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전 작품 꿈틀 문학 자습서 운문 문학 + 산문 문학 세트 - 전2권 - 2015년용
꿈을담는틀 편집부 엮음 / 꿈을담는틀(학습)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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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 자습서 중에 가장 내용이 충실한 것 같네요. 나온지 얼마 안된 신간이라 반신반의했는데 후회없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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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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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집안 내력이다'

 

호락호락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주인공 하윤식의 삶은 호락호락한 삶이었다. 현숙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주인공은 그의 형처럼 '-주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돈을 위해서라면 친일파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배짱과 호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윤식은 어렸을 적부터 넘쳐나는 아버지의 돈 덕분에 허무방탕한 삶을 누렸지만 그 삶은 그가 현숙이라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에 눈을 뜨면서 새로운 판국을 맞이한다. 그리고 '-주의자'에서 전향하고 만 형을 대신해 군대를 가고, 근거 없는 행운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며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철없는 친일파 집안의 도련님이 사랑에 눈을 떠 그 여인을 따라 애국심을 갖거나 하는 단순한 스토리도 아니고, 사랑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지도 않다. 그도 그럴것이 작가는 하윤식이 현숙이라는 여인을 만나기 전 그의 가문을 3대나 거슬러 올라가 하윤식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리고 백정의 가문에서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장장 책의 절반을 들였다. 시대만 바뀌었을 뿐 그들의 선택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 충분히 이해할만한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1940년에 식민지 역사에서는 나라를 팔아먹고 이익을 거두어 떵떵거리고 산 매국노의 집안이 되어버린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결과를 좋게 봐주고 이해해주자는 그런 차원이 아닐 것이다. 굳이 애국자가 아닌 친일파의 가문을 샅샅이 현실화시킨 것은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역사 속에 남았든 한 가문과 인간의 내면을 봄으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시대 양상을 바라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동안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팩션소설들은 열이면 열 독립투사 또는 애국심을 가진 역사적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그렸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시대를 바라볼 때 알게 모르게 그들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시선으로 현실을 보았을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는 자신의 신념대로 독립을 갈망하며 운동에 참여할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친일로 끈질긴 삶의 줄을 놓지 않으려 할 것이며, 누군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혼란에 싸여 시대의 물살에 휩쓸려 버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각각의 삶에는 모두 개연성이 존재한다. 정당성과는 다른 의미의 개연성

 

<가미가제 독고다이>의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가문의 내력과 미워할 수 없는 하윤식이라는 인간의 삶을 제대로 마주했다면 1940년대 일제 말기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우리는 갖게 된 셈이다. 어느 독자는 사랑으로 한 인간이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려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작가의 지난 작품들의 성격들로 미루어보아 그보다는 역사에 대한 독특한 시선처리를 작가가 유도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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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엉겅퀴 2 - 완결
박경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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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삶을 그린 소설들은 숨막힐 만큼 심리묘사가 두드러진다.  

사실 박경리의 소설은 처음 접해보았다. 그 유명한 ‘토지’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2권이 전부였고, 제목도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냉큼  

빌려왔다. 더움을 참으려 선풍기를 틀어놓고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에 묻혀서 그녀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희련과 희정 은애 인숙 이 네 여자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이 다른 색깔의 여자들이 각각 세상에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동정심이 생기기도 했고 존경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에 따라  

내 심정의 변화도 다양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희련이다.  

희정의 사랑을 가장한 소유욕 안에서 상처를 받고, 한번의 결혼 실패로 인한 상처로 무뎌질 만도 

 한데, 자신 하나 방어할 방어벽도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사랑다운 사랑이라는 것을 잠시 친구 은애의 오빠 강은식에게 느끼기도 했으나  

그 결말은 좋지 못했다. 감정을 적극 표현하지도 못했고, 결국 바보같이 강은식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그 이후로는 보지 못한다. 순간 희련의 옛 남편 장기수라는 인물에게  

화가 울컥 났다. 괜한 화풀이일지는 모르겠지만 독자인 나로써는 결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끈질기도록 관심을 보이며 더더욱 질리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남자가 희련 주위에 존재 한다는 사실 하나로 희련의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원인으로 돌려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은애를 보고 있을때면 하얀 안개꽃이 생각난다.  

