필자에 따라 그 차이가 천양지차다. 민승기의 경우, 데리다와 지젝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저서들을 짧지만 정치하게 제시했다. 데리다와 지젝의 경우 번역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심하게 고려했음을 잘 알 수 있다. 흔히 서평가라는 사람들이 쓴 서양사상 개론서들 보면 읽지도 않고 쓰는지 개판 번역서들을 읽으라고 추천하는 꼴이 흔한 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조정환의 경우, 마르크스 부분에서 마르크스 선집과 저서 4권만 덜렁 적어놓았다. 마르크스 선집 읽으면 된다는 것 누가 모르나? 입문할 때 간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무엇인지, 마르크스의 생애의 경우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 심화서적으로서 널리 읽히는 것은 무엇인지 제시해주는 것이 개론서로서의 예의 아닌가. 이정우의 경우, 책 제목은 잔뜩 적어놓았는데 어떤 것이 어떤 면에서 좋은지 아무런 평가가 없다. 나는 '더 읽으면 좋은책들'에서 펼쳐진 필자들의 개성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개념탑재 여부를 평가할 수 있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필자들의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한번 쭈욱 살펴보라. 그리고 본문과 한번 교차시켜 보라.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사족.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은 각 필자의 원고를 너무 존중한 나머지 꼼꼼하게 교정을 본 것 같지 않다. 필자들 사이에서도 번역서에 대한 서지사항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두가지 번역이 있는 경우 한 필자의 경우 전자를, 다른 필자의 똑같은 책에는 후자를 놓은 식이다. 두 가지를 다 병기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이 개론서로서 존재한다면 보다 꼼꼼하고도 통일된 교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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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2-15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 "How to Read Lacan"의 말미에 덧붙였던 'Suggestions for Further Reading'이 생각나는군요. 단순한 서지사항이라기보다는 개론서에 맞는, 입문자를 위한 적절하고도 친절한 '지도 그리기'를 해주는 지젝의 글을 보면서, 역시 1급 저자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지사항으로 저자의 '수준'을 판별하기는 정말 좋은 제안인 것 같습니다. 저도 보는 책마다 한 번 시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바짜 까페 크레마(Lavazza Caffe Crema) 250g
Lavazza(라바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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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차만별로스팅이 불안할 때, 자기 입맛에 맞는 커피에 대한 확신이 없을때 좋은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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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테나 1 -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 서양 고전 문명의 아프리카.아시아적 뿌리 블랙 아테나 1
마틴 버낼 지음, 오흥식 옮김 / 소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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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날아오지만, 꼭 돌아오고야 마는 편지와 같은 질문들이 있다. 언젠가 한번쯤 품고 있었던 궁금증들이었지만 풀지 못했던(못할) 숙제들과 같은 그런 질문들 말이다. <블랙아테나>의 존재가 나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올해 초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의 존재는, 나의 지적 관심이 아직 서양문명의 근원이라는 그리스문명에까지 이르지 못했기에 나의 서재를 훑는 손안에서는 먼 것이었지만, 책의 주제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블랙아테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선행저작을 이미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1978)이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랜 양가감정의 기원과 경탄, 갈등과 그 왜곡 양상들을 중동에 대한 시선들의 변화를 중심으로 문헌학적으로 분석한 그 책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는 논쟁적이라는 수준을 뛰어넘어 '구제될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오염된'  용어로 치부될 정도로 크나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서구학계의 동양학 담론을 크게 틀지운 것이 70년대의 <오리엔탈리즘>이었다면 <블랙아테나>는 그 큰 자장안에서 새로운 담론의 파열음을 낸 저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못지 않은 파열음이라고 평하는 것은 이 작품이 서구인의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반성의 도를 뛰어넘어 서구인의 의식과 학문의 기원에 대헤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브루노 스넬이 지은 <정신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서구 사상의 그리스적 근원'이다. 이와 같이 이제까지 누구도 서구사상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헬레니즘(그리스 정신)의 존재와 그 근원대해 의문을 품어 본 적은 없다. 몇몇 예외라면 조지 제임스의 <도난당한 고전>(1954)이 있겠지만, 버낼의 책만큼 근본적으로 서양 고전 문명의 근원이라는 그리스문명의 뿌리를 아프리카와 아시아적 근원으로 상정한 사람은 없었다.

