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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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평생 접해보지 못했을 귀한 책들을 책에 진심인 의뢰인들 덕분에 나는 이렇게 매번 쉬이 가까이서 만난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구석구석 뜯어보고 들여다보고 맘껏 만지고 넘겨볼 수도 있는걸. 나는 책 수선가이기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내 삶에서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327쪽)

어느 책 수선가 ‘재영 책수선‘은 곤충과 식물 채집하기를 좋아했던 1996년도의 나는 책 수십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유리를 불고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지인을 다루던 2004년부터 2012년의 나는 책 수선을 하며 살아가게 될 줄 전혀 몰랐고, 책 수선을 처음 배웠던 2014년의 나는 그 이후로 8년째 망가진 책을 고치게 될 줄만 알았지, 이렇게 새 책을 출간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로 자기 소개를 합니다.

책 수선가, 가치가 있는 고서적이나 유물들을 발견하게 되면 복원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책 수선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던지라 찢어진 옷을 수선하거나 일반인은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하게 망가진 옷이나 한복 등을 리폼하는 정도의 일을 책을 대상으로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하는 책들만큼의 국가적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더라도 개인에게 소중한 책들을 원래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또는 의미를 담아 전혀 다른 표지로, 찢어진 책장 하나하나를 붙이고 자르고 제본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이 들려준 사연들과 함께 수선전과 수선후의 환골탈퇴를 사진으로 기록으로 접해봅니다.

책 수선가의 오랜 친구들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 중 본폴더는 종이를 접거나 접착제를 붙일 때 많이 사용하는 도구로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자랑합니다. 그제야 고서적을 복원하던 학예사들이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이 바로 이런 본폴더였음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여러가지 가위와 붓 등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책 수선가는 책 뿐만 아니라 엔티크 액자, 33년간 간직한 결혼 앨범, 희귀하진 않지만 의뢰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만화책, 동화책, 잡지들도 심혈을 기울여 수선을 하고 이후로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고 호기심과 함께 은퇴 후의 삶을 미리 꿈꿔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소장하고 싶은 욕구도 큰 사람에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방법을 알려 준 책 입니다. 아마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벌써 마음에서 자라고 있어 행복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책들 가득한 공간처럼 여기 기억을 수선해 주는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 있습니다. 의뢰인들의 이야기 한번 들어봐 주세요. 잊혀진 책들의 소망도 한번쯤 들어주세요.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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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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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조금 전 넌 나를 명인이라고 불렀지. 명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지? 내 생각에 명인이란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영혼에 잠재되어 있는 지식을 제자가 최선을 다해 스스로 발견해나가도록 격려하는 사람인 것 같구나. (28쪽)

[연금술사]로 잘알려진 파울로 코엘료가 본인이 직접 궁도를 배우며 경험하고 느꼈던 점들을 소설로 완성한 [아처]를 처음 본 순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책이 정말 ‘작고 얇다‘ 였습니다. 어느날 소년 앞에 이방인이 활의 명인 진을 찾아왔다며 그에게 데려다 달라고 합니다. 이방인이 오기 전까지 그저 평범한 목수인 줄 알았던 진이 활쏘기의 전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소년과 오랜 수련의 끝에 완벽해진 자신의 실력을 검증 받기를 원하는 이방인은 집 뒤편 목공 작업실에서 탁자의 다리를 달고 있을 진을 만나게 됩니다.

진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비밀로 해 주는 것을 댓가로 이방인이 원하는 궁술 실력 검증에 나서고 그가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지식들을 발견할 수 있는 조언을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활쏘기를 생각하면 일반인들은 표적에 명중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중 하나인 양궁을 지켜보며 표적의 정중앙 10점에 화살이 꽂히는 순간만을 집중하곤 합니다. 하지만 궁술은 활이라는 도구와 화살, 그리고 활을 쏘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가는 방향에 표적이 있어야 하고 그 중앙을 명중 시키는 것은 이후의 일입니다.