왜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 그 자그마함 속에 숨겨져 있는 잡초같은 근성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엄마에게 정신질환을 물려받고 남미라는 젊은 여자와 자신의 남편 정양구의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한 후 질투인 듯 아닌 듯 애매모호한 독백만을 늘어놓는다.  

자신을 채찍질 하듯. 정양구는 사랑이라고 느껴왔던 남미와 은애의 병으로 인해 멀리 하게 된다. 

은애가 회복 된 후 남미는 때에 맞추듯 암에 걸리고 자취를 감춘다. 정양구에게 기대 했던 것이 

무너짐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었던 것 같다. 애처로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물론 가정이 있는 남자와의 연애를 하는 것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는 않긴 하지만 말이다. 


희정은 팔이 없는 불구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매일같이 희련을 들들 볶는다. 

그것이 너무 화가 나서 내가 희련보다 더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많았다. 

 하지만 희련은 나와 다르게 너무도 많이 겪어와서 무뎌진 모양이다. 담담하게 응수할 줄 안다.  

그런데 희정이 희련을 위한답시고 집문서를 가지고 이리저리 했다가 빚을 지게 되었다.  

거기에는 얄량한 모습을 뒤에 숨겨둔 가면 속의 여자 인숙의 계략에 넘어갔다는 것이  

큰 잘못 이었다. 인숙이라는 여자는 화려함속에 가시를 잔뜩 숨겨둔 여자로 아름답다고  

만지게 되면 가시에 찔려 피가 나는 장미꽃 같다. 희련에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독설을 퍼부을 때 정말 독한 여자구나 하고 섬짓함을 느꼈다.  


너무나도 잔인하게 작가는 마지막으로 희련이 자살한다는 결말을 지었다.  

희련이 당당하게 상처를 극복하고 딛고 일어서는 메시지를 전해 들을 줄 으레 짐작했던  

내 예상이 빗나갔다. 그래서 더더욱 후에 이 작품을 기억하기 수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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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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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 네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니?”  


나는 수도 없이 많아서 일일이 다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공지영씨의 소설은 읽혀지는 것도 수월하고 여성들의 문제들을 잘 다루는 작품이 많아서  

즐겨 보는데,2005년 최근작이 도서관에 신착되어서 주저없이 빼들었다.  

사형은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과연 그 제도를 인간인 우리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지,  

아무리 많은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반대의견을 갖고 있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 큰 죄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그 죄값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죄에 죄를 무는,  

악에 악을 더하는 짓이 아닌가. 윤호의 죽음은 그래서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라의 법인지라. 나는 아직 내 목소리를 사회에 내놓을 만큼의 자질이  

갖춰지지 않았고 그만한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한번쯤 꼭 외쳐보고 싶다.  

‘사형제도 반대!‘ 라고말이다. 내가 그렇게 느낀 데에는 이 책의 공헌이 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는 문유정이라는 전직 가수, 현직 교수. 자살을 3번이나 시도했으나  

그녀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 모니카 수녀(고모) 한 분 때문에 버텨온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어딘가 삐뚤어진 생각을 지니고 있는 이 여자가 변한다. 자신보다 더한 더 악하다고  

처음에 생각했던 윤호를 고모를 따라 감옥에 가서 면회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유정이라고 해도 감옥에 처음 가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떨리고, 무섭기가 말도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짐을 하면서 면회를 왔지만, 

 왠지 모를 공통점이 느껴지고 그녀의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아주 사소한 것도 감옥에서의 일에  

비하면 너무도 가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마음을 연다.  


윤호도 처음에는 모니카 수녀를 거부하고 말조차 하지 않겠다고 그냥 죽게 내버려달라고 하지만 

 수녀님의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과 간절함, 기다림이 그를 움직였다.  

그리고 없어서는 안될 아주 자그마한 희망이 된 것이었다. 


