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혁명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1
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성사, 혹은 사상사를 공부하면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가장 앞서나가는 사상가들의 담론과 유사한 담론들을 과거에서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얼치기로 대충 공부하는 사람은 지적으로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 사상가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동시대 사상가들에게 조소를 보내는 경험을 자주 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이 책-<보수혁명-독일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에서 소개하는 사상가들의 지적 괘적을 보고 나는 또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이들의 이야기들이 소위 68혁명 이후에 서구의 비판적 포스트모더니스트(그런데 우습게도 난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의 주장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근대라는 틀.

이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이 16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왔고 아직도 진행중인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면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이미 근대를 뛰어 넘고 있는 듯 하다. 당시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의 의도와 주장은 다분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만약 이들이 만들어 놓은 텍스트만을 분석해 본다면 소위 좌파적 지식인들이라도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당시에 이미 근대의 부작용들이 사회에 만연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와 같은 서투른 독자는 이런 상황에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보수주의자들의 비판들이 정당하다면 도대체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이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대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근대에서 과거로의 회귀는 더이상 동시대인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기. 그것만이 근대인들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현재의 부조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식이다.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 모두 현재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있다. 근대에는 현재의 부조리를 묘사하는 개념들을 서로 전유하기 위한 경쟁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대에 사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택을 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가? 절대적 기준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 추상성 때문에 묘사 혹은 이해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존재한다. 이데올로기 경쟁? 그렇지만 정말 옳은 무엇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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