[아처]엔 진이라는 이름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우리에게 활을 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동시에 인생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활을 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일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첫번째는 동료였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인 만큼 서로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배우고 나를 달련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도록, 화살을 잡는 법과 활을 잡는 법, 활시위를 당기는 법과 표적을 보는 법, 발시와 이후의 화살을 주시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제자들을 향해 최선을 다해 표적을 명중하기 위해 필요한 스스로의 발견을 독려하고 있어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짐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작고 얇은 만큼 깊고 단순합니다. 대신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시작을 하기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지금 읽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날아간 화살처럼 지나간 시간을 잡을 순 없습니다. 다가오는 시간을 알차게 사용할 멋진 궁술의 가르침, 지금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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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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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대적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이끌리 듯 책장을 펼쳐들었고 그곳에서 만난 한나는 지극히 한국적이라 서러웠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날까 두려웠습니다.

처음 60쪽까지 읽는 동안 추호의 의심도 없이 여행과 전쟁에 대한 에세이라고 여기며 이렇게 크나큰 아픔과 절망을 찾아 여행을 가는 이 사람은 뭘까...왜일까를 거듭 고민을 하다 마침내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2015년의 가을, 자그레브행 버스에 올라타는 오십대를 바라보는 한국의 번역가, 그녀 조한나가 가슴에 담고 있던 20년 전의 그날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녀가 다시 유럽에 오게 된 이유는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마르코 라디치 덕분 입니다. 독일계 유대인 어머니와 크로아티아인 아버지를 둔 마르코의 소설을 한국에 출판하게 되어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작자와 번역자의 관계일 뿐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마르코는 톈진에서 열리는 중국번역문학원 포럼에 동반 초청을 함으로써 만남의 기회가 되었고 농담처럼 건넨 그의 고향집이 있는 프라하 자그레브로의 초대에 응하게 될 줄 그땐 몰랐습니다. 그에게 자그레브의 뜻을 물어보니
˝세 가지 의미가 있어. 하나는 그레이브(grave)가 자그레브가 된 거야. 또 하나는 물을 찾아서 땅을 판다는 뜻, 그리고 언덕이라는 의미.˝(21쪽)
라고 말합니다. 그레이브...무덤...으로의 초대였고 마르코의 사소한 행동들은 옛 기억속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20년 전의 그날들과 함께.

크로아티아가 갑자기 여행지로 뜨기 시작한 그즈음에 관광지로만 훝어보던 얉은 지식 위로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유태인들, 난민들, 코소보를 두고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간의 싸움-폭력사태에 이어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에 이르기까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밤이면 잠들지 못하는 마르코처럼.

한나는 변이숙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족을 버리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으나 또 도움을 요청하는 학교 선배 기태를 무시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무시하지 못한 댓가로 사람을 잃고 정체성도 잃고 국가권력에 의해 와해 된 정신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에 둘러 쌓인 과거의 망령은 여자가 독일로 유학을 갔었다는 사실에, 약혼녀가 있는 사람과 사랑을 했다는 이유로 함부로 취급당해도 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고 법의 이름으로 죄를 씌워 감옥에 넣어 버렸습니다. 국가권력의 날카로운 칼날은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거듭 변신을 하며 자유롭던 청년들을, 자라나는 소년들을, 사랑스러운 소녀들을 사상범으로 간첩으로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엄마의 성을 따 ‘조한나‘가 된 화자를 덮쳤던 비극과 시대가 낳은 아픔,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먹먹함 너머로 제주의 푸른 바다가 밀려드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사그라든 생명들, 비탄의 목소리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아름다운 풍광 아래 잠들어 있는 비극이 아직도 규명 되지 않았으며 이름조차 찾지 못해 비석도 없다는 것이 쓸쓸하게 다가옵니다. 직접 읽어보시길,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시길 바래 봅니다.

*출판사 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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