블루노트에서 짤막짤막하게 조각처럼 그리고 있는 윤호의 삶을 맞춰나가면서  

윤호가 왜 그런 일들을 겪었고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 차츰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의 동생 은호와 어렸을 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고 먹여 살리느라 도둑질도 일삼고,  

너무도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아이들이 돌아다닐때 사람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윤호는 감옥에서 강원도 태백에 있는 아이들과 편지를 나누며 같이 바다를 보러가겠다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해버리는데, 이것을 유정이 그가 후에 죽은뒤 지켜주게 된다.  


그러면 안되는 것이겠지만 내가 막 재판장이라도 되서 다시 재심을 한 후 석방까지는 안되더라도 

무기징역으로 판결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정이 전직 가수였을때 부르던 애국가는  

윤호의 동생 은호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노래였다. 유정이 윤호 앞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부를 때  

윤호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윤호에게 봉수가 씌워질 때 갑자기 발버둥을 치며  

막상 눈앞에 죽음이 다가오니 애국가를 불러도 진정되지 않아요 라는 말을 외치며 죽는다.  

가슴이 찡했다. 아쉬웠다. 이제야 겨우 천사가 됬는데, 아직 30도 안된 나이에 ... 

이게 무슨 장난이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감옥에 있고 이제 곧 죽을 사람들에게 교화를 시켜 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꼭 종교인이라서만이 아니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나면 양심의 가책에 살아도 살은 게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런 희망하나 없는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해주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을 만드신 절대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떠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오지 않는다.  

내게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이 올 때 비로소 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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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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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속의 홀로 된 공간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속, 그 어딘가에 남들에게는 한번도 말해주지 않은 것들. 나를 만드신 그분과 나만 아는 어떤 비밀스러운 것들을 담아놓은 외딴방이 존재하고 있다.예전에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된 새로운 사실이었다. 내가 이 책을 안읽었더라면 얼마나 많이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외딴방’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있지는 않다. 아직 세상을 많이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훗날 신경숙 작가처럼 내 어린시절, 지금 이 시절을 글쓰기로 표현하려 할 때,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만 한다면 난 주저없이 그 기회를 양껏 이용해 글로 그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빌어 표현해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은 내가 읽어본 소설들 중에서 정말 소설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중 하나이다. 그건 아마 이 책에서도 나왔듯이 책 하나를 쓸 때마다 다른 작가들은 한가롭고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뚝딱 떠오른다는데 작가는 큰오빠에게 너무 책을 자주 빨리 내는 것 같다며 너를 깎아내는 일이라고 쉬엄쉬엄 글을 쓰라고 한다.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맞는말이다. 글을 쓰는 것은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갉아먹는 그 무엇이 나의 아픈 상처를 끄내놓는 일이라면 또는 그 기억들을 극복해 내기 위해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것이라면 상처가 아파 쓰라려도 글로 옮겨적는다는 것. 그것이 진짜 작가의 정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했던 실제적인 글쓰기의 어려움은 시금치의 색깔과 맛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해 내기란 너무 어렵다는 말에 나타나 있다. 정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비유이다. 내가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했을 때 그것을 하다못해 일기에다가라고 나중에 봤을 때 ‘그랬지, 이렇게 맛있었고 이런 느낌이었지’ 라고 떠올릴 수 있도록 하려고 적을라 치면 어떻게 해야 감질맛 나게 표현이 되는지 한참동안 고민하게 되고 탁 막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들의 고충을 이런 사소한 일에서 일부분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열여섯에 집을 나와 공순이라 불리면서 야간학교를 다니고, 하고싶은 글쓰기(난쏘공을 베껴쓰는 것)만 했던 그 학교시절, 매일 함께 했던 외사촌 그리고 아픔으로 남아있는 희재언니와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가 맞는 듯 또는 그냥 소설일 뿐인 듯 신경숙 작가는 자신의 수기를 펼치고 있는것인지 허구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허구와 픽션의 그 중간쯤 된다는 말은 아마 이런 것을 뜻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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