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렁크 러브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필립 세무어 호프만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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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들이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비정상인 틈바구니에서는 정상이 비정상인 것이다.
혹은 그저 다를 뿐이다.
하지만 너무도 바쁘고, 정신없고, 그러는 와중에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알려고 하는 가족, 사회.
그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쩌면 이상한 일일지도.

<매그놀리아>에서도 그랬듯이 감독은 역시 '우연'의 상황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우연이 결코 우연이 아닐 수도 있음을 역설했던 것이 <매그놀리아>였다면
<펀치 드렁크 러브>는 우연에 의해 밝혀질 수 있는, 혹은 발견할 수 있는 '자아'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내가 사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너무 같은 방식의 사랑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방식의 사랑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와 동시에 '나'를 인정해 가는 것, 동시에 내가 아니라 세상을 밀어내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

애덤 샌들러의 연기는 뭐 많이들 칭찬한 만큼이고
에밀리 왓슨의 연기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예전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보여 줬던 그 신들린 연기가
현대 멜로에서도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약간은 이상한 듯하면서도 따뜻한 그녀의 웃음...
아마 에밀리 왓슨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나의 반쪽을 찾는 로맨틱 코메디라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해 줄 때만 완성될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기에 더 값지다.
아,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짧은 분량이었지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미션 임파서블3>하고 <카포티> 빨리 챙겨 봐야겠다.
(근데 난 왜 자꾸 잭 블랙하고 헷갈리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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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2disc) - 할인판
허진호 감독, 손예진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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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허진호는 줄곧 사랑을 이야기해 왔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의 사랑, 갑자기 다가왔다가 그렇게 떠나 버리는 사랑,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러니 상황 속에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랬다.
허진호는 줄곧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을 이야기해 왔다.
사랑할 때 맞닥뜨린 죽음, 떠나 버리고 가야 할 노부,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사랑, 떠나 버린 사람, 그리고 이번에는 '차라리 죽어 버리지 그랬어!'라고 이야기해야 할 부인...

<외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위에 나와 있는, 배용준이 후배를 데리고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너무도 힘들고 힘들어서 마시는 술, 그렇게 옆에 있는 후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곧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 결국은 '너 가라!' '그냥 가라!'라고 이야기하는 배용준.
그 경계의 아슬아슬함이 너무도 리얼하여,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좌불안석.
최근 MBC 일일 드라마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인가를 잠시 봤는데, 너무도 아슬아슬해서 차마 볼 수 없었다.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 '아슬아슬함'과 <외출>이 보여 준 '아슬아슬함'은 왠지 다르다.
일일드라마의 감정이 '쟤네 저러다 들키면 어떡해?'라는 관찰자의 마음이었다면
<외출>은 '저 외줄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감정이입의 마음이었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랑, 그리고 엇갈림
하지만 마지막 장면 즈음, 봄날에 내리는 눈은
모든 불안과 아쉬움과 연민을 한꺼번에 감싸 안는다.
결국 배용준과 손예진이 다시 만날지 어떨지 모르지만
그들은 경계 위의 사랑에서 다시 한 단계 성숙해졌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배용준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씬들은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함께, 그리고 배경음악과 함께 묘한 여운을 주는 씬들이다.
눅눅하게 안개처럼 가슴에 스며들어 잘 지워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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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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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야베 월드에 입문했다.
결론은?
대만족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드문드문 읽기는 했지만
미미 여사의 마력을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흔히들 <13계단>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이름 붙인 것들의 원조로 미미 여사를 꼽는데
다 읽고 나니 '그럴 만하군!'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소설은
일단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도대체 다음 이야기는 뭘까?라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더니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결국 소년탐정 김전일이야?'라는 생각이 들어 슬몃 실망감이 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역량은 마지막 몇십 페이지에서 나타난다.
주인공 소년을 딜레마 상황에 몰아넣음으로써
이야기를 독자의 것이 되게 만들어 준다.
결국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물음을 간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결말 역시, 어줍잖게 얼버무리거나, 단선적 결말로 싱거움을 남기지도 않는다.
너무도 그럴싸한 결말.
그 따뜻하지만 명확한 시선, 마음에 든다!
성장소설인 동시에 추리소설이며, 약간의 미스테리까지 가미한 이 작품은
비슷한 범주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아쉬움을 남겼던 <해변의 카프카>와 비교된다.
<해변의 카프카>의 지독한 추상성에 대한 답을 해주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미미 여사의 팬이 될 듯한 예감이 든다.
아,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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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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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대한민국의 인맥 만들기의 실체, 그 결정판이 강남이라는 강준만의 결론은.
그러나 명쾌하다.
이리저리 돌려 말하지 않고, 정확하게 나름의 결론을 내려 주는 시원한 연구.
누군가는 기사 짜집기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수많은 기사와 참고문헌을 검색하고 정리하여
강남의 기원, 미친 아파트 열풍의 기원, 그리고 대한민국 부실공화국의 밑바닥을 파헤쳐 준
강준만의 끈기있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워낙 유명한 강준만이지만 사실 그의 저작을 읽어 본 게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 방대한 <한국 현대사 산책>의 작업이 없었다면, 이 책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근대를 되살려내 조망해 주는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나 <구보씨 경성을 걷다>와 같이
5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만화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강남을 그냥 가둬 두든가, 아니면 인맥 만들기의 풍조를 모조리 잘라내야 한다는 것!
학군을 열고, 집을 늘리고, 세금을 때리면 조금은 효과가 있겠지만
역시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한다.
결국은 또 없는 사람들의 설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강남인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또 성을 높이 높이 쌓을 뿐이다.
그래, 강준만의 진단, 꽤 많이 공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인맥 만들기의 풍조는 사라지는 걸까?
다시 한번 이 부분에 답을 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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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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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야말로 카프카였다.
그간 도시적이면서도, 실존의 고민을 놓치지 않는, 20세기말의 고리끼 같은 행보를 걸어 왔던 하루끼가
살짝도 아닌, 휙 몸을 틀어 도스토예프스키와 카프카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보인 것이다.
결론은, 비틀다 만 그의 방향타는 형이상학도 형이하학도 아닌
판타지의 옷을 빌려 입은 21세기초의 랭보를 낳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1권까지는 훌륭했다. 물론 일본에서 출간될 때는 단권이었던 것 같으니, 권 구분은 의미가 없을 테고,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는 카프카 군과 나카타 상의 오딧세이가 어느덧 접점을 찾아가고, 무언가 실마리를 보이는 듯한 부분까지 그렇다는 말이겠다.
아마, 하루끼는 그런 걸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불분명한 것, 정의하지 않은 것, 의미가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의 불안정성, 그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형식까지 내용과 일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 되겠지만, 이번 경우는
내용과 주제를 너무도 그대로 옮긴 듯한 어정쩡한 형식은
'경계'와 '운명' '시간성'에 대한 사유, 혹은 인과적인 룰에 지배되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 대한 성찰, 이라는 어찌 보면 거창하지만, 어찌 보면 단순할 수도 있는 주제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그 주제를 살려내는 데 일조하기보다는, 더 밋밋하게 만드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비극이 훌륭한 것은, 본격 문학, 흔히 얘기하는 마스터피스 격의 작품들이 훌륭한 것은, 그 극한의 치열함과 실존의 아슬아슬함을, 수사학이 아니라, 삶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게, 고민할 수 있게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류를 표방하고자 했던 것 같은 <해변의 카프카>는, 적어도 내 경우에는, 더 고민을 지속하게도, 깊이 들어가게도, 혹은 앙금으로 남아 있게도 하지 못했다.

