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 도서관에서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제는 개론서보다는 전공과 관련있는 철학자들의 저서를 펼쳐야 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어떤 책인가 한번 훑어보고 관심이 가는  지젝, 데리다만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이번에는 한국에서 나오는 이런 개론서에 대한 불만 하나만 토로하기로 한다. 한국의 인문학 필자들 중에는 개론서를 잘 쓰는 이들이 정말 드문데, 그 이유는 저서라는 개념을 대충 써놓은 논문을 때되면 묶어내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개론서 쓰라면 누가 읽는지에 대해 고려도 한번 안해보고 쓰는지 대충 자기가 아는 기본적인 것을 쭈욱 나열하면 끝인지 안다. 굳이 이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림지식총서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면 되겠다. 필자들이 자기가 아는 것 며칠 밤새 안일하게 써놓은 책들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큰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참고문헌, 더 읽으면 좋은 책들 하나 제시하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오늘 이 책에서 유심히 본 것은 각 사상가들의 소개가 끝나고 '더 읽으면 좋은 책들'에 대한 부분이다. 영어권의 개론서들이 좋은 것은,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본문이 끝나면 어김없이 짤막하게라도 논평을 가미한 소개서들을 요령있게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앨피에서 나오는 Ruteledge thinkers시리즈를 떠올려보면 뭔말인지 알 수 있을거다. 이것은 개론서라면 꼭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일 것이다. 전공서적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참고저서 목록만 보고서도 무슨 책이 좋은 책인지 다 알테니까. 중요한 책이 어떤 책인지 헷갈리면 색인index을 보면 된다.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는 저서나 필자가 그 주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소재일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출판되는 저서의 경우 해외원서의 참고목록이나 색인을 재구성하는 것--국내번역된 저서를 표기해주는 것 등--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약간의 발품이지만 그것은 학술서적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 항목이다. 인덱스없는 인문학서적이라...도저히 감당 안된다. 최근 번역된 책을 한번 들추어보라. 인덱스가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 그 인문학 출판사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도 '더 읽으면 좋은 책들'이란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필자에 따라 그 차이가 천양지차다. 민승기의 경우, 데리다와 지젝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저서들을 짧지만 정치하게 제시했다. 데리다와 지젝의 경우 번역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심하게 고려했음을 잘 알 수 있다. 흔히 서평가라는 사람들이 쓴 서양사상 개론서들 보면 읽지도 않고 쓰는지 개판 번역서들을 읽으라고 추천하는 꼴이 흔한 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조정환의 경우, 마르크스 부분에서 마르크스 선집과 저서 4권만 덜렁 적어놓았다. 마르크스 선집 읽으면 된다는 것 누가 모르나? 입문할 때 간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무엇인지, 마르크스의 생애의 경우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 심화서적으로서 널리 읽히는 것은 무엇인지 제시해주는 것이 개론서로서의 예의 아닌가. 이정우의 경우, 책 제목은 잔뜩 적어놓았는데 어떤 것이 어떤 면에서 좋은지 아무런 평가가 없다. 나는 '더 읽으면 좋은책들'에서 펼쳐진 필자들의 개성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개념탑재 여부를 평가할 수 있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필자들의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한번 쭈욱 살펴보라. 그리고 본문과 한번 교차시켜 보라.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사족.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은 각 필자의 원고를 너무 존중한 나머지 꼼꼼하게 교정을 본 것 같지 않다. 필자들 사이에서도 번역서에 대한 서지사항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두가지 번역이 있는 경우 한 필자의 경우 전자를, 다른 필자의 똑같은 책에는 후자를 놓은 식이다. 두 가지를 다 병기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이 개론서로서 존재한다면 보다 꼼꼼하고도 통일된 교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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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2-15 0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 "How to Read Lacan"의 말미에 덧붙였던 'Suggestions for Further Reading'이 생각나는군요. 단순한 서지사항이라기보다는 개론서에 맞는, 입문자를 위한 적절하고도 친절한 '지도 그리기'를 해주는 지젝의 글을 보면서, 역시 1급 저자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지사항으로 저자의 '수준'을 판별하기는 정말 좋은 제안인 것 같습니다. 저도 보는 책마다 한 번 시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