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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김지현 / 레드스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 달 한 몰래카메라 실험을 봤는데, 실험 내용은 이러했다.
'길가에 어린 아이가 혼자 울면서 서있다.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시내 한복판이였지만 저마다 바쁜걸음으로 지나칠 뿐 선뜻 아이에게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몇몇의 할머니, 아주머니, 젊은 대학생커플 등이 아이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얘야~ 왜 혼자있니? 엄마 어딨어?"라고 물으며 아이를 달래고 사정을 파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냥 지나친 이들과 아이에게 다가온 이들 모두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후자는 당연히 아이가 걱정되기 때문이였고,
전자도 아이가 신경쓰였지만 괜한 오해를 사거나 괜한 일에 자신이 휘말릴것 같아 선뜻 말을 걸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참 아쉬운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현실이 각박하다보니 낯선이의 선의의 도움도 의심하고 거부하며
아무 영문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에게 가족이 아닌 타인은 위험한 사람이라 가르치며 타인과의 교류를 막고 있는건 아닐까?
그렇기에 나역시 타인의 아이에게 방관하며, 그것은 그들 가족의 문제라고 단정짓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짧은 영상이였지만 한참을 고민하고 되새기게 하는, 지금 우리 어른들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할 숙제같은 실험이었다.
지금 나와같은 고민에 빠져있는 어른들이 있다면 주저없이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아마 경쾌한 답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한다.
바로 <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이란 책이다.
LA 어느 변두리 뒷골목 연립아파트의 현관 계단에 한 어린소녀가 며칠동안 해질녘까지 멍하니 앉아있다.
주위 사람들은 소녀를 힐끔, 또는 호기심어리게 바라볼 뿐 그 소녀의 사정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동안 이 소녀가 신경쓰여 미치겠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빌리라는 아저씨다.
빌리는 심각한 공황장애와 과거에 겪은 상처때문에 몇년동안 문밖을 나가지않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살고 있다.
그 어떤 이도 지금 자신의 삶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빌리이기에
이 어린소녀의 사정이 궁금하지만 나설 수도 없고 해결해 줄 수도 없다.
다만 누군가가 먼저 나서 소녀를 자신의 눈에 띄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주길 바랄뿐이다.
다른 이웃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아이가 신경이 쓰이지만 부모도 아닌 자신들이 해결해줄 수도 없고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다.
며칠 후 빌리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와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베란다를 기어나와 소녀에게 말을건다.
"왜 그곳에 나와 있는거니? 안전한 집 안으로 들어가 있는게 좋지않을까?"
하지만 소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집안에 있으면 아무도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걸 알지 못해요. 나를 도와주실래요?"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소녀는 약에 취해 있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기 싫어 매일 문밖에 나와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개선시키고자 한다.
그레이스의 엄마는 그레이스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연약한 어른이었고 그로인해 그레이스는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누군가의 신고로 아동시설에게 알려졌고, 그 아동시설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듯한 이웃 흑인여자는
그레이스가 그 끔직한 곳에 보내지지 않기위해 자신이 베이비시터라고 거짓말을 하고만다.
하지만 모든 짐을 감당할 수 없는 여자는 그레이스와 함께 이웃들을 하나씩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모두의 삶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감동적인 영화 한편을 보는 듯 책 속에 빠져들었고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도달했다.
각 인물들은 영화의 캐릭터들처럼 살아있었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레이스의 이웃들은 나와 다르지 않은 현실의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저마다의 상처들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지내며,
자신을 가두고, 외로움을 숨기고, 스스로 당당하게 잘 살고 있는 척 버티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들이었다.
이런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힘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낸 소녀 그레이스를 통해
이웃들은 오히려 위안을 받고 감동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과 소통하게 되었다.
어른들이 가진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먼저 다가선 그레이스를 통해
잊고 지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저마다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게 된 듯하다.
상처받은 이가 어린 아이를 통해 치유받는 스토리는 예전부터 많았고, 앞으로도 쭉 나오겠지만
이 책의 사랑스런 소녀 그레이스는 제법 오래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