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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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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날마다 만우절‘을 포함 한 열한 편의 소설들을 엮어 윤성희 작가의 반전 드라마 같은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이 나왔습니다. 화사한 봄과 여름과 가을을 모두 담은 표지에 반하고 어딘가 즐거운 추억들이 그득할 것만 같은 제목 [날마다 만우절]에 반해서 배꼽 빠지게 웃을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 단편 ‘여름방학‘은 퇴직을 하는 ‘나, 이병자‘가 화자이며 주인공 입니다. 중학교, 인문계고등학교, 상업계 여자고등학교 소유의 재단에 이십오 년을 근무하다 원하지 않는 퇴직을 한 ‘나‘는 이름을 바꿔야겠다 결심을 합니다. 병철, 병곤, 병만, 병준, 그리고 병자. 오 남매 중 막내였고, 어머니가 유일하게 가족 중 병원에서 낳았던 딸, 원치 않는 임신의 결과였던 나는 새로운 이름을 찾아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 소설의 주인공 이름, 친했던 친구의 이름들을 후보에 올리고 또 탈락 시키며 시간을 보냅니다. 여름이 찾아오고 학교의 여름 방학 기간엔 아무도 없는 복도와 빈 교실, 서늘한 계단을 산책하듯 거닐 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사는 오래 된 아파트와 아파트 정문 옆 공원에 분수, 물줄기가 약해졌다가 세졌다가를 반복하는걸 바라보다 해먹에 누워 있는 젊은 모습의 어머니와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은 아버지와 네 명의 오빠들이 나오는 꿈이 기억나고 그럼 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저수지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확인하려 하면 꿈에서 깼던 날들이 떠올라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로 신발을 벗고 걸어갑니다. 개와 같이 놀던 아이는 여긴 아이들이 노는 데예요, 하고 말하고 나는 여긴 애완동물 출입금지 구역이야. 하지만 어른이 나밖에 없으니 내가 모른 척해줄게.(32쪽) 아이에게 말합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고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의 주인공이지만 또 특이할 것은 없는 주인공이 단편들 마다 등장합니다. ‘여섯 번의 깁스‘를 하는 동안 세월이 흐르고 단짝 친구와 아버지의 죽음을 겪는 나의 이야기, ‘남은 기억‘ 속엔 암이 폐로 전이 되었다는 마을 듣고 상관도 없는 택시기사에게 욕을 한 복자와 내가 오래전 돈을 떼어 먹었던 영순의 전화를 받고 둘이 시도하는 복수이야기, ‘어느 밤‘ 아파트 놀이터에서 훔쳤던 킥보드를 타다 먼 곳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에 새 아파트 단지내 산책길에서도 속도를 냈고 결국 척추부터 엉덩이까지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며 길바닥에 자포자기하듯 널부러져 있을 때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청년에 의해 발견 되고 킥보드는 손녀가 놀라지 않도록 제자리에, 원래 있던 중앙놀이터 그네 옆에 갖다두면 된다고 말하는 내가 있습니다.

‘어제 꾼 꿈‘과 ‘네모난 기억‘에 등장하는 죽음과 기억에 대한 단상들, ‘눈꺼풀‘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에 실려 있는 꿈과 잠, ‘블랙홀‘과 ‘스위치‘에 딸깍하고 켜지는 왜곡 된 인과관계들, 마지막 단편 ‘날마다 만우절‘에 역시나 등장하는 시간의 주름을 통해 어디서 어디까지가 만우절 거짓말인지, 과거에 대한 자기 고백인지 혼돈이 왔을 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도 놀이터에선 아이들만 놀아야 한다는 편견이 깨진 것, 어떤 죽음은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는 것, 어쩌면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 이름은 바꾸면 된다는 것, 할머니도 킥보드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여섯 번의 깁스를 하고도 오래 산다는 것 등등 먼 과거에서 더 먼 미래의 시간까지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 작품들마다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뽑고 싶습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새로운 작가님을 알게 되고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어느날 은행나뭇잎을 밟고 미끄러져 산책로 한복판에 누워있을 때 이 책이 생각날 것만 같습니다. 몸이 안 움직여 속이 상할 때 누군가 ‘땡 이예요‘를 외쳐주길 기다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손자, 손녀들 보다 물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에 스스로 제약의 벽을 세우는 일은 더이상 안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확신이 없는 말투지만 [날마다 만우절]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저는 다른 사람이 된 듯 합니다. 아마도.

