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기록해보자고 열어둔 공간인데,
공교롭게도 이따금 페이퍼만 쓰고 있네.
각잡고 앉아 리뷰 쓸 틈,
아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볼 틈조차 없이
지난 며칠이 지나갔다.

둘째가 집으로 왔고,
밤낮으로 아이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칭얼거림을 달래주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그래도 비교적 평온한 날들이다.
둘째는 신생아 치고는 잘 먹고 잘 자는 편이고,
첫째는 엄마아빠 이상으로 아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하루에도 몇십번이나 아가에게 뽀뽀를 해대는지 모른다.
아기에게 질투하는 것보다
오히려 아기를 너무 좋아해서 종일 만지고 뽀뽀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걸 경계해야 할 정도니.

시어머님이 집에 오셨다가
첫아이를 시댁으로 데려가 주셔서
오늘은 처음으로 둘째랑 둘이서만 집에 있다.

그 동안은 남편이나 친정엄마가 집에 있어줘서
늘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모처럼 오늘 이렇게
분유 먹고 푹 자는 아기 옆에서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본다.

덕분에 커피도 한 잔 하고,
책도 몇 권 쌓아두고 읽어보면서.
그 틈에 잠깐 남겨본다.

자는 아기 옆에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보니
나도 노곤노곤 잠이 밀려온다.
잠깐 눈을 붙여볼까보다.

쌔근쌔근 잠든 아기,
이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일렁일렁 아름다운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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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 잠깐 작은 추억에 잠겨 본다.


대학 졸업반 시절이었나보다.

여느 때처럼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아파트 계단에 들어설 때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처음 보는 남학생(학생이었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또래였으므로 학생이었다고 해두자)이었다.

머뭇거리듯,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천천히 예의를 지키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나를 지켜보았다고 했다.

버스에서 나를 만난 지 여러 날 되었다고 했다.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 같아 보였다고,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그 말이 중요한 것 같은데)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자를 쓰고 있었고, 아이보리빛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헐렁한 옷,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유행하던 힙합 스타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자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며, 오늘 마음을 전하려고 용기내어 따라 내렸다고 했다.

숱한 떨림 속에서, 진심을 전하고자 애쓰던 마음씀씀이가 느껴졌다.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은 헤어질까 말까 고민을 하던 사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별한 상태도 아니면서 누군가를 만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공교롭게도 손가락에는 커플링까지 끼워져 있었다.


그는 반지의 의미를 물었다.

그 물음에, 정직하게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왜 대답해줘야 하느냐며 반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이없는 대답이긴 했네)

그는, 말씀을 찰 얄밉게 하시네요, 라고 했던 것 같다. 


끝까지 나는 남자친구가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좋은 사람 같네요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마음 속으로는 좋은 사람 같다, 궁금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의 나 역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차마, 그가 마음에 든다 해도 

멀쩡히 있는 남자친구를 없다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

그날의 나였다.


그의 떨림과 용기가 느껴지는 말들 앞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특히나 그날은 더더욱, 반바지에 아무 티셔츠나 걸쳐 입고

머리는 대충 묶은, '추리'한 모습인 나를 보고 대체 이 남자는 어떻게 나를 따라왔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떤 말로 그를 돌려세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일부러 고백을 하기 위해 따라내렸다던 그.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던 사람이었을까.


어리고 풋풋해서 가능한 떨림이고

그래서 가능한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설프고 서툴러 갑자기 마주한 진심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시절이었지 싶다.


결국 나는 당시 만나던 사람과는 헤어졌고

그날 만났던 그 사람은 이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라, 어떤 아쉬움이나 특별한 감정은 없지만

두려움과 떨림을 이겨낸 젊은날의 어떤 용기

평범한 어린날의 나를 특별하게 바라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

다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하나의 장면이

생각하면 빙긋 미소짓게 해주는 기억이 된 것 같아서.


그날로부터 나는 먼 길을 왔지만

사람의 가장 순수한 마음

누군가를 향한 여리고 팔딱거리는 설렘과 떨림들,

두근두근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만은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언제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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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오랜만에 쓴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서재를 찾았다.


둘째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다.

이제 조리원에서의 시간은 만 이틀도 남지 않았다.

오늘밤이 지나면(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토요일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 오전에 퇴실을 해야 한다.


조리원으로 신랑이 맥북을 가져다 주었는데

덕분에 아주 쏠쏠하게 썼다. 

(진작에 생일+출산선물 명목으로 미리부터 받아냈던! 오마이 아름다운 맥북이여)

이렇게 글도 가끔 쓰고, 각종 육아용품 검색도 하고, 

이전엔 보지 못한 영화들도 봤다. 


