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색 밤 실비 제르맹 소설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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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제르맹, 독창적인 세계관과 몽환적인 프랑스 소설의 대가.

책 [호박색 밤]을 선택한 이유조차 표지에 펼쳐진 화려한 밤하늘 때문이었고 당연히 책의 내용을 짐작은 커녕 실비 제르맹이라는 작가에 대한 한 톨의 지식도 없었습니다. [밤의 책]의 후속작 이라는 사실조차 추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샤를빅토르 페니엘, 모두 ‘호박색 밤 불의 바람‘이라 부르게 될 다섯 살 아이가 들려주는 끔찍했던 그날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합니다.

여덟 살의 형이 끔찍한 모습으로 사냥꾼들의 손에 가로로 들려 집으로 오던 날, 그들의 어머니 폴린은 아니 자신의 첫아이 장바티스트 ‘작은북‘을 품에 안은 여인은 곧장 9월의 빗속으로 사라집니다. 길 한복판에 무릎을 끓고 주저 앉아 우는 아버지 바티스트 그녀에게 미친 놈을 바라보며 그들의 둘째 아들 호박색 밤은 혼자 남겨졌습니다. 자취를 감춘 그녀를 찾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거부당한 황금의 밤 늑대 낯짝이라 불리는 호박색 밤의 할아버지가 수색를 지휘해 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저녁 ‘사랑 구멍‘ 숲 한복판에서 끈적끈적한 청보랏빛 아들의 시신을 배 위에 꼭 껴안고 있던 누더기가 되어버린 그녀를 찾아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새 묘지가 개방 된 이후 첫 장례식, 아들의 관 위로 흙 대신 어머니인 그녀의 몸으로 덮으며 울부짖을 때 잿빛 나무껍질에 줄기가 셋으로 갈라진 나무 한 그루가 언덕을 걸어 내려와 이제 막 메워진 묘혈로 다가가 뿌리를 내렸고 나무는 가지마다 반짝이는 새빨간 장과가 가득 열린 천년 묵은 주목이었습니다.

어린 샤를빅토르의 유년은 끊임없이 죽어버린 형에 대한 원망과 형만을 기억하는 어머니에 대한 절망과 그런 어머니만을 위해 그녀의 어머니가 되어 버린 아버지에 대한 악의로 가득찼습니다. 죽은 자식을 잊기 위해 새로운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가 태어나 호박색 밤에 의해 길러지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호박색 밤은 고향을 떠나 열일곱 살의 방랑자가 되어 파리로, 전쟁은 끝났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파리는 전쟁 중이었습니다. 파리 시내에서 독립 시위를 하는 알제리인들에게 가해진 학살의 기억을 간직한 자스맹과의 우연한 만남, 레몬을 파는 노파, 위르뱅과 그의 친구들, 희생자가 자신에게 찾아오길 기다리는 호박색 밤 불의 바람이 된 샤를빅토르와 긴 시간의 여러 밤들을 거져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페니엘 가의 사람들은 모두 별명으로 불립니다. [호박색 밤]을 읽는 동안 수없이 혼돈의 카오스를 겪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미국의 원주민 인디언들이 붙여 준 이름들처럼, 또한 지명에 있어서도 그들은 다른 호칭으로 부릅니다. 그 속에 있는 동안은 원시 밀림을 탐험하는 기분이었다가 순간 기차가 다니고 화려한 도시가 풍경에 잡히면 어리둥절 해 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무수한 피해와 서로 목적을 만들기 위한 살인의 현장이 고스란히 드러낸 어둠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설마 다섯 살 아이의 마음의 소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담이 글의 형태로 생각이라며 너울거릴 땐 시간개념이 다른 세상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온통 안개가 낀 유럽의 거리처럼 나무들이 걸어와 무덤을 스스로 감싸고 바람은 그런 나무를 밤새 공격합니다. 쇠로 만든 새는 날아갔다 십 년도 넘어 다시 돌아옵니다. 실비 제르맹의 세상은 상상의 한계를 벗어나 극한 경계로 몰아갑니다. 그런데도 함부로 그 늪을 향해 걸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물렁한 땅을 밟고 서서히 가라앉아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 보고싶 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무작정 파고 든 [호박색 밤]을 너머 이제 그의 첫 시리즈 책 [밤의 책]으로 거슬러 올라가려합니다.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이며 그 이야기의 시작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여, 치명적이지만 아름다운 [호박색 밤]의 세계로 시월의 마지막 밤에 찾아오실 분들에게 행운이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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