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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사카 코타로, 온다 리쿠, 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이 작가들의 공통점이라면 미스터리 성향의 일본 대중소설 작가이며 최근 가장 많은 작품이 출간된(혹은 출간 예정인) 작가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중 히가시노 게이고는 꾸준히 국내에 작품이 소개돼오다가 134회 나오키 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에 더욱 그 가치를 높인 작가라고 볼 수 있겠죠. 아마 국내에서 몸값도 몇 배 이상 올랐을 겁니다. ^^;; 게다가 2006년에는 그의 역작이라는 <백야행>이 TBS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죠. 일본에서의 인기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죠. 작년 대중문학잡지 <다빈치>에 최고 남자 작가로 선정됐습니다(당시 여자는 7년 연속 뽑힌 미야베 미유키). <방과 후>로 3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으며, 영화화되기도 했던 <비밀>로는 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은 작가 스스로 ‘정통파 추리 계통으로는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자랑스럽게 내미는 작품인데요. 오랫동안 후보로 이름을 올렸던 인기 작가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르겠지만;; 2006년 1월, 134회 나오키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 작품은 잡지 <이 미스터리가 좋다>의 리스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구요,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뭐 당연한 얘기지만 <주간 문예 춘추>에서 선정하는 미스터리 순위에서도 1위를 기록했죠. 일본에서는 2005년 하반기부터 미스터리 관련 부문을 싹싹 쓸어담은 최고의 화제작이었습니다.
작품 내로 돌아가서…. <용의자 X의 헌신>의 전체 얼개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호스티스 생활을 마치고 도시락집에서 일하는 야스코와 미야코 모녀. 어느날 그녀에게 전남편이 찾아와서 횡포를 부리기 시작하죠. 뭐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혼한 전남편은 못된 사람입니다; 모녀는 우발적으로 전남편을 살해하게 되는데요. 이 일을 알게 된 이웃의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사건을 수습하게 됩니다. 이시가미는 오랫동안 도시락만 먹을 만큼; 야스코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죠. 시체가 발견되고 수사가 시작되는데, 쉽사리 잘 풀리지 않습니다. 이시가미는 ‘천재’이기 때문이죠. 그가 펼치는 살인 은폐의 장막에 역시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 조교수가 도전합니다. 둘은 대학 동창으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이였죠(좋은 대학입니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심지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큰 구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미리 드러냅니다. 과연 용의자 X의 헌신이란 어떤 헌신일까요? 또 이시가미가 꾸민 천재적인 살인수식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지만 너무나도 상식적으로 느껴져서; 추리소설 작가라면 가지고 있을 법한 어떤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요(다분히 마니아적인 불평입니다;). 이 작품도 제가 느낀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더군요. 군더더기 없는 전개, 깔끔한 글솜씨 등 모든 요소가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합니다. 얼마나 빨리 읽히는지.. 슉슉 잘도 넘어갑니다.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은 결코 ‘적절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듯해요. 뛰어납니다. ‘정통 추리소설’이라 하면 무엇보다도 ‘아이디어’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하는가는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트릭은 뭐라할까, 매우 독특합니다. 결코 독창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이런 형태는 처음 봤습니다;;.
여기에 ‘천재의 대결’이라는 재미있는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추리소설에서 대결구도는 얼마나 매력적인지… 저 태고적 ‘검은별과 바베크’부터 시작해서 모리어티 교수와 홈즈나 이지돌과 뤼팽 등등 왠지 대결구도가 나오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지지요. 이 장편의 탐정 역할을 맡은,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이라는 단편에 등장했던 천재 유가와 조교수는 정말 전형적인 명탐정입니다. 대학 동기이자 천재 수학자인 이시가미가 겨루는 두뇌싸움은 작품 내에서 무척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작가에 따르면 유가와 교수의 호적수로는 논리와 이성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정통파를 등장시켜야했고 ‘수학자’여야만 했다더군요. 이공 계통 출신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수학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네요.;; 게다가 상당히 애뜻하단 말이죠. 일시에 모든 것이 허무러지듯 밝혀지고 살인자, 헌신자(?), 수사원, 탐정이 만나는 결말은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가슴 찡한 결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저는 아니었지만;;).
<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신선한 트릭이 작품의 요소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점이 칭찬할만 해요. 트릭이 구조를 부르고 구조가 캐릭터를 불러내고 이 캐릭터와 작가의 역량이 작품을 만들어 낸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재미있고, 잘 읽힙니다. 약간 무서운 여자;;가 등장한다는 <환야>가 기대되는 걸요.
음, 사족으로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야스코 모녀의 입장이에요. 유일하게 작품 내에서 이 부분이 부족합니다. 매우 수동적인 입장이고 자세히 살펴보면 모순이 있는 캐릭터들이에요. 작가가 작품 내에서 안배는 해놓았지만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정실수로 보이는 사소한 오류들; 그래도 업계 종사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정도 짐작하고 이해는 가지만요(아무리 봐도 오타는 나오니까요;). 다음 쇄나 판에는 깨끗하게 수정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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