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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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속살을 예리한 면도날로 도려낸 책 한 권을 만난다.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가, 톨스토이의 재림이라는 극찬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작가 'V. S. 나이폴'의 <자유 국가에서>가 그것이다. 책은 네 개의 단편과 한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다. 나이폴은 다섯 편의 소설을 통해 탈식민주의 시대 속 방황하는 인간 군상의 저린 비애와 좌절, 고뇌를 절제된 필치로 그려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에서 태어난 나이폴은 태생부터가 피식민지인이다. 일찍부터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며 영문학을 공부했고 이후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미겔 스트리트>등 다수의 작품을 출판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다양한 작품으로 수상했으며 그중 <자유 국가에서>는 영미권 최고의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맨 부커 상의 영예를 가져온 작품이다.

단편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는 인도 뭄바이 출신의 이민자가 미국 워싱턴이라는 낯선 세계 속에서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생소한 경험을 1인칭 시점으로 흥미롭게 풀어간다. 주인공 '산토시'는 정부 고위직 관리인 주인의 하인으로 미국 워싱턴에 간다. 인도 정부에서 마련해 준 거처에는 산토시의 방이 없다. 산토시에게 주어진 주거 공간은 한평 남짓한 붙박이장이다. 독자는 여기서부터 계층으로 나누어진 인간 비애의 현실을 맛본다.

미국 워싱턴은 유색인종인 산토시에게 관대하지 않다. 외로운 이방인이 백인 주류 사회에서 겪는 냉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이민자는 영원한 방랑자의 표본이다. 짧은 영어를 배우고 유행 지난 양복을 사 입지만 백인들에게 있어 산토시의 정체성은 여전히 뼛속까지 이방인이며 절대 타자다. 서구 사회의 냉소적 시각을 받아내며 백인 중심의 인종 시스템 속에 온전히 동화되고 녹아질 수 없는 주인공 산토시의 심적 갈등과 고통을 적절한 유머와 믹스했다. 고급 레스토랑에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고 정장 구두를 신은 채 들어간 것과 같은 느낌. 그렇기에 더 안쓰럽고 씁쓸하다.

타이틀 작 <자유 국가에서>는 중편 소설이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체류 중인 영국 정부 행정관 '바비'와 동료 관리의 아내 '린다'가 차를 타고 유럽인 거주 구역으로 이동하며 겪는 이야기다. 소설 초반 주인공 바비는 원주민들에게 호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주유소에서 흑인 종업원이 실수로 자신의 차 유리에 큰 흠집을 낸다. 종업원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바비의 모습은 백인들 안에 내재해 있는 인종 우월주의적 DNA가 표출되는 장면이다. 잠자고 있을 뿐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차별과 혐오의 시각이 사뭇 깊다. 바비는 원래 인종에 호의적 인물이 아니었나 보다!? 모순적 인간 본성의 민낯이다.

 

 

나이폴은 어디에서도 환대받을 수 없는 피지배 식민지 유색 인종이 느끼는 깊은 상실과 슬픔, 어느 한 곳 몸을 누이고 마음 붙일 수 없는 방랑자들의 절망과 삭힌 비애를 가감 없이 날 것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나 나는 <자유 국가에서>를 나만의 또 다른 관점으로 소화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640km의 여정 속에서 만난 미개한(?) 원주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바비와 린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탈식민주의 상황 속 감소한 국가 권력의 남은 힘을 부여잡고 가는 곳마다 "나는 정부 관리다!"라고 외치는 빈약한 자기주장 속에 숨겨진 팩트! 소설 말미에 원주민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바비의 무력한 모습은 돈과 권력이라는 실제적인 힘이 없으면 이 세상 모든 이가 억압받을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 사회 구조의 축소된 전형이다. 더불어 이것은 바비와 린다 또한 험난한 여정 속에서 냉대 받고 위협받을 수 있는 개연성 하의 힘없는 방랑자일 뿐임을 시사한다.

책은 혐오와 차별의 문화가 일상이 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단적인 예로 이 땅의 영원한 이방인,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어떠한가? 흑인 소년에게 5실링을 쥐여주는 감싼 동정을 베풀지만 자신의 차 유리를 긁어 놓은 흑인 직원의 실수는 용납하지 못하는 바비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되지 않는지... 서평의 서두에서 말했듯 이 또한 결국은 인간 본성이라는 근원적 문제로 귀결된다. 본성 자체가 부패했기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못하고 업신여기며 군림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No답!

나이폴은 더 넓고 큰 거시적 관점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닐까? 거대한 시스템 속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 세상 모든 비기득권-피부색과 인종을 떠나서-인간 군상이 가진 슬픔, 억압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은 아닐는지? 보편적 질문으로부터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켜본다. 일단 집고 읽어보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것은 개별 독자의 몫이다!

 

<민음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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