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티 오브 걸스 - 강렬하고 관능적인, 결국엔 거대한 사랑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아리(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평점 :

뉴욕의 2010년 4월, 89살이 된 비비안은 옛 연인의 딸 안젤라에게 편지를 받게된다.
'비비안, 엄마도 돌아가셨으니 이제 당신이 아버지에게 어떤 분이셨는지 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녀는 그가 그녀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기나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0년 여름, 열아홉 살의 그녀의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된다.
열아홉 살의 비비안은 명성있는 바사 여자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전 과목 낙제로 퇴학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사 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매년 막대한 기부금을 보내는 엄마와 딸자식 문제까지 고민할 시간없는 사업가 아빠, 모범생에 모든 것에 유망한 오빠 윌터...그 집안에서 비비안은 그저 부끄럽고 무시하고픈 존재였다. 결국 부모님은 그녀를 뉴욕에서 극단을 운영하는 페그 고모에게 보내버리고, 그 일은 그녀의 인생의 크나 큰 변화를 주게 된다.
낡고 다 쓰러져가는 공연장 릴리 플레이하우스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녀가 마음을 뺏기게 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페그 고모는 그녀의 감시자가 아닌 그녀의 젊음과 자유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원자였으며, 그 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쇼걸 샐리아는 그녀의 이상이자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할머니에게 전수 받은 바느질 실력으로 극단의 공연의상을 전담하면서 극단 단원들과 릴리에서 살게 된 비비안. 젊고 아름다웠던 비비안과 샐리아는 뉴욕의 밤거리를 누비며,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취한 남자들과의 쾌락적인 하루하루를 즐기며 지낸다. 그곳에서는 자유, 쾌락, 젊음, 허영심, 욕망이 넘쳐났고 그녀는 그 삶에 매료되어 간다.
놀면서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그 말은 틀렸어. 젊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고 그 보물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은 오직 낭비하는 것뿐이거든. 그러니 충분히 젊음을 누려라, 비비안. 마음껏 낭비해버려.
그러던 중 페그 고모의 친구이자 유럽에서 유명한 여배우 에드나 부부가 전쟁을 피해 릴리로 오게 되고, 실력있는 극작가인 고모부 빌리까지 합세해 <시티 오브 걸스>라는 멋진 공연을 탄생시킨다. 그 공연의 남주인공으로 발탁된 안소니와 사랑에 빠지게 된 비비안은 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게되고 그에게 푹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의 완벽했던 뉴욕생활은 어리석은 그녀의 질투로 전환을 맞게된다. 한 번의 실수로 그녀는 사랑하던 이들에게 배신감과 상처를 주고, 자책과 수치심으로 모든 걸 버리고 뉴욕에서 도망치고 만다.
안젤라, 어렸을 때 우리는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주고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착각하기 쉽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슬픈 진실을 배우게 되지. 어떤 문제들은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 바로잡을 수 없는 실수도 있다는 것.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말이야.
살다보니 그것이 가장 값비싼 교훈이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우리는, 비밀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치유되지 않은 오랜 상처로 이루어진 몸뚱이로 이 세상을 부유하게 된다. 그 모든 고통에 심장이 쥐어짜듯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살아간단다.
그 후 비비안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인생을 겪게 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우정과 사랑을 지켜나가며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게 된다. 방탕했던 그녀의 삶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고 그녀는 사랑, 자유,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게 됐을까? 안젤라의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575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며 긴 이야기를 해야만 했던 그녀의 그 후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책의 중반부까지는 젊음과 아름다움에 고취된 한 여인의 방탕한 이야기였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시대를 앞서간 여인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며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은 작가가 이 시대 여성들에게 진정 하고픈 말이 담겨있는 듯 하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다채롭고 흥미롭게 책을 읽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는 내 삶을 되새기고 추억하게 되는 여운이 있는 이야기다. 장담컨데 영화화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읽는 내내 안젤라에게 자신의 지난 삶을 담담하게 독백하는 듯한 문체가 내가 직접 비비안에게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친근하고 정다워 더 몰입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상당한 두께의 책이지만 가볍게 읽어지고, 이 시대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진정한 나와 나의 행복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