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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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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입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버렸지만 내게서 버려진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어린 언니와 나를 만난다.......(중략)......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337쪽)

최은영 작가의 장편소설 [밝은 밤]의 마지막 부분 일부를 옮겨적어 봤습니다. 작가의 상상속 공간인 희령으로, 지연은 이혼으로 지난 육 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후 짐들 대부분을 버리고 희령 천문대의 합격 연락을 받자마자 폭설이 내리는 2017년 1월의 어느날 내려왔습니다. 마땅한 집을 찾기 전까지 관광호텔에서 출퇴근을 하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볕도 잘드는 집까지 얻고 두 달이지나 드디어 엄마가 희령으로 찾아왔습니다. 바람피운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진 착한 남자였던 전남편을 늘 ‘참 착해.‘라고 얘기하던 엄마는 ˝니 젊음이 아까워. 남자도 다시 만나야지.˝ 라는 말로 상처를 주지만 그 말이 왜 상처가 되는지 모릅니다. 내가 입은 상처보다 이혼당하고 혼자가 될 사위를 신경쓰는 엄마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4월이 왔습니다.

끌차를 끌고 삼삼오오 걸어가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유독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를 보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반가운 내색을 하던 할머니 한분이 청과물시장까지 갔다 왔다고 하며 사과 하나를 꺼내 ˝먹어봐요. 꿀사과라는데.˝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포교 활동을 하려는게 아닌지 의심의 시선을 보낼 때 할머니는 내 손녀랑 닮았다고, ˝손녀 이름은 지연이예요, 이지연. 딸 이름은 길미선.˝ 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나와 우리 엄마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열살 무렵의 기억 속에 엄마와 함께 이곳 희령으로 내려와 할머니와 보낸 여름날, 여름 냄새들이 추억으로 남았던 이후 이십년이 훌쩍 지나 희령에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할머니의 말씀처럼.

할머니와의 우연한 만남 이후 걱정했던 어색함이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할머니의 초대로 찾아간 아파트 십층, 할머니 집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갈색 사진첩을 펼쳐 내밀었을 때 사진 속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 둘이 미소 짓고 있었고 그중 왼쪽에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할머니는 ˝너라고 해도 다들 믿을 것 같아.˝라고 합니다. 할머니의 엄마, 엄마의 할머니, 나의 증조할머니 이정선, 사람들은 삼천 아주머니라 불렸다는 얘기와 새비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습니다.

삼천에서 태어난 백정의 딸이었던 열일곱 살 증조모가 열아홉 살 증조부와 함께 개성으로 가야만 했던 시절이야기, 증조모의 아픈 어머니가 같이 가겠다고 치맛자락을 붙잡을 때 그 손을 떼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던 시절, 양민이던 증조부 집안의 반대에도 그대로 두면 일본군에 끌려갈 것이 분명한 증조모를 지키기로 결심한 그가 새비 아저씨에게 집에 홀로 남을 장모님을 돌봐주도록 부탁을 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떠날 결심을 했었고 얼마 안되어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지만 증조모는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알게 된 새비 아저씨와 새비 아주머니, 그들이 고향을 떠나 개성에 자리잡게 도와준 증조부, 여전히 백정의 자식이라는 굴레에 고통받던 증조모에게 살 희망을 준 새비 아주머니가 1930년대, 1940년대를 살았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으며 여전히 엄마와 연락조차 안하는 두 분의 관계를 이해하려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지연 자신도 엄마와 단절에 가까운 상태였기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화자 지연이 2017년, 2018년 3월까지 희령을 거쳐 대전으로 이사를 가는 시간동안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1950년 6.25전쟁과 피난, 그리고 할머니의 결혼과 할머니가 낳은 딸이었으나 호적상으로 남남인 관계인 엄마, 새비 아주머니의 딸 희자, 피난 시절를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새비 아주머니의 고모, 명희 아줌마 이야기까지 시간의 강줄기를 따라 참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밝은 밤]은 그렇게 늘 우리 곁에 존재했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품고 있던 시간일 수도, 딸의 딸과 그 딸의 딸의 삶에 드리워진 그림자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듯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했던 수많은 인연들처럼 사랑과 우정과 자매애가 지금의 우리를 그 시절보다는 나은 세상에 살 수있게 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듭니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허울뿐인 공허한 위로가 아닌 진짜 마음을 울리는 위로를 글로 표현했다는 감상을 적어 봅니다.

#밝은밤 #최은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책추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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