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양장본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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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리처드 파인만 씨를 드디어 접했다.
물론 감히 <물리학 강의> 3권부터 접한 것은 아니고
그 중 가장 쉬운 강의라 일컬어지는 여섯 개를 모은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다.
서문에도 나와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이 쉽게 읽을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그가 강의할 때도 제대로 따라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 오래간만에(물론 그때라고 전공을 열심히 팠다는 건 아니고...) 수식이 있는 이공계 쪽 책을 다시 보는데, 의외로 흥분이 됐다.
몇 번씩 생각을 해 보고, 맞춰 보고, 뒤로 돌아가고 하면서 끌고 가는 재미.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기 전에는 <물리학 강의> 3권을 공부하듯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랄까, 어느 학문 분야든 느끼는 거지만
천재는 천재다. 혹은 대가는 대가다.
원자론부터 시작해서 양자역학까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전, 화학, 천문, 지구과학, 수학 등 다른 과학 분야까지 설명을 해내는 힘이란...

一以貫之 !

아, 진정 이런 사람들과 책을 만들고 싶다!
한 권만 만들고 물러나더라도 소원이 없겠다!

정말, 이 양반 농담도 잘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양반의 과학적 태도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자신의 위치를 너무도 잘 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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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를 베끼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29
위선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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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시가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묘하다. 육십이 넘어 토해 내기, 모으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이번에 나온 <새떼를 베끼다>가 세 번째 시집이란다.
한 편의 시가 한 눈에 싹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즈음에 다다르면 묘하게 한두 줄이 가슴에 턱 얹힌다. 그래서 다시 앞 부분을 그려 보게 된다.
서정시도 아니다. 추상도 아니다.
시인의 눈은 주변의 사물을, 자연을 보는데, 그는 거기서 다른 세상을 본다.
'허물'에서 속도를 보고, '새의 길'에서 공중을 보고, '하늘 비친 못'에서 가락지를, 기다림을, 외로움을 보는 식이다.
그렇게 그려 내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고개를 젖히고, 손가락은 허공을 가리키고, 아주 무너지기도 하는 식이다.
읽다 보니,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진다.
왠지 행을 가르고, 연을 가르고, 시인의 의도대로 띄엄띄엄 읽으면
더 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좋은 시편들이다.
나이 육십에 토해 내는 시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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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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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과 관련되거나 피해자를 다룬 이야기는 좀 꺼려하는 편이다.
일본 식민의 피해자인 우리 얘기도 그렇거니와 유대인에 대한 얘기도 그렇다.
어차피 민족이라는, 국가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함의는 내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저 나를 이름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는 <GO> 같은 영화나 <박치기> 같은 영화는 오히려 힘을 갖는다.
혹은 폭력과 광기의 본질을 보여 주는 <전쟁의 사상자들>도 마찬가지다.
즉, 그 이야기가 어떤 특별한 한 사람으로 귀결되지 않고
인간 본성이나 전쟁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처절한 정원>은 그리 슬프지도, 아주 감동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이 짧지만 놀라운 구성력의 소설은
아들과 아버지, 가족의 관계, '속죄'의 의미, '살아남음'의 의미에 대해
에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뻔뻔하지도 않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 재판장에서 시작한 첫 장면은 바로 주인공의 고백으로 흘러가고
그 고백은 다시 아버지와 삼촌의 과거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그 재판장.
이 이야기에는 세 명의 어릿광대가 나오는데
다른 의미의 '웃음'을 간직한 캐릭터인 동시에
세 이야기를 엮어 주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놀랍도록 깔끔하고 아름답고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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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녀 백과사전 낮은산 너른들 2
김옥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낮은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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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청소녀(년)들에 대해 다룬 문학, 기획물이 성행이다.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이름으로 큰 출판사들에서 꽤 열심히 문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장사다.
ㅊ, ㅁ, ㅇ 출판사들이 내고 있는 필독서들은 그야말로 자기들의 성인 스테디셀러를
다시 판갈이를 한 것에 불과하다.
정작 청소녀(년)들의 삶을 보여 주는 작품들은 별로 없다.
다만 몇몇 출판사에서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내고 있는데
그야말로 성인 작가들의 회고담, 성장소설 일색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청소녀(년) 소설이라 함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시기에 가질 수 있는 고민을 응축해서 보여 주고
깊은 공감대와 고민의 늪에 빠질 수 있도록 하는 지독한 흡입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청소녀(년) 소설들은 그저 성장담일 뿐이다.
혹은 세태 소설, 얄개 소설이라 불릴 수 있는 작품들도 있는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그저 말랑말랑한 연애 놀음일 뿐이다.
진정한 연애 소설은 당연히 없다.