그리고 집에 가기 직전에야, 이렇게 서재도 들러보고 글도 써 본다.

나가면 새로운, 분투하는 나날이 시작되겠지만.

지금의 이 여유가 얼마나 달콤하고도 간절하게 그리울지.


그래도, 틈틈이, 잠깐씩이라도 써보도록 해야겠다.

너무 오래 버려두었던 서재.

리뷰도 쓰고, 페이퍼도 써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조금씩, 간단히라도 남겨봐야겠다.

첫아이 눈치보느라 집에서는 이렇게 맥북 펴놓고 마음껏 쓸 수는 없겠지만.

모바일로도 써보고, 아이 잠든 틈에도 써보고, 첫째 유치원에 가 있는 사이에도 써봐야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내일의 위안이 될

이런 의식이나 몸짓들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점처럼 이어지면 삶에 작은 생기와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


손글씨로는 자주 일기를 쓴다.

또 얼마나 이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생각이 날 때에라도, 아주 잠깐씩이라도 들러서.

오늘의 기록들을, 흔적들을 남겨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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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6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루 2016-02-06 1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오랜만에 찾은 서재에 이렇게 들러주시니 온기가 도네요. ^^
돌아가서 새로운 나날들을 건강하고 기운차게 잘 보내야겠지요. 즐거운 명절 보내셔요 :)
 
푸름이 엄마의 육아메시지
신영일 지음 / 푸른육아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2016년에 읽은 첫 번째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몇 권의 육아서적 중 한 권이었다. 첫아이가 올해 다섯 살이 되었다. 아이가 자라가고 차츰 자아가 확장되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아이를 어떻게 지혜롭게 양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먼저 키운 이들 혹은 전문가들의 팁을 적극적으로 얻어야겠다는 생각에 육아서적 몇 권을 선별해 탐독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였는데, 도서관에서 눈에 띄는 육아책을 네 권인가 한꺼번에 빌린 날이었다. 그 중 서천석 의사의 책도 있었고, 뱃속에 있는 둘째를 위해 읽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도 있었다.

영재로 유명했다는 푸름이 엄마의 순한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생각보다 푸름이네 집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 와중에 책을 오백 권인가를 사서 읽혔다는 이야기에는 가벼운 충격도 받고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새로운 전집을 하나 더 들이기도 했다. 세계명작전집인데, 글이 많고 내용이 꽤 긴데도 아이가 끝까지 열심히 들어 놀라기도 했었다. 다만, 어릴 때는 무심코 읽었던 소위 명작이라는 이야기들이 전개의 비약이 심하고 주인공은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부자가 되거나 화려한 결혼을 하게 되는 결말을 대하면서는 황당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책을 읽어주다 중단하기도 했었다. 혹은 선인과 악인이 너무 분명하게 나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러나저러나 어차피 아이가 알게 될 이야기들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이 삶의 크고작은 문제나 갈등을 경험하면서 요령껏, 자기답게 해결해나가는 그런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려주고 싶다. 앞으로는 전집보다 좋은 그림책이나 동화책들을 하나씩 직접 선택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러려면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가 많이 필요하다는 게 어려운 점이긴 하지만)

쓰여진 지 좀 된 책이라 요즈음의 육아스타일과는 동떨어진 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육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거니까. 변함없는 사랑, 끝없는 관심,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것. 


"아이가 지뢰밭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는, 살며시 푸른 초원으로 인도해 주어야 하지요.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이 배려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에게 매사 끌려다닌다면 버릇없는 아이를 만듭니다. 아이는 분별력이 약하기 때문에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분별해 줄 수 있는 리더는 엄마여야 하지요. 엄마는 부드러운 지휘자이며, 때로는 단호한 선장입니다." (34쪽)


아이의 따뜻한 지지자일 뿐만 아니라 지휘자이며 선장과 같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좀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되는 대로, 내 맘대로가 아닌,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으로, 배우고 짜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혜로, 그렇게 현명한 열심과 지각있는 사랑으로 동행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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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의 클럽하우스: 미니의 겨울 리본 패션쇼 - 한국어 더빙 수록
필 와인스타인 외 감독, 토니 안젤모 외 목소리 / 월트디즈니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4살 여자아이 정말정말 좋아하고 자주 본다. 그림도 현대적이고 노래들도 신 나서 귀에 쏙쏙 들어온다. 아이가 좀더 크면 영어 리스닝에도 도움이 될 듯. 시종일관 흥겨운 분위기, 길고 충분한 분량. 어른이 같이 봐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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