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테지만 정확한 이야기의 흐름을 설명해보라면 잘 못할 고전 중의 고전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때 연극부 출신에 전공이 국문과라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많이 살펴봤고 익숙했지만, 4대 비극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5대 희극은 그게 대충 이런 이야기였는데..쯤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새롭게 번역개편되면서 가독성도 높아지고 세부적 지문들은 없어 이야기의 흐름이 글처럼 자연스럽게 읽혀져서 예전에 극본으로 읽었을 때보다 훨씬 단숨에 읽어져 좋았다. 극본 보기를 어려워하는 분들도 편안하게 소설처럼 읽을 수 있어 한 번 도전해보시기를 추천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이탈리아 파도바의 한 집안에서 두 딸을 시집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파도바의 갑부 밥티스타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첫째는 이름난 말괄량이 카타리나이고, 둘째는 얌전하고 아름다운 비앙카이다. 비앙카에게는 구혼자들이 줄줄이 있지만 첫째 카타리나는 성질이 불같고 괴팍해 사람들이 청혼을 꺼려한다. 그래서 밥티스타는 첫째 카타리나를 시집보내기 전에는 둘째 비앙카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못 박는다. 한편 파도바에 유학을 온 피사 출신 루첸티오는 우연히 비앙카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에게 구혼하기 위해 그의 하인인 트래니오를 자신으로 변장시켜 비앙카에게 구혼하러 온 사람처럼 행동하게 하고, 자신은 비앙카에게 라틴어를 가르치기 위해 온 교사 캄비오로 행세하며 비앙카에게 접근한다. 모두들 비앙카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을 때, 베로나 출신의 신사 페트루치오는 아내가 좀 사나우면 길들이면 되니 재산만 물려받으면 된다며 우선 밥티스타에게 접근해 지참금으로 은화 2만 크라운을 주고 죽은 뒤 재산의 절반을 물려주겠다는 각서를 받는다. 페트루치오는 카타리아의 괴팍한 행동도 모른척하며 온갖 사탕발림을 잔뜩 늘어놓고 억지를 부리며 결혼식 날짜를 잡아버린다. 과연 그는 말괄량이 카타리아는 길들이고 온순한 아내로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비앙카의 사랑을 얻고 그녀를 차지할 사람을 누구일까?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위의 모든 이야기가 서막에 나오는 주정뱅이 크리스토퍼 슬라이가 보는 연극이다. 즉 극중극으로 술에 절어 쓰러진 슬라이를 그 지방 영주가 끌고 와서, 정신이 오랫동안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영주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놀리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연극이 바로 저 말괄량이 길들이기인 것이다. 예전 고전극의 경우 극중극의 형식이 많은데,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이중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한다. 주정뱅이 슬라이가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착각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듯 하지만 자신의 권위로 아랫사람들을 우롱하는 영주에 대한 비판 역시 담고 있는 듯 하다.
다소 여성비하적이고 아내를 순종적으로 '길들인다'는 여성차별적 주제로 이야기가 불편한 사람도 있을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페트루치오가 아내를 길들인답시고 벌이는 일이 너무나도 상식 밖의 일들이라 "여성을 길들이겠다"는 의도 자체를 비꼬는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더 맞는것 같다. 극의 말미에 순종적으로 변한 카타리나가 비앙카와 다른 아녀자에게 올바른 아내상에 대한 이야기를 일장연설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아이러니하고 과연 그녀의 본성이 바뀐게 아니라 오히려 비꼬는 듯하게 느껴진다. 어느 시대든 여성차별적 사고와 그에 대한 비판은 공존하는 듯하다. 셰익스피어 시대 여성의 권위와 현재 여성의 사회적 인식은 분명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대 역시도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들이 존재했고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아직도 변화되어야 할 것이 많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말광량이 아내는 길들이는 게 아니고 길들여지는 것도 아닌 존중과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함으로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