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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Pauca Meæ, 이건 라틴어야. ‘내게 남은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이지. 여기 보이는 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들 가운데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아. 아, 나머지를 전부 잃고 오로지 이 삼천 권만 선택해야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던지!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에 비견할 만한 고통이었어. 그 고통이 어떤 건지 알겠니?˝ (22쪽)
한 달 전 수레국화 노인요양원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레구아르 잴랭은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의 80퍼센트는 통과한다는 바칼로레아를 통과 못한 나머지 20퍼센트, 대학에 진학을 못하고 취업으로 떨어져나온 수학엔 완전 젬병인 그레구아르는 시청 녹지과를 거쳐 사회복지과, ‘수레국화‘ 분과에 ‘의료시설 업무 지원인력‘이라는 명목으로 급여-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낮은 액수-를 받고 실제로는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서점을 하다 요양원에 들어와 파킨슨병이 악화되어 가져온 삼천 권의 책 조차 점점 읽을 수 없게 된 피키에 씨와 책과는 담을 쌓고 살던 그레구아르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듣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힘든 노동으로부터 잠시나마 휴식과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28호실에서의 낭송은 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책방 할아버지이자 성소수자인 피키에 씨와 그레구아르의 관계에 대한 유언비어 또한 점점 커지고 시간이 흐르며 수레국화 28호실을 중심으로 한 ‘라디오 수레국화!‘ 이벤트까지 겪으며 둘 사이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의 끈이 단단해졌습니다. 자신의 생이 꺼져 가고 있음을, 마지막이 다가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피키에 씨는 자신이 젊은 날 유일하게 사랑에 빠졌던 여인-퐁트브로 수도원의 알리에노르 동상-에게 꼭 걸어가 책을 읽어달라고 그레구아르에게 부탁을 합니다. 요양원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그곳까지 열흘 가까운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으며 그레구아르 역시 피키에 씨와 이별을 예상합니다.
한 권의 책을 낭송하면 듣는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폭 만큼 기억을 하고 이해를 합니다. 그레구아르 역시 피키에 씨가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했던 말을 가슴에 담습니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지만,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286쪽) 라는 문장 넘어로 나무를 사랑했던 그레구아르와 책을로 남고 싶어했던 피키에 씨의 우정이 빛나고 있습니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세상을 이제 스스로 깨고 나온 낭송가 그레구아르와의 만남은 지난해와 올해의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기 위한 작가 마르크 로제의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책 읽는 즐거움, 함께 읽는 기쁨을 전파하는 기적같은 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묵혀 뒀던 만큼 감동을 배로 받으며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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