<청소녀 백과사전>은 좀 다르다.
제목의 '청소녀'부터가 그렇고
초등학교 교사인 작가의 이력도 그렇다.
단편집이라 그런지
빼빼로 데이, 염색, 엄마/아빠의 존재, 수학여행, 단짝친구, 남자친구 등의 소재가
딱 그만큼의 소재로 잘 버무려져 있다.
솔직히 7편의 단편이 모두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교사 특유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과도하게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어정쩡한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몇 개의 단편은 빛난다.
정말 한심한 남친 길들이기 얘기를 담은 <철이 데리고 수학여행 가기>나
엄마와 딸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 <야, 춘기야>
아이들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정확히 던지고 있는 <김마리 이야기> 등은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탄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참, 그림도 무척 신선한다. 기존 어린이책, 청소년책에서 볼 수 없었던 깔끔하고 색깔 있는 그림이다!)

물론 우리 출판시장에서, 문학시장에서 크게 청소녀(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의 성과를 보자면
당연히 일본을 따라잡기는 힘들다. 그들의 만화, NT 소설, 그리고 기존 소설의 다양성에 비한다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그것은 아마도 인프라의 문제일 텐데
여전히 문학을 하는 사람의 수도, 분야도 너무 한정적이다.
조금만 더 많이 넓게 자기만의 색깔과 한 우물을 가지고 덤비는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 작품들은 너무 적다!
하지만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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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2disc)
이해영 외 감독, 류덕환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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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되고픈, 아니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픈 고등학생의 이야기.
이건 단지 남자->여자의 구도만이 아니라
진정한 성장영화가 갖춰야 할 기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빌리 엘리어트>가 그랬고 <고양이를 부탁해>가 그랬으며
더 거슬러올라가서는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나 <스탠 바이 미>가 그랬다.
하고픈 일, 가져야 할 무엇을 통해서도
그 시기의 방황을 묘사하면서도
혹은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통해서도
성장의 의미를 보여 줄 수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그런 의미에서 참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우선 류덕환, 김윤석, 백윤식이라는 주연급들을 비롯해 씨름부원들, 엉성한 친구들까지 그 어느 캐릭터도 죽어 있지 않고, 이를 연기한 배우 역시 딱 그만큼이다. 여기서 캐릭터가 죽어 있지 않다 함은, 누구도 혼자 튀지 않으며, 어떤 장면에서도 캐릭터들은 그냥 의미 없이 서 있지 않고, 각각의 역할을 갖고 있다. 마치 만화에서 고심해서 컷과 컷 속에 인물과 배경을 배치하듯이 말이다. 특히 씨름부원들과 엉성한 친구는 놀랍도록 잘 계산되어 배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배우들은 그만큼을 잘 소화해 내고 있다.

또한 불행한 가족과 나만의 소원, 이라는 아주 닳고 닳은 도식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캐릭터로 인해서 식상하지 않게 표현됐다.
가장 문제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동구 아버지의 경우, 무척 나쁜 놈이지만 마지막에서 가서 괜히 눈물짜게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돌아갈 뿐이다. 이 사람도 나름 사연이 많은 놈이야, 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제발 좀 믿어 줘라고 끝까지 물고늘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동구가 자신의 꿈을 찾아 가는 과정 역시, 딱히 긍부정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마지막 장면에 짧은 콘서트 장면을 넣음으로써 정말로 <스쿨 오브 락> 이래 최대의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성장이란 무엇일까?
어떤 영화는 현실 그대로 비루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말도 안 되게 포장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마돈나'처럼 '있는 그대로를 인정' 하는 것이 바로 성장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마지막으로 감독!
물론 시나리오 작가로서는 상당히 주목을 받아 왔지만
그래도 연출 입봉작인데
(서플에 보면 상당히 아쉬워하고, 연출과 시나리오작가의 차이에 대해서 얘기도 하지만)
과욕을 부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수줍어하지도 않으면서
쎈 데뷔작을 만들어냈다.

'딱 그만큼'을 외칠 수 있는 감독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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