이 저작의 내용이 알고 싶다면 6백여피이지 본문 중 마지막에 결론부분의 5페이지 남짓의 분량만 읽으면 된다. 그 내용을 숙지하고 서론만 잘 읽어내려가면 버낼이 전개한 이 방대한 책의 대략의 아이디어를 알았다고 말할 수준은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버낼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머리말에 저자가  '책에 담긴 기본적인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10여년이 걸렸다'고 밝힌 것처럼, 중요한 것은 그가 밟아온 논증의 절차와 절차과정의 치밀함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료의 방대함이다. 이 책은 올해 3권이 출간될 예정이며 4권까지 집필될 에정이라고 하니 책에 대한 논증의 결과는 아직 유보적이라고 한발 양보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책에 대한 요지는 생략한다하더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연구에 임하는 저자의 방법론이다. 저자는 '지적 학술적 발전은 사회 정치적 발전과 더불어 관찰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고 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과연 자발적으로 발생한 문명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문헌에 천착하고 있다. 방대한 문헌을 섭렵할수록 그가 발견한 것은 고대 그리스 문명이 고대 이집트문명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리스가 원주민(유럽인)과 식민자(아프리카인 및 셈족)의 혼합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저자는 문헌학적으로 '고대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중요한 것은 19세기 전반까지 이 고대모델은 고대 그리스인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유럽인들까지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대모델이 변화를 하게 된 것은 학문적 '내재적' 결함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18~9세기 낭만주의자와 인종주의자들이 유럽의 순수한 유년기로 그리스를 상정했다는 사회정치적인 외재적 이유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낸 아리안 모델에 의해 폐기된 것이었다.

저자는 '그리스와 이집트를 연계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매우 뿌리깊은 문화적 억압이 존재' 할 정도로 문헌학적 자료들이 이미 이러한 고대모델을 폐기하거나 은폐하는 등의 오염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소위 역사에서 가정하는 객관적 자료라는 것이 그 의미를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저자가 제기한 연구 방법이 고대 이집트어, 고대 셈족어, 고대 그리스어의 상관관계를 새로이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저자는 세 나라의 언어 사이의 단순한 상관성이 아니라, 서구문명의 기원이라는 그리스문명이 실은 세 나라의 활달한 문명의 교호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자신의 논지를 훌륭히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저자의 언어 비교 연구는 문헌학적 사료들이 이미 오염되었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되었지만, '아리안 모델은 언어가 한 민족의 고유한 정신의 근본적 표현이라는 낭만주의적 믿음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언어를 학문 분과의 핵심에 위치'시킨다는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저자는 연구를 시작할때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움들을 오히려 역이용해 이중적으로 아리안모델을 공략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전략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관계에 대한 관한 근대 유럽학계의 왜곡에 대한 역사적 전개를 주 내용으로 하는 1권보다는 뒤로 갈수록 보다 실증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어 갈 것 같다.

이 책은 서양의 사상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에게 교과서적으로 제공되었고 숙지되었던 학문들의 배후에 어떤 정치경제적 기원들이 있었는지를 똑바로 응시하라는 주문을 걸듯이 말이다. 이는 사실 각 시대별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제공하기에는 벅찬 통찰들이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시각들을 두루 고찰한 통시적 시각을 가진 대가들만이 우리에게 던져줄 수 있는 역사적 혜안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버낼의 해박한 세계사적 박식함에서 연유하는 디테일한 역사적 통찰들을 얻을 수 있는 부수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메시아주의가 외국인에 의한 군사적 정복에 의해 생겼다던지, 훔볼트의 언어 진보관이 세계사 국면을 설명하려는 동시대 헤겔에 의해 적용되었다거나, 교양개념이 프랑스 혁명의 파고를 잠재우려한 반동적 독일 민족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통찰들은 역사적 사실의 지루한 서술이 판을 치는 여타의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귀중한 역사적 통찰이다. 대가의 등에 올라타 세계사를 내려다보는 쏠쏠한 재미 역시 놓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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