줄곧 고민이 들었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늘어지는 이야기, 반복되는 묘사, 혹시 이야기가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불안감...(물론 한꺼번에 쭉 읽지 않은 탓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적어도, 책에서 진한 고딕으로 표시한 추상적 어휘들의 의미들처럼, 형이상학의 세계를 이 땅으로 끌어내려 보려는 하루끼의 의도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건 진한 고딕이라는 형식적 한계처럼, 그저 '나는 그렇게 정의하고자 한다'는 지극한 자아도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서, 어떠한 울림도, 문학적 떨림도 전해 주지 못했다.

이 작품이 과연 장르의 공식을 더 충실하게 따라가거나, 혹은 일정 정도는 비틀되, 어쨌든 이야기의 구체성을 더 획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은 계속 들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하루끼는 그러지 않았을까. 자신은 당연히 남들과 다른 작품을 쓴다고.
하지만, 미스터리, 판타지의 아주 얇은 외피만 두르고, 실존적 고민과 비극을 남발하는 이야기는 지나친 반복과 변죽만 울리는 형상화, 분위기 연출의 극대화로, 두르지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낳은 듯하다.
또한 장르적 공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이야기의 구체성만 조금 더 획득했더라면, 플롯의 정합성만 조금만 더 획득했더라면 아쉬움은 더 크다.
솔직히, 나카타상이 어릴 적 경험했던 초현실적인 현상이 무엇인지, 사에키 상이 입구를 열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였던 것인지, 카프카의 아버지는 그 중 어떤 경계에 있었던 것인지 등이 좀 더 명확했다면 더 재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시시콜콜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유치한 짓이라고 비웃는 듯, 이 작품은 모두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카프카, 오시마, 사에키가 늘어놓는 사변이 더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쨌든 마무리를 짓자면, 여러 모로 아쉬운 작품이다.
그간 하루끼 초기작과 최근 오래간만에 읽은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좋게 봤던 독자로서, 나름 지지자로서(최근 일련의 지긋한 평론가들이 과대평가된 작가라면 평가절하를 요구하고 있는 시점에),
이상하게 나와는 맞닿지 않는 의욕과잉이, 하루끼의 새로운 시도에 흠이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로서는,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인 오시마와 카프카, 그리고 묘한 지점에 놓여 있는 최고의 캐릭터 커플인 나카타와 호시노, 또한 스테레오이면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사에키, 사쿠라...
이렇게 멋진 캐릭터들을 창조해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게 못내 아쉬울 뿐이다.
더구나 초반의 절묘한 이야기 흐름까지 생각한다면 더 아쉬운 것이다.

그러기에 한 번 더 기대해 보련다.
같이 샀던 <어둠의 저편>이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그래도 난 여전히 '하루끼는 과대평가되었다'고 평가절하하는 저 높으신 국내 평론가들보다 하루끼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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