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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36쪽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읽어야 할 필요까지는 못느끼던 중 어느 독자의 리뷰가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이라는 이책을 읽도록 만들었습니다.
별에 머리를 담근 소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851년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시간에 태어났습니다. 그만큼 별이 잘 보이는 날 이었고, 조던의 밤하늘에 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밤하늘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데 5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밤하늘을 정복한 조던은 주변의 생물들, 특히 식물들을 분리하고 동정하는 작업에 빠져들어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찾아내며 성장해 교사 되었고 동시에 모험소설과 시를 즐기다 코넬대학에 진학해 3년 만에 과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습니다. 코넬대 졸업생이었던 1873년 당대 가장 유명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가 모집한 여름캠프에 참여할 50인에 뽑혀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22킬로미터 떨어진 페니키스 섬에 도착하고 나서 스승인 아가시의 열정과 탐구정신에 빠져든 청년 데이비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의 꼭대기에 그려넣는 신성한 사다리, 자연의 사다리(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를 믿는 계층구조를 맹신하는 스승과 1859년 [종의 기원] 통해 진화에 대한 이론을 펼치는 다윈의 개념을 받아들여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로 인식‘(45쪽~46쪽) 하며 카페인까지 금지하는 생활과 함께 페니키스 섬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탐험에 적극적으로 참여 합니다.
저자인 룰루 밀러는 일곱살 때 페니키스 섬과 겨우 80킬로미터 사이를 두고 있는 케이프코드, 매사추세츠주 웰플리트에 와 있습니다. 이온을 연구하는 생화학자 아버지와 함께 한 1999년 4월 8일의 가족여행과 2012년 인간의 ‘편리‘를 위해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주위에 선을 그어 분류한 속, 과, 목, 강 등 단계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할 때쯤 시간은 1880년대 태평양 연안 어류 종들 목록을 만들 임무를 받고 파견 된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로 넘어갑니다. 인디애나대학 종신교수가 된 데이비드, 그로부터 6년 후 서른네 살이 되던 해 학장이 되고 그가 수집한 수많은 물고기 샘플들은 위용을 과시했으나 1883년 7월 난데없는 벼력으로 인해 모두 소실 됩니다. 이후 2년 뒤 아내를 잃고, 막내딸 소라 역시 잃지만 데이비드는 ˝나는 이미 지나간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근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80쪽)하며 다시 표본들을 수집하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 이때 릴런드 스탠퍼드와 제인 스탠퍼드의 제안으로 그의 나이 갓 마흔 살에 스탠퍼드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을 합니다. 이번엔 튼튼한 건물에 스승인 루이 아가시의 조각상을 세우고 수천 종의 물고기와 어류 등을 세계 곳곳에서 수집해 학명을 새기거나 새로운 학명을 자신의 이름을 따 명명합니다. 그러나 역시 1906년 4월 18일 오전 5시 12분 발생한 리히터 규모 7.9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47초로 인해 견고하다 생각했던 건물도 박살이 납니다. 좌절 할만도 한데 여전히 건재한 데이비드, 1913년 학교 이사회에 의해 완전 사퇴 압박을 받고 이탈리아 알프스에 머물며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이기도 한 프랜시스 골턴이 만든 ‘우생학‘에 관한 책을 쓰고 영면하는 날까지 열광하는 우생학자로 남았습니다.
아마 여기까지만 책을 읽었다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 또는 그의 과학적 연구성과에 대한 찬양 글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인의 죽음에도, 자식의 죽음에도 의연하게 보였던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인해, 그의 기만으로 인해, 낙관적인 방패로 인해 인간 마저도 계층 사다리에 올라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흑인과 혼혈, 히스패닉과 함께 미국 원주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인간의 분류에서 하위를 차지하고 진화를 위해, 퇴화 되지 않기 위해 이들을 더이상 번성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이 자라납니다. 도시의 부랑자들, 범죄자들은 물론 성소수자, 성 개념에 문제가 있는 어린 아이들까지 수감을 시키고 어떤 설명이나 동의도 받지않고 불임화를 법의 이름으로 자행합니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를 따라가다 캐리 벅이 불임화를 당했던 바로 그 건물이 있는 수용소에서 1967년 똑같이 불임화를 당한 당시 열아홉 살 애니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방문합니다.
박물학자에 의해 분리되었던 외피 중심의 물고기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형상으로 날개 달린 설치류와 같이 보이는 박쥐가 오히려 낙타와 더 유전적으로 유사한 종인 것처럼, 소와 연어와 폐어 중 유사성이 떨어지는 것은 허파 호흡을 하지 않는 ‘연어 ‘ 인것처럼, 태어날 당시엔 뇌를 가지고 있다 정착하며 뇌를 퇴화시키는 멍개가 오히려 변이를 통해 진화한 생물인 것처럼 분리 된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성인자로 동일화 된 생물은 곧 사라지게 됩니다.
왜 이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읽어 본 사람만이 장담할 수 있습니다. 별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을 수 있는 것 처럼 물고기를 포기하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면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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