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클라라를 증오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진정한 증오는 세월을 통해 배워지는 일종의 재능이니까.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겠다고, 그녀의 이름을 두 번 다시 언급하거나 그녀 곁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추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찌 된 일인지,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집을 뛰쳐나오게 했던 분노가 이미 연기처럼 자취를 감춰버리고 사라졌다.
그러나 다음 날 새로운 분노로 다시 그곳에 돌아올 것이 두려웠다. 그날 밤 있었던 일의 파편들이 스스로의 무게에 의해 추락할 때, 질투와 부끄러움이 서서히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두려웠다.
-102쪽


그래, 난 누리아가, 비록 말은 않지만,
아직도 그자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래서 난 결코 카락스를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다.
너는 아직 젊어 모르겠지만, 난 이런 것들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안단다.
... 카락스는 마음을 도둑질한 놈인데,
그놈은 내 딸의 마음을 무덤이나 지옥까지 가져가버린 거란다.

-119쪽

그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고, 그녀는 장난치며 그에게 뭔가를 소곤대는 듯했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미소 짓게 했다.
나는 그 한 쌍의 남녀에게 집중했다.
그들의 옷으로 보아 나는 그 사진이 적어도 25년이나 30년쯤 된 것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이를 얼마 먹지 않은 젊은이들의 시선에만 깃드는, 서로에 대한 약속으로 충만한 빛과 희망이 모습이었다.
-164쪽

"여자의 마음은 속임수를 쓰는 남자의 버릇없는 정신에 도전하는 섬세한 미로지.
만일 네가 진정으로 한 여자를 소유하고 싶다면, 그 여자처럼 생각해야 돼.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얻는 게 우선이지.
나머지 것들, 즉 사람으로 하여금 감각과 미덕을 잃게 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포장은 보너스로 오는 거야."

-214쪽

"모르겠어."
그녀가 결국 중얼거렸다. "모르겠어."

"언젠가 누가 그랬어.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선다면, 그땐 이미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282쪽

"이봐, 다니엘.
여자들이란, 이웃에 사는 메르세디타스처럼 대단한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보다 똑똑하단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들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너나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않고는 또 다른 문제야.
넌 지금 본성의 수수께끼에 직면해 있는 거란다.

여자란 바벨탑이자 미로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게 되면, 넌 지게 돼.
이 말을 기억하라구.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정신, 사랑을 갈구하는 자의 코드지."
-306쪽

"수년 동안 너보다 나이 많은 여자를 사랑했었는데
그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파했다는 말도 했어."

"그 모든 일에서 찢어진 거라곤 내 입술하고 자존심뿐이야."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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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4-2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는데..여기서 다시 보니 반갑네요..;;
즐거운 책읽기 하시기를 바랍니다^^

ryder 2005-04-2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완전히 몰두해서 읽어버렸지요.
멋진 책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