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 치료감호소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
차승민 지음 / 아몬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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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감호소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라는 타이틀에 끌려 읽게 된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제목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에 처음엔 반감이 일었다. 정신질환은 그들이 선택한게 아닌 치료받아야할 병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은 잔혹한 범죄들이 다 용서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이 감형을 받으려고 속이는 경우도 허다한게 현실인데 저자가 선택한 '애처로운' 이란 단어가 솔직히 거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끌린 이유는 최근 각종 범죄 프로그램이나 영상들을 찾아보며 대체 범죄자들의 사고회로는 어떻길래 저런 짓을 저지를까를 엿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됐는데, 정신질환자들은 어떤 상황들로 인해 범죄에 다다를지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의 여러 에피소드를 읽어가며 저자가 그렇게 고민하고 써 내려간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가 '애처로운'이라 붙이게 된 경위도 알게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다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으로 이직, '공무원'의사의 삶을 살아가게 됐다. 공무원이란 타이틀이 주는 안정감으로 편하게 살 줄 알고 결정한 일이지만 매일 170명에 육박하는 범법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로 일하게 된 것이다. 범죄자들이지만 저자에게는 환자이기에 그들을 상담하며 겪어 온 많은 고민과 사연들 속에서 그녀는 단순히 그녀의 환자들을 감싸주고 이해해달라 얘기 하지 않는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물론 그들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 역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사회와 사람들에게 설득하려 함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주로 성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지 말라는 의미로, 최근에 N번방 사건 가해자에 관해 언론이 도 넘는 내러티브 보도를 하자 이 말이 많이 쓰였다. 누가 봐도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부여하는 지나친 서사에 나도 반대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마이크가 허락되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그저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벌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사전에 계획하고 특정한 의도를 가진 채 범죄를 저지른 '악인'과 도매금으로 '나쁜 놈'으로 몰린다. 나는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모두 대변할 마음도, 능력도 없다. 또 이들을 그저 불쌍하게만 보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이 병원에 오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정신질환 증상이 무엇이었는지,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의 끝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다.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단순히 처벌만 받는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그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자신의 범죄를 정확히 인지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죄과 반성을 하며 다시는 그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게 끔 만드는 것이 최종적 목적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어하는 부분 역시 이런 맥락이다.

이제껏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무섭고,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잠재적 범죄자였다. 그래서 피해야 할, 숨겨야 할 것으로 치부되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끔직한 범죄로 발전되는 것도 지켜봐왔다. 최근에는 조현병,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도 차차 바뀌고 보다 적극적인 치료의 움직이도 보이긴 하지만 솔직히 아직 나만해도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무서운 생각부터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며 마음이 아픈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한 요즘, 나는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약을 챙겨먹듯 마음이, 정신이 아픈 사람 역시 치료하고 약을 먹어야 하며 그건 전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 역시 우울증에 아파했고 간혹 주체 못할 분노에 이성적 대처가 안 될 때가 있다. 누구나 이런 일을 겪을 수 있고 그 정도의 차이가 심하냐 아니냐의 차이라 생각한다.

최근 다양한 범죄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연출가나 작가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이 훌륭해 감동받은 적이 있다. 물론 시청률도 중요하겠지만, 연출의도가 단순히 자극적인 사건에 대한 구성이 아닌 그 속에 숨겨진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것들, 잊지말아야 할 것들을 잘 담아내주어 '아, 방송이 해야할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구나'하고 느꼈다. 프로파일러나 범죄심리학 교수님들도 과거 사건을 되짚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주고 계신데, 그들 역시 그들 자리에서 더 이상 그와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한 방송에서 출연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 "뉴스에서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정말 소름돋도록 감동적인 말이었다.

우리 사회에 잔혹한 범죄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사회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최소한 이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이 치료감호소에서 적절한 치료와 처벌을 받고 나와 사회에 건강하게 복귀하기를, 더이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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