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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순전히 그 여자 최순실 때문이었습니다."
저자 서명숙은 이 책을 쓰게된 동기를 말해주고 있다.
그 여자는 얼마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건네 주었던가.
그 여자의 입에서 감히 '민주주의'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망령이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하다.
그 시절 고려대 4대 문장가중 한 명이 저술한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독서 의욕을 한껏 불러일으키더니
이 책을 덮고 나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같은 여자로서, 이 시대를 살아내었던 선구자들의 생생한 기록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더 고민하게 된다.
'독립군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시대에는 '운동권 자식'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애국정신으로 희생하였지만 철저하게 잊혀진 이들이다.
그 시절 운동권들이 지금 상당수 정치계에 입문하였고 권력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투철한 유관순, 잔다르크 같던 여인들은 잊혀졌다.
왜냐하면 지상에 드러나지 않았고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너무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생한 증언이다.
그 가녀린 몸에 그 큰 열정을 담을 수 있었던 영초언니,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찾아주려 지식인의 책임감으로서 살았지만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돈의 힘에 굴복되었던 모습까지 그것이 사실이기에 더 공감이 되고 가슴이 아팠다.
그들의 고통은 결국 무지한 우리들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성공한 이들만 보이고 성공만을 바라보고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들이 '달려들어갔던' 그때와는 정 반대의 삶을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나만을 위해, 남들은 의식하지 않고 사는 YOLO의 시대다.
통일의 시대가 곧 눈앞에 다가왔는데 이대로 우리 괜찮을까 걱정도 되지만
서명숙 작가와 같이 깨어있는 지성들이 많아진다면 잘 될 것이라는 소망이 생긴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청춘을 바쳤던 그녀들 중 한명인 서명숙이 올레길을 만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상처와 아픔들이 '폭풍의 언덕'에서 치유의 힘을 얻었듯이, 또 다른 상처와 아픔에 내몰려 있는 이 시대,
많은 사연을 간직한 이들의 아픔을 제주 올레길을 통해 치유해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못다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다른 표현이라고나 할까.
나도 폭풍의 언덕에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