#날마다만우절 #윤성희 #소설집 #문학동네 #책추천
#책스타그램 #2019김승옥문학상대상수상작수록
#어느밤 #어제꾼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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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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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의 광주와 1982년 3월의 부산은 시간적으로도 장소적으로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신군부의 군대를 동원한 무력 탄합을 용인하였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1982년 3월 18일 고신대 학생들이 부산 백화점에선 미국에 책임을 묻는 유인물을 뿌리고 미문화원에 방화를 하여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의 뜻을 널리 알리려 한 사건은 서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 밤 늦은 시간의 방화였으나 불행히도 미문화원 안에서 책을 보던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상황은 반전됩니다.

박솔뫼 작가의 [미래 산책 연습]은 부산 미문화원에 직접 방화를 한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성 네 명 중 한 명인 윤미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수미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미래까지 모두 같은 프레임 안에 넣고 이야기는 진행 됩니다.

수미의 가족은 울산에 살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수미의 엄마는 수미와 수미의 동생을 데리고 부산의 친정으로 들어와 사는 중이고 윤미는 수미의 외가 친척의 딸로 수미의 외할머니가 어려서부터 데려다 키우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의 수미, 같은 반 친구인 정승, 윤미 언니와의 관계를 아는 학교 선생님들의 감시에 가까운 시선과 외가 식구들의 싫은 내색을 모두 관찰하고 직접 느끼고 그럼에도 윤미 언니를 믿고 지지하는 속마음이 시간을 반복해서 말하고 쌓이고 흩어집니다.

1929년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양척식 주식회사 부산 지점이었던 곳이 1949년부터는 미국 해외 공보처로, 전쟁 중에는 미대사관 역활을 하고 그 이후로 1996년 철수 될 때까지 미문화원으로 존재하던 그곳은 이제 근대역사관이 되어 있습니다. 수미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과거에 예상했던 미래를 살고 있습니다. 옛미문화원이자 지금은 근대역사관이 보이는 부산의 호텔에서 문득 집을 갖고 싶어집니다. 호텔에서 보이는 목욕탕에서 만난 최명환, 수미의 집주인이자 여상을 졸업한 후 미문화원 근처 무역회사에 경리로 들어가 방화사건이 터지는 날의 그 시간에 타는 냄새까지 기억하는 그를 알게 되고 부산의 집에는 읽고 있는 중인 책 [티보가의 사람들]이 늘 그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수미가 회사를 그만 둔 해에 정승은 이혼을 하고 수미는 일본으로 늦은 유학을 떠납니다. 부산 타워와 도쿄 타워는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상징성을 띠고, 부산의 대학생 조윤미와 광주의 고등학생 조윤미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수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없이 이어지는데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를 긴 호흡의 글들은 처음엔 막연했고 나중엔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수미의 이야기인가 싶으면 수미를 둘러싼 시간의 이야기이고 수미는 어렸던 시대의 이야기 입니다. 아픈 역사와 더 고통 받았던 젊은이들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 이며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흔적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부산을 여행하고, 그곳에 집을 얻어 살지만 이사는 안 한 수미의 산책길에 만나는 먹거리들, 사람들, 자연들, 그리고 자신의 유년시절의 흔적들, 잊혀진 기억들이 쉼표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 [미래 산책 연습]은 어쩌면 그날의 아픔을, 그이후의 고통을 잊지 말라는 경고처럼 다가옵니다. 오늘 새벽에 이책을 다 읽었을 때와 또다른 경계선을 넘어버린 지금이라 꼭 한번은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미래산책연습 #박솔뫼 #장편소설 #문학동네 #책추천
#책스타그램 #518광주민주화운동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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