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도 응가를 한대 토이북 보물창고 15
파라곤 북스 지음,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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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모든 시간들은 각각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듯 행하는 pc 게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각각의 과정들이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현재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의 타임라인 위에서 서로에게 깊은 유기적 연관성을 가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의 시간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지네요. 출산 후 선잠을 자는 아이로 인해 항상 잠이 부족해서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던 시기를 통과하고 나면 이유식과 기저귀 탈피의 시간이 옵니다.

둘째 아이가 이제 기저귀를 떼야 하는 시기가 좀 지났는데 쉽사리 기저귀를 벗어버리지 못합니다. 쉬야는 용케도 아기 소변기에 보도록 습관을 들였지만 문제는 응가였습니다. 멋진 그림이 그려져있는 팬티를 사줬고 본인도 평소에 신나게 입고 생활하지만 희한하게도 응가가 마려울 때는 새 기저귀를 갈아입고서야 편하게 응가를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는 첫째 아이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인터넷의 육아맘들이 올린 글들도 찾아보고 다양한 조언들을 들어봤지만 딱히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 책<슈퍼맨도 응가를 한대>를 만납니다.

이 책은 유아들의 독립적인 배변 훈련을 위해서 만들어진 작은 그림책입니다. 예쁜 일러스트레이션과 몇 장 되지 않는 짧은 스토리로 유아들의 흥미를 끌도록 기획되었네요. 책에서는 본인이 슈퍼맨이라고 여기는 기저귀를 찬 유아가 자신의 집 강아지와 함께 망토와 가면을 쓰고 등장합니다. 자기가 이제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변기에서 응가를 보는 일인 것이죠. 그러면서 슈퍼맨 형아(?)는 이 책을 보게 될 아이들에게 "너도 한번 해 보지 않을래?"라며 변기 사용을 살며시 권합니다. 그리고 슈퍼맨 형아는 자신의 변기 위에 앉습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일어나서 다시 밖으로 놀러 나가려는 순간 또다시 반응이 오는 것을 느끼고서는 다시 앉아 열까지 숫자를 세며 응가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기저귀와의 작별을 외치며 이 책을 읽는 유아 독자들에게 큰 형아 팬티를 입는 즐거움과 환희를 느껴보길 권고하네요.

 

 

재미있습니다. 유아들에게 응가를 성공하면 '큰 형아 팬티'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마치 크나큰 명예의 훈장처럼 여겨지도록 적절한 보상기제로 설정되었죠. 일러스트레이션도 유아 독자들의 눈높이에 딱 맞습니다. 유아 그림책의 전형적인 특징인 두꺼운 하드보드 페이지와 선명한 컬러, 적은 글 밥 구성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성된 배변 훈련 놀이북입니다. 책이 도착하고 둘째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매우 좋아하고 즐거워하면서 몇 번을 읽어달라고 하네요. 책의 내용을 보며 매우 흥미로워하지만 사실 책 한 번을 읽었다고 그동안 본인이 고집하고 있는 기저귀 배변의 습관이 한순간에 고쳐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잘 타이르기도 하고 약간의 협박(?)도 해보고 본인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주겠다고 보상을 제시해보기도 했지만 이러한 모든 당근과 채찍의 방법이 별반 소용이 없습니다. 쉬야는 화장실에 설치해놓은 유아 소변기로 달려가지만 응가는 그렇지 못함을 보면서 아이가 가진 무엇인가 말 못 하는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어떠한 불편함이 있기에 유아 변기에 앉는 것이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임을 이해하면서 아직은 좀 더 기다려보게 되네요. 아무튼 <슈퍼맨도 응가를 한대>는 아이의 흥미를 끄는 데 있어서는 일단 1차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흥미 없는 책들은 별로 쳐다보지도 않는 아이들의 특성상 아이가 흥미를 가졌다는 것 자체로 이 책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아이의 시선과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이 책을 잘 꽂아 두었습니다. 언제든 본인 스스로가 책을 꺼내서 펼쳐볼 수 있도록 말이죠. 어차피 글을 읽을 줄은 모르고 그림으로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유아들의 특성상 예쁜 일러스트레이션을 자주 접하면서 슈퍼맨 형아가 변기에 앉아 있는 모습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를 '역하지각'의 그것과 같이 인지하기를 바랄 뿐이죠.

리뷰의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육아는 정말 하나의 단계를 끝냈다고 보너스 점수가 주어지고 새로운 파워를 얻어 다음 단계의 미션을 수행하는 pc 게임의 성격과는 전혀 다름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모든 단계가 통합적으로 인과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아이의 습관과 개성, 정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일종의 예술입니다.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 하나의 훌륭한 예술작품이 탄생되듯 아이를 믿고 어느 정도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아이가 이 책에 대한 흥미를 가졌기에 언젠가는 책 속 슈퍼맨 형아가 하듯이 변기에 앉아 슈퍼 변기 파워를 외치며 기저귀 없이 볼 일 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로서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순간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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