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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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레오파드] 책 실물로 보고 느낀 점은 벽돌, 그 자체 입니다.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 제일 유명한 [스노우맨]을 읽어보지도 않고 후속작인 [레오파드] 벽돌과 정면 충돌하고 나니 이래서 사람들이 요 네스뵈의 그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잡힌 물고기 신세를 자처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독자는 소설의 첫장부터 작가가 던진 당구공만 한 크기의 금속 공이 내뿜는 24개의 바늘에 치명상을 입고, 글자 하나하나가 희생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그저 바라보게 만듭니다.

-바늘 네 개는 그녀의 양 볼을 뚫고 나갔고, 세 개는 부비강, 두 개는 비강, 두 개는 턱 아래를 뚫고 나왔다. 다른 두 바늘은 기도를 뚫었고, 하나는 오른쪽 눈, 하나는 왼쪽 눈을 찔렀다. 예닐곱 개의 바늘은 입천장 뒤쪽을 통과해 뇌까지 침투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다....(중략)..다시 말해, 보르그뉘 스템 뮈레는 익사했다. (17쪽)

금속 공으로 불리던 이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는 ‘레오폴드의 사과‘라는 이름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누군가 ‘스노우맨‘의 범죄행각에서 영감을 얻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고 본 경찰청 강력범죄 수사대 군나르 하겐 경정은 ‘스노우맨‘을 잡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을 뻔한 해리 홀레가 사표를 쓰고 잠적하자 그 스스로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입장을 포기하고, 크리포스-살인사건 수사 주도권을 쥔 오슬로 중앙범죄 수사 기구-의 수장 미카엘 벨만이 수사력 낭비를 이유로 강력범죄 수사대의 무용론을 펼치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해리 홀레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다급히 카야 솔네스 형사를 홍콩으로 파견해 우여곡절 끝에 알콜 중독에 마.약 중독자가 된 해리 홀레가 귀국길에 오르고 그 사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피살자는 두 명이 더 늘었습니다. 스물아홉 살 정식 변호사 살로테 롤레스와 알타 시의회에서 알타 사회당의 부의장으로, 주 의회에서 국회 인사위원회를 거쳐 하원의원으로 당선 된 마리트 올센. 벨만이 이끄는 크리포스는 대대적인 인원을 풀어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좀처럼 풀릴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홀레 역시 하겐의 비호 아래 카야를 포함한 비밀팀으로 수사를 하게 되는데...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지, 범인은 누구일지, 해리 홀레 시리즈의 일곱번째 소설 [스노우맨]의 후속작품인 만큼 ‘스노우맨‘과의 관계는 무엇일지...

맨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에 등장했던 사건들의 연장선이 등장하고, 활동범위 역시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여러나라는 물론 홍콩, 아프리카의 콩고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와 분화하는 활화산에 눈사태까지 뜨겁고 차갑고 정신없고 읽다보면 광범위한 스케일에 머리에 쥐가 나는데 반전과 배신과 오해와 복수의 난리부르스에 로맨스까지 촘촘히 가미 된 잔혹하고 끈질긴 스릴러 소설이라니, 팔백 페이지에 가까운 벽돌책임에도 몰입감은 최고조라 읽다 멈출 수도 없는 그야말로 중독되는 맛의 소설 [레오파드] 입니다. 숨겨진 트릭, 잔혹한 묘사, 끝내주게 섬세한 디테일, 거대한 뒤통수 강타용 망치, 이 모든 것의 아름다운 조화에 사로잡히면 아마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제 진짜 빨간 맛을 봤으니 하얀 [스노우맨]의 매운 맛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그 맛이 더 할지, 덜 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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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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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금씩, 조금씩 읽다가 모두 리셋 하고 표지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 마지막 뒷표지까지 읽었습니다. 한번쯤, 언젠가,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목록에 올려봅니다.

‘빨갱이‘, ‘빨치산‘, ‘남부군‘ 모두 금지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공표하는 딸 고아리의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사회주의와 노동자를 위한 세상을 꿈꾸던 아버지가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뒤 고향에 터를 잡았으나 전혀 노동에 대해,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아이러니를 품고 망가진 몸과 피폐해진 정신으로도 끝끝내 버리지 않았던 무엇, 치매를 앓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시면서 어쩌면 ‘해방‘을 맞이한 것인지 아니면 딸에게 해방을 선사한 것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저울질을 했습니다. 명문화 된 연좌제는 없어졌더라도 당사자가 살아있는 동안 씌여져 있던 ‘빨갱이‘라는 색깔이 완전히 소실되기 위해선 위장 전향을 했더라도 전직 빨치산인 아버지의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올가미처럼 평생을 따라다닌 시뻘건 색은 아버지가 겨우 열여덟, 열아홉 살에 선택한 사상일 뿐인데 이후 육십여 년을 손가락질 받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 되어 동생의 앞날을 막은 형이 되고, 큰 조카의 육사 입학조차 가로막히게 만든 원흉으로 자리잡아 울분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 고상욱은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지만, 자식인 고아리는 전직 빨치산인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에서 ‘아‘를, 남부군으로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어머니에게서 ‘리‘라는 글자로 조합 된 이름을 받고 자랐을 뿐인데...작은아버지 역시 자신의 선택하지도 않은 형의 선택으로 인해 쫓기듯 고향을 떠나야했고, 기회를 놓치고, 척박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기에 아파도 형을 원망하고 농사가 잘 안되어도 형을 원망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형을 향해 만취했을 때만 제 정신이 들어 악에 받친 모진 말들을 쏟아내다 그 긴 세월동안 미워하고 원망하던 존재의 죽음으로 맞이한 ‘해방‘에 비로소 악착같이 자신이 부여잡고 있던 원망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살아있을 때의 아버지는 외면 받고 고립 되어도 자신의 선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그건 그런 아버지로 인해 늘 피해를 받았다 생각하는 딸의 입장에서 색안경을 낀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이고, 죽은 아버지가 뿌려놓은 인연들, 살려준 사람들, 끈끈한 우정들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늘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를 되돌아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기준을 세워서 니편, 내편을 가르기를 좋아하고 시시비비를 따지기를 좋아하는 민족적 성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성격이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 된다는 것과 결을 같이해 빨리빨리의 우리 민족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삶의 선택을 위해 0과 1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관을 만들어 중간이란 없도록 양극단으로 나누는 것에 특화 된 것이 아닐까. 자진 월북을 하거나 타의에 의해 북쪽을 선택한 수많은 문인들이 일생 전체를 부정당하는 일들이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자행 된다는 사실이 그저 씁쓸합니다. 금기시 되었던 단어들을 누르던 억겁의 무게가 이제는 사라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번 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지구에서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데 사상과 이념으로 인해 이렇게 남보다 못한 형제로 살아야 하는가? 거듭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해방‘은 누구의 해방인지 고민하며 책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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