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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ㅣ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청전 이명방, 청장관 이덕무, 직각 남공철, 영재 유득공, 익권 홍인태, 정유 박제가, 기상 이옥
호와 이름이 매치되지 않아 첨부터 메모지를 하나 옆에끼고 찬찬히 읽어야했다. 역사책에서 자주 뵙던 그 분들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얘기하시니... 난 역사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다 잠시쉬며 이건 소설일뿐이야 하며 내 자신에게 각인을 시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사책을 볼 때마다 소설속 내용을 내 맘대로 역사의 일부분으로 갖다붙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깐..
백탑파 이야기를 첨 읽은게 5년전쯤 되니까 방각본이나, 열녀문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러나 속으론 내 자신 게으름을 다시 한 번 반성하며 앞으로는 꼭 한 번 읽은 책은 기록하고 되새겨두자고 다짐한다. 어쨌든 조만간 시간이 나면 방각본부터 시리즈를 한꺼번에 꺼내 읽어볼 작정이다.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하니까.
앞의 두 이야기들처럼 열하광인 역시 스토리는 간결하다. 열하광의 모임을 약속한 날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낯선이들에 의해 조명수가 이명방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조명수의 죽음을 알리러 온 덕천 대사와 같이 나간 이명방은 시신을 확인 후 덕천 대사와 밀주를 마시고 헤어진 후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깨어보니 이덕무의 집이었고 얼마 후 덕천 대사가 자신의 표창에 찔려 죽어서 발견되지만 여전히 기억 나는건 없다.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게 되는 명방. 그리고 열하광인들의 연달은 죽음.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다 고시조같은 김탁환 님의 글솜씨 역시 한 줄 한 줄 빼놓지 않고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매력적인 면모를 어찌나 잘 살려놨는지 역사 속 그 분들을 정말 마주대하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특히 내가 젤 감탄했던 부분은 이덕무의 병환이 깊다는 소식을 듣고 의금부 도사들에게 잡힐 줄 뻔히 알면서도 찾아간 이명방과 이덕무의 대면 장면이다. 죽기전 자신이 그렇게 힘들게 쓰고 또 썼던 자송문을 갈가리 찢고서야 편안해지는 이덕무를 보며 이명방은 자신이 바로 자송문이라고 확신한다. 너무쉽게 자송문을 요구하는 쪽에 속하였고 급기야 자송문과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고. 그리고 이왕 서책이 될 거라면 자송문이 아니라 '열하'로 거듭날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정조대왕이 금서로 정할 정도로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그렇게 대단했던가.. 목숨을 버릴 정도로.. 진정으로 미쳐야 미치는, 그래서 스스로를 광인이라고 칭할 정도로.. 멋지다. 멋질수밖에 그렇게 미칠수 있었으니..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들이 어떤 서생의 글 잘짓던 아버지의 복수였다는 게 허무할 수도 있지만.. 범인을 밝혀 내는 화광 김진의 재기역시 감탄할 만하다. 장원 급제해 왕 앞에선 서생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문체와 인품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왕이 꺠닫게 하기 위해 범인을 알고서도 바로 고하지 않고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김진.. 멋지다 멋져..
이야기는 이명방이 열하광인의 매설까지 마무리 짓는걸로 끝난다. 아쉽다. 백탑파 이야기라면 앞으로도 쭉 읽고 싶은데.. 세번째가 끝이라니.. 그러나 엄청난 양의 참고 문헌 목록만으로도 작가님의 노고를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아쉽지만 책을 덮는다. 참고 문헌을 보며 또 다음 읽을거리를 생각하는 시간이 좋다. 이렇게 잘 쓰인 소설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래서 김탁환 작가의 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