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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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주자면 별 ★★★☆

이 책은 이사벨 아옌데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경험 중 하나라고 추측 (순전히 나의 추측)할 수 있는 칠레 군사 쿠데타 시기를 포함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영혼의 집'과 '백년 동안의 고독'은 상당히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보이고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마꼰도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부엔디아 가문에 태어난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사벨 아옌데는 클라라라는 여자를 시작으로 클라라의 손녀인 알바와 알바가 배고 있는 즉 아직 태어나지는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풀고 있다.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의심스러운' 인물 (의심스럽다고 하는 것은 흔히 '마술적 사실주의'라 일컬어지는 경향을 뜻한다)들, 밤나무 곁을 떠나지 않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영혼, 예언 능력이 있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등과 같은 환상적인 인물들로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다.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에서도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예언 능력이 있는 클라라가 나온다. 

그리고 (스페인어권 소설들 특유의) '수다쟁이' 문체. 나는 지금까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이사벨 아옌데(영혼의 집, 운명의 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바람의 그림자) 정도 밖에 스페인어권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작가와 번역자가 다 다름에도 문장 구성같은, 작가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백년 동안의 고독'과 '영혼의 집'은 상당히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두 소설 다 '사람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그러나 작가가 다르므로 두 소설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결국 가는 길은 다르다.

'영혼의 집' 역자 후기에 이사벨 아옌데가 여성의 입장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그런 관점에서 소설을 쓴다는 평이 나온다. '영혼의 집'은 (칠레) 여성들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니베아-클라라-블랑카-알바-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 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주체는 여성들이다.

반면에 '백년 동안의 고독'이 마꼰도와 부엔디아 남자들의 고독의 역사를 다뤘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드는 의문은 사실 가문의 흥망성쇠를 두루 거친 사람은 모든 자손들의 원초적 어머니인 '우르술라'이므로 이 여인네의 이야기가 그 누구보다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마지막에 근친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가 시조가 보았던 먼지가 되어 날아간다. 그러나 '영혼의 집'에서는 불행한 역사 속에서 잉태된 아이를 알바가 배고 있지만 그 아이가 태어나 새로운 시대와 역사를 쓸 것이라는 희망을 예고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결말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옌데의 결말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소설을 다 읽으면서 영혼의 집이 클라라와 그녀의 딸과 손녀가 살았던 그 모퉁이 큰 집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클라라의 인생 기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 자체가 영혼의 집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인생 행로는 결국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영혼에 기록된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영혼에 새겨지는 역사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행위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다시 보이지 않는 끈을 타고 원래의 사람에게 되돌아 오는 것 말이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점수를 좀 낮게 준 것은 이사벨 아옌데의 개인적인 분노가 이야기에 용해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궤도에서 좀 벗어나게 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이다. 칠레의 군사 쿠데타 시절 세대인 알바로 '영혼의 집'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잠시 이사벨 아옌데가 직접 소설 속에 등장해서 군사 쿠데타 세력을 비난하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에 소설이 궤도에서 많이 이탈하지만 않았다면.   

그래도 '영혼의 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것보다 독자에게 더 가까운(친절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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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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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지난 1학기 때 들었던 지역 관련 수업 시간에 만난 사람들이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이기도 하였다.

 그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이번에 그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소설은 분명히 한 권짜리 장편이지만 작가의 재기발랄한 입담에 휘말리면 눈 깜짝할 새에 읽을 수 있어서 단편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의 내용이나 기타 세부사항을 떠나서 단순한 재미도를 측정했을 때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칠레의 국민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파블로 네루다가 아니라 네루다에게 매일 같이 우편물을 배달하는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그 주인공이다.

 칠레 남쪽에 있으며 산티아고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 마을-이슬라 네그라-이 배경이다.

 마리오는 오직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서 우체국에 고용된다. 왜냐하면 네루다 이외에는 우편물을 받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어부들의 마을에서 '문학'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 속 네루다는 행복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쓴 시 중에서 하나 정도는 칠레 사람들 누구나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김소월의 '진달래꽃',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시인 네루다와 그의 시를 접하면서 메타포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던 마리오는 나름대로 시를 짓는 사람으로 변모하고, 네루다의 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한다.  

 시에는 관심도 없었던 청년이 네루다를 알고, 네루다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로 자신의 인생을 채색해 나가는 모습을 작가는 '토속적'인 입담으로 풀어나간다.

 평범하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문화와는 담을 쌓아놓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네루다와) 네루다의 시를 읽으면서 자신들의 삶에 어떤 것을 불어넣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작가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국민시인'이라는 네루다에게 최고의 러브레터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이 칠레의 문화나 근현대사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 더 감동적일 것이다. -작가 스스로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소설'이라고 하니까- 

 또는 문학과 독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네루다의 시가 '훌륭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네루다의 시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말이다.

 이 책의 주제와 이어지면서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구절을 인용한다면,

<마리오와 바닷가에서 만나고 돌아온 베아트리스에게 마리오와 만나지 말라고 그녀의 어머니가 꾸중하는 장면>

 ... 베아트리스: (마리오는 내 미소가) "나비처럼 '번진다'고 했어요."

어머니: "난다고 하든 번진다고 하든 그게 그거야. 왠지 알아?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떄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고."

베아트리스: "마리오가 해준 말은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할 떄도 그 생각을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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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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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쿄고쿠 나츠히코의 전작 '우부메의 여름'이 매우 인상깊었기 때문에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면서 그의 두번째 작품 망량의 상자 상*하 권을 사게 되었다.

우부메의 여름 일본어판에는 요괴 시리즈라고 되어있기는 한데, 이 작가의 관점에서 중요한 점은 요괴나 유령 그 자체가 아닌 듯하다.

그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부메라는 요괴나 망량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인간의 어떤 점이 반영되어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또 실제로 우부메나 망량이 소설 속에 '실제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우부메나 망량이 그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작가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부메나 망량과 쿄고쿠도의 궤변(?)을 한껏 이용하고 있다.

사실 난 쿄고쿠도가 하는 궤변(?)을 상당히 좋아한다. 우부메의 여름에서 그의 궤변에 반해 엄청난 두께의 책을 밤을 새가며 읽었기 때문이다. 쿄고쿠도는 끊임없이 떠들어대면서 요괴는 인간의 의식과 시간의 흐름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보인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아마도 작가의 요괴觀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가가 요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자 소개를 통해 알 수 있지만, 내가 볼 때 이 작가의 궁극적인 의도는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번 망량의 상자 상*하는 소재가 매우 자극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상당히 거북하게 받아들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그런 리뷰들도 인터넷에 꽤 있다.

물론 이 작가가 선택한 소재가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경계'가 아닐까 한다.

여러 사회에는 나름대로 '금기'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런 금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지니는 태도는 매우 다양하다.

사람들이 금기를 깨고 금지된 경계를 넘어가는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금기를 깨고 금지된 경계를 넘어가는지?

사람들은 왜 금기를 깨고 금지된 경계를 넘어가는지? → 소설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망량이라는 소재로, 상자라는 소재로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실제로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시점이 바뀐다.) 시점을 바꾸면서 소설을 토막낸 작가의 글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금기를 넘고 싶고, 경계를 깨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흥미있으며, 자극적인 소재를 견디실 수 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시기를...개인적으로는 강력 추천.

읽으면서 소재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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